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임금이 현명한지 아니면 어리석은지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중국 당나라 태종 이세민의 황후가 명쾌하게 답을 했다. 군명신직(君明臣直). 임금이 현명하면 신하가 올곧다. 즉 군주를 대하는 신하의 태도를 보면 군주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잘 알다시피 이세민은 골육상쟁으로 황위를 찬탈했지만, ‘정관(貞觀)의 치(治)’로 불리는 중국의 황금시대를 연 명군이다. 리더로서 그의 독보적인 장점은 쓴소리를 경청하고 이를 실천하는 능력이었다. 그래서 그는 유능하면서 직언하는 신하들을 많이 뒀는데, 그 중 위징(魏徵)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입바른 소리를 했다.

하루는 이세민이 아침부터 위징에게 잔소리를 심하게 들었다. 이에 열 받은 그가 황후를 만난 자리에서 조회 때마다 자신을 욕보이는 위징을 죽여 버려야겠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그 말에 황후는 의관을 정제하고 그에게 절을 하면서 말했다. 황제의 노여움을 개의치 않고 바른말 하는 신하가 있는 것을 보니, 황제의 밝음이 크게 드러나고 있음을 축하한다는 것이다.

아무튼 위징은 이세민을 섬기면서 무려 300번 가까운 ‘아니 되옵니다’를 외쳤다고 한다. 한 번은 위징이 이세민의 잘못을 10가지나 지적해서 상소를 올렸다. 그 하나하나가 이세민으로서는 참으로 민망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이세민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위징의 상소를 병풍으로 만들어서 항상 봄으로써 자신을 경계함은 물론이고, 사관(史官)에게 이를 역사에 기록하도록 명했다.

이세민과 위징, 참으로 난형난제가 아닐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세민도 명신들의 진언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피눈물을 흘린 사건이 있었다. 고구려 원정에서 대패하고 퇴각하면서 이세민은 위징이 살아있었다면 전쟁을 끝까지 막았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니, 무상의 권력을 제어하는 올곧은 신하의 존재가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역사 특히 전제군주시대의 역사는 사실 상당부분 왜곡이 많았을 것이다. 권좌에 오르면서 숱한 패륜을 저지른 이세민 또한 자신의 치세를 미화시키고 정통성을 얻고자 하는 욕망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성군의 길을 걷고자 노력했을 것이고, 그와 신하들의 대화를 기록했다는 <정관정요貞觀政要> 또한 상당부분 편집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러 정황을 볼 때 이세민이 현군이었음은 틀림없는 것 같다.

이세민의 치세에는 유독 바른말을 하는 명신들이 많았는데, <정관정요>를 보면 그들이 쓴소리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한 가지를 찾아볼 수 있다. 그들이 매우 청렴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들이 죽었을 때 집이 누추하고 사정이 빈한해서 이세민이 장례를 지원한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고, 비리나 부정을 극도로 경계했다는 일화들이 나와 있다. 최고 권력 앞에서 당당하게 직언하면서 이세민에게 위민정치를 강제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의 삶에 대한 자신감에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흔히 이세민을 소통의 달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가 소통을 하지 않고는 통치를 할 수 없도록 만든 명신들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이세민의 도량이 남다른 면도 있지만 말이다. 그래서 이세민에게 군명신직(君明臣直)을 말하면서 그를 달랬던 장손(長孫) 황후의 말에는 신직군명(臣直君明) 즉 신하가 곧아야 군주가 현명해진다는 함의도 숨어있다고 보인다. 곧 이런 이치를 알고 충언을 가납하면서 실천하는 것이 명군의 조건이라고 하겠다.

좋은 말은 귀에 거슬리는 법이라고 하니, 누군들 군주에게 거침없이 쓴소리 하는 것을 좋아하겠는가? 또 아무리 뛰어난 군주라고 하더라도 사사건건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을 마냥 좋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소통의 본질이 서로 의견을 교환하면서 보다 나은 결과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생각하면 권력을 지탱하는 신하들이 군주에게 끊임없이 쓴소리를 하면서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야말로 정치의 시작이고 끝이요, 군신 사이의 유일한 의리라고 하겠다.

위징의 사후에 이세민은 묵자(墨子)에 나오는 이인위경(以人爲鏡)의 가르침을 빌어서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이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면 의관이 바른지를 알 수 있고,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성쇠에 대한 도리를 알 수 있으며, 사람을 거울로 삼으면 자신의 잘잘못을 알 수 있는 법이다. 위징이 죽었으니 나는 거울을 잃어버린 것이다.”

쓴소리를 듣지 못하는 군주는 곧 혼군(昏君)이 되니, 불의에 엎드려서 입을 열지 않는 신하야말로 만고의 역적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