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면장

채수훈 

  
숯 고개를 넘어서

대개 미륵산은 여산의 문수산으로부터 시작된다. 구불구불 산봉우리가 이어져 온전한 시대산이 되고, 시대산으로부터 넘어온 산맥이 탄현에 이르러 솟아 용화산이 되니, 곧 도읍의 안산이다. 세속에서는 안산을 안매라고 부르는데, 안매는 바로 내산에서 변화한 말이다. 이 용화산에 의거하면 도성의 허실을 굽어볼 수 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작은 보(堡)를 쌓아 적병들이 정탐하여 살피는 것을 방지하였다.

조선시대 강후진이 <유금마성기>에서 여산?왕궁?금마의 산세를 표현한 글이다. 탄현은 여산 천호산과 금마 용화산 사이 U자 능선이다. 왕궁과 여산의 경계이다. 주민들은 숯 고개라 부른다. 4차선 확장하며 절단되었다. 지맥이 끊겼다는 민원 덕택에 생태통로가 복원되어 천호산과 용화산이 다시 한 몸이 되었다.
여산 지명은 조선 태종 때 여량현과 낭산현을 통합하면서 여산현이라 하였다. 세종 때는 태종의 왕비인 원경왕후의 외향이라 하여 군으로 승격되었다. 지형은 사방이 산으로 쌓여 있다. 능선을 넘어 들어오는 길은 좁고 그 안은 평야를 형성하고 있다. 마치 호리병을 닮은 형태여서 호산이라고도 불렸다. 익산 최고봉이 천호산(501m)인데 지명과 무관치 않다. <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여산 읍내에서 동쪽으로 10리에 있는데 여산의 진산이다.”고 했다.

  
자연 문화 인물의 보고, 여산

여산은 자연, 역사와 문화, 사람이 조화로운 고장이다. 동쪽 천호산과 서쪽 용화산이 마주하고, 사방 골짜기에서 흘러 내려온 물은 면소재지에서 합류하여 황산천을 거쳐 금강으로 흐른다. 옛 선현들은 여산을“산봉우리마다 빼어난 자태를 다투고 골짜기마다 맑은 물이 흐른다.”고 찬탄해 마지않았다.
교창삼거리에서 서쪽방향으로 향하면 400m 앞 여산향교를 지나 천호산으로 향한다. 유점마을의 유점지 앞에 여산송씨 세거지로써 시조 묘와 재실이 있다. 천호산 주변 약30만평이 송씨 문중산이다. 그 지맥의 양지바른 끝자락에 명당이 자리하고 있다. 낙락장송 소나무가 에워 쌓여 있어서 기풍을 더해주고 있다.
  마을을 가로질러 천호산에 오르는 골짜기에 문수사, 백운사, 백련암, 백운사, 천일사가 즐비하니 위치해 있다. 천일사에 자동차를 주차 후 천호산 정상까지는 20여분 쯤 소요된다. 동쪽은 완주와 경계이고 산으로 켜켜이 쌓여 있다. 서쪽은 용화산과 미륵산 넘어서 일망무제처럼 호남평야가 펼쳐져 있다. 여산이 동서 산과 들녘?금강의 중간지대로서 교통요충지였음을 지형이 상기시켜 주었다.
올라갔던 길을 되돌아 나와서 여산면 소재지로 향했다.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인 여산동헌과 느티나무 보호수가 서로의 연륜 속에 오롯이 함께해 왔다. 동헌 옆에는 비석들이 많은데 유독 척화비가 눈에 띄었다. 이를 보는 순간 세계 변화에 둔감한 흥선대원군 때문에 조선은 멸망하고 일제식민지 지배가 떠올랐다.    
이곳에는 천주교 성지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다. 구한말 무진박해로 교인들이 처형된 동헌 앞 백지사터, 숲정이, 배다리가 있다. 전라북도 천주교 4대성지에 속한다. 여산성당과 무명순교자관이 순례객과 탐방객을 자유스럽게 맞이하고 있다. 
이처럼 여산은 유교, 불교, 및 천주교가 시대의 변곡점마다 그 역사적 운명을 민초들과 호흡한 고장이기에 3대 종교 순례지로서 손색이 없다.
천호산에 호남 유일의 석회동굴이자 천연기념물인 천호동굴이 있는데 석산 개발로 자연 훼손이 심하여 눈살이 찌푸려진다. 호기심에 철문을 따고 들어가 보고 싶다. 여산동헌의 쇄국정책을 고수한 척화비처럼 요지부동이다. 여산은 석회석지대라서 토질이 우수하여 양파, 메론 등 특용작물이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인걸은 지령에서 나온다고 했다. 산자수려한 고장에 어찌 인물이 없을까. 이 고장을 본향으로 한 여산 송씨를 비롯한 여산 군?현에 수없이 부임한 수령, 호남을 드나들었던 사람들의 발길이 차고 넘쳤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백의종군 길,  <춘향전>의 이도령이 장원급제하여 남원 춘향이를 만나러 달려가던 길, 동학농민혁명군의 최후 전투지인 공주 우금치로 향하던 길이었다.  
특히 현대 시조의 아버지 가람 이병기의 고향이다. 원수리에는 시조를 현대적으로 혁신하고 한글을 지켜낸 그 생가와 묘지, 가람문학관이 있다. 앞뜰에 서 바라본 천호산의 자연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가람은 말했다.“내가 고적한 용화산 진사동에서 생장하여 나의 십 여에 가장 반기던 건 그 주위 산야의 대자연한 풍경이었다. 이것이 가장 인상이 깊고 기억이 새롭다.” 

전라도제일관문, 황화정을 찾아서

         
국도 1호 여산면소재지를 지나 월곡 마을에 지함고개가 있다. 충청도와 전라도 경계이자 여산면의 초입이다. 이 고개를 넘으면 충청남도 논산시 옛 황화면이다. 황화면은 조선 여산부 관할이었다가 1914년 일제가 읍?면을 개편 때 면으로 갈라져 나왔다. 박정희가 5.16군사 쿠데타 후 전라도를 약화시키고자 충청도로 편입시켰다. 현재 황화면이 연무대읍으로 편입되었다. 명백한 전라북도 땅이었음을 조선시대 황화정이 입증해 주고 있다.
황화정은 <여산부읍지>에 읍내 북쪽 10리에 있다고 하였다. 황화정의 현 위치는 육군훈련소 입영심사대로 추정되고 있다. 정각은 온데간데없고 돌비석만 남아있었다고 한다. 그 돌비석마저 봉곡서원을 거쳐 황화정 3구 경로당 앞으로 옮겨져 왔다. 이 정자는 조선 전라관찰사의 신구 교대 장소였다. 속설에 의하면 중국 사신이 머물다 갔다고 하여 황화정(皇華亭)이라 불렸다고 한다. 이곳에 역(驛)과 원(院)이 있었으니 전라도 북쪽 관문의 상징성을 짐작할 수 있다. 여산이 전라도의 관문이라 오늘날까지 회자되게 되었다.    
호남제일문이 전라도 감영이 있던 전주시 월드컵경기장 옆에 세워져 있다. 전라도를 상징하는 전라도제일관문을 여산에 세워야 한다. 황화정과 전라감사 임무교대식을 복원하여 전라도 문화도 재창조 되었으면 한다.
익산 국도 1호 답사는 남녘에서 불어오는 따뜻한 봄바람을 타고 온기가 넘치는 왕궁면 온수동에서 시작하였다. 백제왕도 왕궁리 유적과 마한 옛 수도 금마저를 거쳐 잃어버린 옛 전라도 땅 황화에서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머릿속만 혼란스러운 채 운전대를 익산으로 돌릴 수밖에 없었다. 익산 국도 1호가 관통하는 왕궁 ? 금마 ? 여산은 길 위 인문 보물이다. 이번 나 홀로 여행은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하여 새것을 알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