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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은 원숭이가 아니다

익산시민 유 성 무

소통신문 기사를 통해, 익산시의회가 시청사 신축 계획에 대한 합리적 검증을 촉구하는 것을 봤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지금이라도 신축 계획 전반에 대해 숙의하고자 하는 모습을 보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청사 신축은 지역 장기발전계획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니만큼 철저히 검토를 함이 마땅하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시청사 신축 계획은 KTX 전북혁신역 사전타당성 검토 용역 발주와 함께 선거 판도를 뒤흔든 이슈였다. 당시 정헌율 후보자는 LH가 시의 공유재산 개발이익으로 시청사 신축비용을 조달함으로써, 시민의 세금 부담 없이 시청사 신축하겠다고 말했다. 더구나 정 후보자가 예비후보자 홍보물에 자신의 중앙인맥을 활용하여 국비사업으로 시청사 리뉴얼사업을 유치했다고 공표한 사안이니만큼, 이에 대해 시의회가 검증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다.

시의회 의원들이 제기한 문제점들 중 첫 번째는 1995년 이리시-익산군의 통합과정에서 북부권으로 청사를 이전하기로 한 협약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원론적 주장을 떠나 현실을 살펴보면, 익산시의 발전 비전은 국가식품클러스터-백제역사문화벨트-제3산단 등 동북부권에서 찾을 수 있다. 시청사가 익산의 남쪽지역인 현 소재지보다 비전 사업지역과 근접한 익산 중앙부로 이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두 번째로 제기된 문제점은 LH가 주도하는 리뉴얼 사업에 대해 현 시장이 주장한 것처럼 시청사 신축비용을 공유재산 개발이익으로 전부 충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검증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개발 대상 공유재산은 구 경찰서 및 상하수도사업소 부지라고 한다. 이곳들에 건물을 짓고 분양하여 창출한 이익으로 청사 신축비용을 충당할 수 있는지 검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네이버 지도로 개략적으로 잰 면적을 기준으로 보니, 구 경찰서 부지는 7,900m2(2,390평)이고, 상하수도사업소 부지는 5,800m2(1,755평) 정도다. 구 경찰서 부지가 일반상업지역이라면 용적률 상한이 800%로서 건축 가능한 최대 지상연면적은 63,200m2(19,120평) 정도가 될 것이다. 상하수도사업소 부지가 2종 일반주거지역이라면 용적률 상한이 250%로서 최대 지상연면적은 14,500m2(4,390평) 정도가 될 것이다.

구 경찰서 부지에 지어질 건물의 평당 평균 분양가를 1,500만원이라고 하면 분양가가 2,868억원이고, 상하수도사업소에 지어질 건물의 평당 분양가를 900만원이라고 하면 395억원이다. 상당히 높게 잡은 분양가를 전제로 한 것이지만 합계 3,263억원의 분양이 가능할 것인데, 순이익률이 10%가 돼도 326억원밖에 나오지 않는 사업구조로 보인다. 물론 이것도 LH가 건축부터 분양 완료시점까지 모든 책임을 부담함으로써 익산시에게 10%의 확정 이익을 보장하기로 계약을 할 때나 가능한 경우다.

그렇다면 326억원 정도로 어느 정도 규모의 건물을 지을 수 있을까? 부동산 통합정보를 볼 때 현재 익산시 본청 건물(10개 동) 연면적이 11,163m2(3,380평) 정도인 것 같은데, 사무공간 증설 및 주민편의시설 등을 고려해서 지상 연면적을 2배만 늘려도 7천평 정도가 될 것이다. 326억원으로 최신식 건물 7천평을 짓는다면 평당 465만원으로 공사비와 부대비용, 금융이자 등 일체의 비용을 충당해야 하는데, 과연 이게 가능한지는 전문적인 경험과 지식이 있는 시민들이 판단해보면 알 것이다.

그런데 이 계산에는 지하시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최근 지어지는 건물은 주차장 및 기계시설 등을 최대한 지하로 배치하고, 지상은 조경 등을 통해 쾌적한 공간을 만들고 있다. 조경과 상대적으로 건축비가 높은 지하부 건축을 고려하면 326억원 정도로는 법제도나 시민정서에 제대로 부합하는 7천평 정도의 미래형 시청사 신축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그나마 이 정도의 시청사를 지으려고 해도 예산이 부족할 것이다. 시청사 신축에 국비 지원이 없는 한 부족한 돈은 어떤 형태로든 시 재정에서 지출이 이뤄질 것인 바, 시민의 세금으로 충당될 수밖에 없음이 자명하다. 물론 LH에서 분양가를 앞서 든 가격보다 많이 높여서 순이익을 크게 내면 가능하겠지만, 시민 세금 한 푼 없이 시청사를 신축하겠다는 말은 도무지 납득하기 힘든 논리다.

물론 시의원이 예시한 다른 지자체의 경우처럼 개발이익을 제외한 공사비 등을 LH가 먼저 부담하고, 지자체가 30년 정도를 매년 수십 억원씩 지불하는 구조라면 가능한 사업일 것이다. 결국 노후청사 리뉴얼 사업은 우선 당장 부족한 건축 예산을 빚을 내 조달하고 장기간 나눠 갚는 방법에 불과하다. 시민들이 납부할 미래의 세금을 담보로 돈을 빌려 시청사를 짓는 사업방식일 뿐이다.

수십 년 동안 나눠 갚아야 할 공사비가 한 푼도 없는 것처럼 포장하면 곤란하다. 고사에 나오는 저공은 그나마 주겠다는 도토리 7개를 속이지는 않았으니, 시청사를 시민 세금 없이 짓겠다는 것은 조삼모사(朝三暮四)와 비교도 안 되는 술책이다. 시의회는 시청사 리뉴얼 사업 계획에 대한 자료를 철저하게 검증해서 타당성이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음으로써, 시민들이 원숭이보다 못한 존재로 전락하는 참극을 막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