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애

이 글을 쓰기 위해 나의 아주 오래된 기억 하나를 꺼내봐야겠다.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다녔던 나는 아마 그때가 오학년 때쯤으로 기억이 된다. 한 번은 무슨 일로 교장 선생님께서 우리 집에 오시게 되었는데 우연히 특별활동 시간에 쓰는 나의 영어공책을 보시게 되었다. 그 순간 교장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는 사실에 매우 화를 내셨고 다음 날 영어 특별활동 담당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께 불려가서 문책을 받았다는 소식을 얼핏 전해 들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다.

어릴 적 나는 영어를 무척 좋아했었고 유난히 서양문물을 좋아했던 아이였다. 그래서 그 때 교장 선생님이 화를 내는 이유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고 어린 마음에도 시대에 뒤떨어진 교장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그런데, 이제와 어른이 되고 보니 이제는 오히려 그런 교장 선생님이 한 분이라도 계시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리의 말과 글은 외래어의 영향을 너무나 많이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일상 속의 대화에서나 책에서나 아니면 나라의 정책을 나타내는 용어에서조차 우리는 영어를 마치 우리말처럼 쓰고 있다. 일상 속의 예를 들어보자면, 매장 오픈일, 시니어 클럽, 유리 멘탈, 드라이브 인, 가드닝,.......  일일이 다 예를 들자니 너무 많아서 생각이 나지도 않을 정도이다.

세상은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자국의 문화만을 강조할 수 없는 시대의 조류를 인정해야 함은 어쩔 수 없는 시대적인 현상이라고 볼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충분히 우리의 것을 지켜낼 수 있는 것마저 외국의 문화를 따라갈 필요는 없는 것이다.

우리의 말과 글을 자세히 살펴보면 아직도 일본식의 어투가 남아있는 경우가 참 많이 있다. 우리말에 있지도 않은 문법식의 표현이나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말들을 덧붙여서 의미를 중복되게 만드는 경우도 허다하다.

우리의 영어교육 또한 일본의 교육방식을 그대로 도입해서 가르친 결과, 오늘날 우스갯소리로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말리아 해적보다 영어를 못한다는 말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본래 개화기 때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영어습득 능력이 상당히 우수했다고 전해진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서 우리의 언어능력이 잘못된 교육방식에 의해 점점 그 능력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이 모두가 광복이 된 후에도 일제의 잔재를 온전히 청산하지 못한 결과인 것이다.

한 삼십 년 전쯤에는 극장에서 영화를 볼라치면 돈 주고는 우리나라 영화를 보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영화와 드라마는 전 세계인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K-POP을 좋아하는 외국의 청춘들은 자국의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에 갈 수 있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프랑스의 한국어 문화원에서는 한국어 과정을 등록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려도 기회를 놓치는 바람에 안타까워하는 프랑스인들도 많다고 한다. 이처럼 대한민국의 위상은 날이 갈수록 높아져 가고 있는데 정작, 대한민국 안에서 사는 우리들은 우리의 소중한 가치들을 너무나 등한시 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하다.

전 세계 어느 나라의 문자를 살펴봐도 그 나라의 글을 만든 사람과 창제시기가 분명한 문자는 우리의 한글밖에 없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아주 높은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 모국어라면 콧대 높기로 소문난 프랑스인들조차 한국어를 배우려고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마당에 우리가 자긍심을 가지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제 우리가 우리의 언어를 제대로 배우고 가르쳐야 하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다. 그것은 바로 다가올 미래에 통일이 될 그날을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온 민족이기에 말과 글을 정비해서 후손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우리의 말과 글을 물려주어야 하는 것이 우리가 가장 앞장서서 해야 할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