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국제 NGO 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김영주

배설은 대부분 기분을 즐겁게 한다. 쌓여 있거나 고여 있던 것을 밖으로 내보내니 상쾌하다. 그걸 쌓아 놓고 있은들, 고여 있게 한들 포만감을 느끼게 하고, 더부룩하게 하여 불편하니 내보내는 게 훨씬 가볍고 기분이 좋다.

중국에 황대구(黃大口)라는 스님이 있었다. 입이 너무 커서 별명이 ‘대구(大口)’였다. 하루는 그가 삼평(三平) 선사를 찾아갔다. 선사가 물었다. “입이 크다는 소문을 익히 들었다. 대체 입이 얼마나 크기에 그렇게 불립니까?” 우쭐해진 대구 스님이 말했다. “하하하, 온몸이 다 입이라면 대답이 되겠습니까?” 그 말을 들은 삼평 선사가 한마디 던졌다. “그렇다면 똥은 대체 어디로 눕니까?” 느닷없는 물음에 황대구 스님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언뜻 들으면 대구 스님의 허풍을 꼬집은 유머이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다르다. 유머가 아니라 법문이다. 사실 필자도 ‘큰 입(大口)’을 가지고 산다. 그래서 많이 먹고, 많이 붙들고, 많이 삼키려 한다. 몸에 좋다고 할수록 더한다. “화학 조미료가 없다더라” “자연산이라더라” “국내산이라는데”. 다들 잘 먹는 일을 최고로 친다. 거기에 건강한 삶이 있다고 믿으니까. 그런 우리를 향해 삼평 선사는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말한다. ‘잘 먹는 것’만 보지 말고 ‘잘 싸는 것’도 보라고 말이다.

필자가 학생 때 스승님께 질문을 던진 일이 있다. “공부가 무엇입니까?” 스승님께서 말씀하셨다.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공부이다.” 그때는 우스개 말씀으로 이해했었는데 요즘에 생각해 보니 가장 쉽고 진리의 말씀이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종종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말한다. 축구 경기에서 결승 골을 넣은 뒤에도, 방송사의 연말 시상식장에서 건네는 수상 소감에서도 “하느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멘트를 던진다. 거부감을 느끼는 이도 있다. “꼭 저렇게 종교 티를 내야 하나. 해도 너무 한다”는 반응이다. 당사자들은 대개 “내가 잘되는 건 하느님의 은혜다. 그러니 감사를 드려야지”라는 생각이다. 감사의 방식이 때로는 너무 적극적이라 공격적으로 비치기도 한다.

필자는 궁금하다. 그럼 하느님은 우리 팀만 돕는 걸까. 만약 상대 팀에 나보다 더 독실하고, 더 간절하게 기도한 그리스도교인이 있다면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 그가 패한 것은 하느님의 뜻인가. 그럼 우리는 왜 이겼을 때만 하느님께 감사를 드릴까. 패하는 것도 하느님의 뜻이라면 감사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어쩌면 우리는 ‘승리의 하느님’만 찾고 있는 건 아닐까. ‘패배의 하느님’은 굳이 외면하면서 말이다.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린다.” 필자는 이 구절을 심사(深思)해 본다. 여기에는 훨씬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이건 그리스도교식 배설법이다. 결승 골의 영광, 수상의 영광을 자꾸 자신에게 돌리면 어떻게 될까. 내 입이 점점 커진다. 욕망이 커지고, 뿌듯함이 커지고, 자존심도 세져서 결국 거대한 입을 가진 ‘대구’가 되고 만다. 나중에는 온몸이 입이 될지도 모른다. 밥 들어가는 입구만 있고 똥 나오는 출구는 없는 ‘대구’ 말이다.

따져본다. 밥 먹는 식탁과 볼일 보는 화장실, 어디가 더 중요할까. 맞다 둘 다 중요하다. 숨 쉴 때도 그렇다. 들숨만 있으면 어떻게 될까. 나중에는 풍선처럼 부풀고 부풀어서 ‘빵!’ 하고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그래서 삼평 선사가 꼬집었다. “그럼 똥은 어디로 누는가?” 날숨은 언제 내쉬느냐고 말이다.

무엇이든 들어간 것은 시간적 차이는 있어도 다 나오게 마련이다. 음식물의 드나듦이 원활하게 유지될 때 몸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건강을 위해서는 영양보충을 위한 음식물 섭취는 논 외로 하고, 원활한 배설 역시 건강의 비로미터이다. 쉽게 말해 잘 먹고 잘 싸는 것이 신체 건강의 척도라 할 수 있다. 그렇게 쌓이거나 고인 것들을 의도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귀찮다고 참으면 나중엔 변비를 불러올 수도 있고, 소화불량을 불러올 수도 있고, 여러 질병을 부를 수도 있다. 때문에 몸의 건강을 위해 적당한 배설은 필수이다.

몸의 건강을 위해선 건강한 배설이 필요한 것처럼, 정신의 건강도 마찬가지이다. 몸을 위해선 먹고 싸는 문제가 있듯이, 정신을 위해선 건강한 입력과 건강한 출력이 필수이니, 출력은 곧 배설과 같다. 이를테면 우리의 삶은 삶 자체가 입력의 과정이다. 매 시간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의 정보들, 그것이 사소하든 중요하든, 의식하든 무심코 넘기든 알게 모르게 그 모든 것들이 음식을 먹는 것처럼 내 정신에 들어온다. 들어온 것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정신에 남는다.

음식물로 비유하면 쌓이고, 음료로 비유하면 고인다. 그렇게 쌓이거나 고인 것들은 밖으로 나가려 한다. 그것은 순리이다. 때문에, 몸이라면 쌓인 음식물을 적당히 배설해야 하고, 마음이라면 고인 것들을 표현해야 한다. 만일 그럴 환경, 마음에 고인 것들 또는 쌓인 것들을 표출할 수 없었다면 이제는 표출할 수 있는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마음이 건강하다.

인간인 이상 누구나 마음에 무엇인가를 쌓으며 산다. 고인 것들을 방치하며 살거나 그럴 수밖에 없어서 가둬놓고 산다. 그러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병이 든다. 원인 모를 불안과 초조, 원인 모를 답답함, 그런 정신적인 질병을 넘어 신체의 질병까지 유발하는 삶의 퇴적물들을 누구나 안고 산다.

지혜로운 사람은 그런 삶의 퇴적물들을 정상적인 방법으로, 건전한 방법으로, 표출하며 산다. 그것을 승화라 부른다. 하지만 인내심 하나로, 그저 나는 착하다는 자부심 하나로 모든 것을 참는 것을 미덕으로 사는 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병들어 있다. 이런 이들에게 배설의 쾌감, 곧 삶의 배설의 쾌감의 순간이 필요하다. 참고 참았던 삶의 퇴적물들을 어떤 방식으로든 배설해야 건강의 청신호를 얻을 수 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배설해야 한다. 몸으로 풀든, 운동으로 풀든, 말로 풀든, 글로 풀든 풀어서 내보내야 삶의 변비와 삶의 방광염 또는 삶의 비대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신의 건강을 위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