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김 현 철 

작년 우리시 어양공원에서 전라북도 마을기업 박람회가 열렸다. 적은 예산으로 조촐하게 치러진 행사였으며, 참가한 마을기업 또한 15여군데 남짓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행사에서 의미 있는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 지역 한 마을기업이 지역화폐의 형태인 호혜화폐 1만원권을 500만원어치 발행하였고 약 300만원정도가 뿌려졌다. 이 호혜화폐는 그 화폐를 발행한 마을기업 제품 1만원어치를 구매하면 제품원가 4천원만 지불되고 6천원을 돌려받을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돌려받은 6천원은 다른 마을기업 제품을 구매하는데 쓸 수 있었다. 이 화폐는 현금으로의 태환이 가능하기 때문에 물건을 팔고 받은 화폐는 행사가 끝난 후 정산 후 현금으로 환전하는 것이 일반적일 것이다. 하지만, 특이한 일이 벌어졌다. 행사기간 중 마을기업들이 다른 마을기업의 제품들을 호혜화폐로 거래하기 시작하였다. 그 거래는 활발하게 이루어졌으며 300만원의 호혜화폐는 1천만원 이상의 거래를 촉진시켰다. 화폐량은 그대로인데 거래가 늘어남으로써 거래액이 증가하였고 전체 매출이 증가한 것이다. 이를 승수효과라 하는데, 호혜로 시작된 행동이 마을기업 전체로 확산되었고, 발행된 화폐가 거래에 사용된 횟수가 늘어난 결과로 우리는 호혜화폐를 통해 경제의 순환가능성을 확인하게 되었다.

역사적으로 화폐는 대부분 지역화폐였다. 우리가 사용하는 국가화폐가 일반적으로 통용된 것은 불과 3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종이로 된 화폐의 경우 우리나라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시도되었으나 신용부족과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유럽에서는 은화부족으로 인해 스웨덴의 스톡홀름 은행이 최초로 발행하였다. 영국에서는 17세기 말에 발행되었다가 중단되었으나 은본위제와 금본위제가 본격화되면서 재개되었다. 중국의 경우 원나라 시대에 ‘교초’라는 지폐가 통용되었는데, 마르코 폴로가 원나라에 갔다 와서 ‘중국은 금화 대신 종이로 돈을 대신한다’라고 하니 모두가 그를 허풍쟁이라 비웃은 일화는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러한 국가화폐는 시장자본주의 하에 교환가치에 집중하도록 삶의 방식을 변형해 왔다. 이윤을 추구하는 시장자본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상품의 유용성이 아니라 시장가치(시장가격)이므로 사용가치(유용성)보다 교환가치(시장가치)를 더욱 중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살고 있는 집이 1억에서 2억으로 올랐다고 할 때, 이는 시장가격이 올라간 것으로 교환가치가 상승한 것이나 동일한 집에 살고 있으므로 사용가치는 그대로인데, 우리는 사용가치보다 교환가치의 변화를 중요하게 여긴다. 원래 화폐는 사용가치와 교환가치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하지만, 시장자본주의 하에서 교환가치가 일반화되면서 화폐는 다양한 기능성을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시장자본주의 체제에 살고 있는 우리는 경제성장률이나 GDP 등 화폐로 계량화 될 수 있는 경제에 매몰되어 있다. 하지만 사회라는 시스템을 구성하고 있는 경제적 요소에서는 화폐로 계량화할 수 있는 경제활동만 있는 것이 아니다. 가사일, 육아라는 가족공동체의 경제활동과 품을 나누고 공동으로 아이를 돌보며, 물건을 나누어주는 선물경제 등 화폐로 계량화되지 않는 경제도 존재한다. 이렇듯 시장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경제활동은 비경제활동으로 치부하며, 오로지 화폐를 벌어 부를 쌓으려는데 몰입하는 사회에서 가족을 포함한 공동체는 해체되고 파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경제성장과 삶의 질이 반드시 비례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교환가치가 아무리 늘어나도 사용가치가 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살림살이는 나아질 수 없는 것이다.

저명한 사회적경제 학자인 칼폴라니는 화폐를 토지와 노동과 함께 허구상품이라 말하였다. 애초에 시장에서 판매되고 생산된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득, 이윤, 임금, 지대 등의 수입이라 부른 것들에 의해서 사회적 관계와 가치가 유지되는 것이라면, 이러한 것들은 등가체계 속에 포함되어 공정해야 된다는 것이다. 옛 중세 길드의 경우, 이러한 수입의 액수는 자치도시 또는 시장에서 조합원의 행위에 의해 결정되었으며, 조합원들은 동료의 가격을 위협하는 헐값 판매를 거부하고 또 동료들 사이에서 승인된 수입 이상을 얻게 하는 가격의 수락도 거절하였다. 이는 교환가치로의 매몰이 사회의 지속성을 깨뜨리기 때문인 것이다.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 매점매석을 하거나 담합을 하는 등의 행위는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이웃들의 생과 삶을 고려하지 않는 것이며, 결국 사회는 파괴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지역화폐는 공동체와 상품시장 내에서 경제활동의 본연적 모습인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모두를 가져야 한다. 통화승수를 높이기 위해 이자를 없애야 하며, 화폐의 매매를 통한 상품화를 억제하여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지역화폐의 목적인 공동체성의 회복과 지역 내 경제가 순환될 수 있도록 디자인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