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로 시작되는 양시헌의 한시는 초등학교 졸업정도의 학력이면 누구나 아는 내용이다. 대국(大國)이라고 자칭하는 중국은 인구로 많지만 땅도 넓어 높은 산도 많은 모양이다.

그 많은 산중에 중국의 역대 황제가 봉선(封禪 하늘신, 땅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하는 곳이 태산(泰山)이다. 이 산은 대망을 품었던 인물이나 우리나라의 대선에 뜻이 있던 몇몇분들도 오른 경험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필자도 수년 전 오른 적이 있지만 태산은 높은 산은 아니었으며 그 의미는 전혀 딴판이었었다.

각설하고 중국에서는 태산에 오를 때 비를 맞으면 큰 뜻을 이룬다 하는 우중등 태산(雨中登泰山)의 속설을 이야기한다.

기원전 195년 진시황이 봉선을 위하여 태산에 오를 때 폭풍우를 만났고 진시황은 큰 나무 아래로 피했으니, 시황제의 반대편에 서서 배척받던 유생들은 “꼴 좋다”고 비아냥거리며 황제가 태산에 올랐지만 봉선을 행하지도 못했다고 헛소문을 퍼트리고 사마천은 말하기를 “덕행을 갖추지 못한 황제에게는 봉선의식을 올릴 자격이 없음을 폭풍우로 알려준 것”이라고 못박아 말하였으며, 시황제가 봉선제를 거행한 뒤 12년 뒤 진나라가 망했다고 했다(사기, 봉선서). 지존인 황제가 비를 흠뻑 맞고 허둥대는 상황을 상상해보면 얼마나 낭패였을지 사마천은 시황제의 태산등정 때의 폭풍우를 분서경유에다 포학정치로 민심을 잃은 황제에게 망국의 조짐을 보여준 것이라 해석하고 이해케 했다. 그러나 그것은 중국인 특유의 덕담 정도로 해석하면 좋을 듯. 오래전 우리 초·중·고 시절 소풍이나 운동회에 비가 오면 교장선생님의 날짜 잘못 선택을 뱀을 죽였느니 비위사실이 있으니 곤경으로 밀어붙여 난처하게 만들곤 했다.

이와 같은 속설은 씁쓸하기도 하지만 진정 태산이 주는 금언은 대단하다. 그 첫 번째로 ‘태산에 오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登泰山而小天下)’는 공자의 말씀은 깨달음을 얻으면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그 두 번째 위대한 역사가 사마천의 이야기도 새겨들어야 한다. 사람의 어떤 죽음은 태산처럼 무겁고 또 다른 어떤 죽음은 새털처럼 가볍다<한서, 사마천전>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가 일생을 살면서 무엇보다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인생은 무척이나 힘든 것이다’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한평생 살아가기가 결코 쉽지는 않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몸담고 살아가는 이 사회는, 인생은 힘들지 않으며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쉽게 얻을 수 있고 차지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매일 쏟아내고 있다. 과학기술 즉, 첨단 아이티(IT)의 영향으로 버튼 하나면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짧은 시간에 체중을 절반으로 줄일 수도 있고 자격증 쉽게 따고 무슨 부동산에 투자하면 억대 수입이 간단하게 이루어진다는 달콤한 말을 계속 강조한다. 결국 반복하여 듣다 보면 진정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게 되니 조금 노력하고 많은 희생이 없이도 쉽게 성공할 수 있다는 한마디로 인생을 힘들지 않고 살 수 있다고, 태산도 간단하게 오를 수 있다고 말한다.

우리 익산에서는 문화예술대제전, 전국체육대회 이후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가운데 개막된 국화축제 한 쪽 부스에서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다. 한 할머니가 바람찬 시장바닥에 좌판을 벌여놓고 힘든 하루 해를 보내는 장면의 사진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찡하다. 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다르고 그 운명을 개척·창조해가는 보람과 긍지는 더욱 제각각이다. 이 노파에게도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권리는 있고 또한 죽는 날까지 노동의 대가로서 떳떳이 삶을 꾸리는 의젓함과 여유가 엿보인다.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한 자에게 결코 평화의 위안이 없다. 요즘 주위 환경 및 세대를 바라보면 절로 긴 한숨이 나온다. 마치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서 멸망하기 직전의 「소돔과 고모라성」을 연상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