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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발목 잡힌 나라, 과거와 단절해야 미래가 있다

익산시민 유 성 무

적폐청산을 목 놓아 외친 촛불혁명으로 일어선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지 이제 불과 6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의 국정농단 실태들이 드러나는 가운데, 최근에는 이명박 정권이 저지른 패악들이 밝혀지고 있다. 지난 9년 동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탐욕에 가득 찬 모리배들의 천국이었다.

국민의 70% 이상이 이들의 천인공노할 범죄들을 낱낱이 밝혀서 엄단하는 적폐청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일부 수구언론들과 수구정당에서는 급박하고 복잡한 한반도 정세를 들먹거리면서 적폐청산에 대한 물타기를 하고 있다. 작금의 난국을 초래한 자들이 나라의 미래를 언급하니 참으로 뻔뻔하기 짝이 없다.

최근 이명박은 과거에 발목 잡혀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도곡동 땅, BBK, 다스, 4대강 난개발, 해외자원투자 비리 등 이명박과 관련된 온갖 의혹들이 집중 조명되는 가운데 국정원을 동원한 정치공작마저 드러난 시점에서 한 말이니, 이명박의 저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자신과 관련된 의혹을 덮고 가자는 것으로밖에 생각할 수 없다.

일제 강점기 이후 오늘날까지 과거사 청산을 가로막았던 반민족·반민주 세력들이 주장해온 논거는 당시 상황의 불가피성과 미래지향성이었다. 도도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일제와 독재에 빌붙은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며,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공(功)도 있었다는 것이다. 지나간 과거 또한 우리의 역사이고 이를 들춰낸들 바뀌는 것도 없으니, 과거는 묻고 앞으로 잘해보자는 궤변이다.

하지만 잘못된 과거를 온전히 끌어안고 혁신할 수 없음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증명된 만고불변의 진리다. 그 어느 역사에서 썩을 대로 썩은 세력이 혁신에 함께 한 적이 있었던가? 썩은 사과는 골라내 버리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이, 과거의 적폐를 철저히 조사하고 척결함으로써 혁신이 시작될 수 있다.

이명박과 박근혜 정권에서 이처럼 악이 창궐할 수 있었던 것은 국정원과 검찰, 수구언론이라는 견고한 축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국정원 및 검찰 공직자들과 언론인의 대다수가 묵묵히 소명을 다하고 있다고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정원과 검찰, 수구언론이 악의 주구로 전락한 원인은 그동안 우리사회가 적폐에 대한 심판을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국정원에 파견됐던 검사의 며칠 전 자살사건으로 빈소에 조문 온 검찰총장에게 현직 지청장이 “너희들이 죽였다”면서 고함쳤다고 한다. 그동안 검찰의 묵인과 협조 하에 정치적 음모로 희생된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을 대변해 권력층에게 저항한 검사가 몇이나 있었는지 그 지청장에게 묻고 싶다. 그는 이렇게 고함쳤어야 했다. 썩은 정권에 맞서지 않은 우리들이 동료를 죽였고,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다고!

국정원의 특수성을 십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최근 속속들이 드러나는 국정원의 행태를 보면서 국정원의 존립가치를 인정하는 국민이 몇이나 되겠는가? 북한과 주변 국가들에 대한 첩보활동과 산업기밀 유출방지를 해야 할 국가기관이 지난 9년 동안 간첩 조작과 댓글질이나 해대고, 급기야 특별활동비를 상납하는 일까지 들통 났다. 차라리 수구정권보위부로 간판을 바꿔달아야 할 것이니, 이런 국정원의 존재 자체가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공영방송인 KBS와 MBC의 노조 파업사태의 이유는 수구정권의 언론장악 때문이다. 공영방송이 앞장서서 국정농단세력들의 나팔수 노릇을 하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려왔으니, 대다수 양식 있는 구성원들의 양심적 고통과 자괴감은 필설로 형언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다행히 파업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만, 언론적폐세력을 털어내고 다시 국민의 신뢰를 얻어내는 길은 험난할 것이다.

금적금왕(擒賊擒王)이라, 도적떼를 잡으려면 그 두목을 잡아야 한다. 이명박과 박근혜를 중심으로 하는 각종 권력형 의혹을 철저하게 조사하여 죄가 드러날 경우 지휘계통에 있던 자들을 발본색원하여 엄단하면 국가시스템 전반이 안정될 것이다. 차제에 수구세력들이 거론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의혹과 함께 한국현대사 전반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과거를 정리해나가야 한다.

이명박과 수구세력들의 말처럼 과거에 발목 잡혀서는 나라의 내일을 기대할 수 없다. 그 어떤 희생이 따르더라도 과거 거악의 진상을 밝혀 얽히고설킨 현재를 정리하고 미래로 나가야 한다.

국민은 문재인 정부를 과거 민주정권의 연장선에서 선택한 것이 아닌 만큼, 그 과정에서 설령 민주정권 10년의 문제가 나오더라도 국민의 눈높이에서 정의롭게 밝혀야 할 것이다.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정계 개편과 지방선거라는 눈앞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한 칼에 잘라내고 적폐척결에 가일층 매진해야 한다. 추호라도 딴생각을 하는 순간 적폐세력으로 전락하여 국민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고 국정원과 검찰, 공영방송도 적폐청산에 동참하면서 국가권력의 오남용을 저지하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 지난 죄를 역사와 국민에게 용서받는 길임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