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 프라이카우프

프라이카우프

하늘숲교회 담임목사
강 남 웅

지난 16일 오후 강원도 양구에 있는 전방사단의 휴전선 감시 초소(GP) 내 화장실에서 김모 일병(21)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쓰러진 채 발견되어 인근 병원으로 후송 중 숨을 거둔 사고에 관련해 며칠째 전국이 들끓고 있다. 군종장교로 20여년을 근무하면서 장례식을 집례하며 유족들의 상상할 수 없는 슬픔과 아픔을 함께 나누었던 경험들이 있기에 참 마음이 아팠다.

이런 사고가 있을 때면, 이전까지는 주로 군이 고의적인 사고를 자살로 은폐하려 한다는 말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과 관련해 북한군의 소행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나서는 언론들과 정치인이 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이번 사고와 관련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오고 있고, 일부 네티즌들은 계속해서 북한 측 소행이라는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거나 대통령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고 있다. 한마디로 황당한 뉴스요 말 그대로 억측이다.

지난 9월 평양정상회담이 끝나고, 북측은 우리에게 최상급(칠보산) 송이버섯 2t을 보냈고, 정부는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한 미상봉 이산가족 4000명에게 추석선물로 전달했다. 북한은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선물로 최상급 송이버섯 3톤을, 2007년 정상회담 때에도 4톤을 선물한 바 있다. 우리로서는 고마운 일이지만, 그 송이버섯을 채취하기 하기 위해 동원된 북한 주민들은 송이버섯 1kg에 고작 밀가루 10kg을 받는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특히 이번에는 북한 당국이 송이버섯 선별에 더 신경을 쓴 것으로 보아서 우리 대통령과 방문단에 대해 특별히 정성과 예우를 갖추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일부언론과 정치인들은 북한에서 보낸 송이가 핵실험에 따른 방사능으로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산 송이, 방사능 검사는 하고 먹는 건가’라고 우려를 표했다. “김정은과 공산당 수뇌들도 방사능 오염 우려로 안 먹는다는 송이버섯 선물을 받고 감읍해 하고 있다”고 조롱하기까지 했다.

이번 달에는 청와대가 9월 평양정상회담 때 북측이 송이버섯 2t을 선물한 데 대한 답례의 표시로 제주 감귤 200t을 북에 보냈다. ‘선물은 그 자체로 상징적인 메시지를 담은 미디어’라고 한다. ‘감귤 선물’에도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답방 등 여러 메시지가 담겨 있을 것이고, 무엇보다도 북녘 동포들이 제철 제주 감귤에서 오랫동안 잃어버린 남도의 향취를 느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고 믿는다. 그 감귤은 청소년과 평양시 노동자들에게 분배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를 두고, “군 수송기로 북에 보냈다는 귤 상자 속에 귤만 들어 있다고 믿는 국민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냐?" 고 의혹을 제기하는 정치인과, 감귤을 보낸 것을 놓고 북한에 조공(朝貢)을 보낸 것이 아니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 사람들이 과연 조공이란 말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이런 일을 볼 때마다 우리사회의 큰 문제점 중 하나를 발견한다. 그것은 다양한 개연성(coincidence)의 세계를 너무나 쉽게 단순화시켜 인과성(causality)의 세계로 둔갑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이 통일되기 전 27년간 비밀에 부쳐진 프로젝트가 하나 있었다. ‘프라이카우프(freikauf)’ 정책이다. 경제적 대가를 지급하고 동독 내 정치범을 서독으로 송환하는 프로젝트였다. 1963년부터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무려 27년간 지속되었다. 1962년 서독의 개신교연합회가 동독에 수감되어 있던 150여명의 성직자들을 서독으로 데려오면서 시작된 프라이카우프로 동독 정치범 33,755명과 그들의 가족 25만 명이 서독에서 자유를 찾았다. 서독은 인도적 이유로, 동독은 체제 안정을 위해 가능한 일이었다. 이에 들어간 비용만 34억 4천만 마르크에 달했다. 서독 정부는 뒤로 빠지고 실제 실행은 서독 개신교연합회가 일임했다. 이 프라이카우프의 진짜 힘은 27년간 정책이 지속되었다는 사실에 있다. 27년 동안 우파인 기독교민주연합과 좌파인 사회민주당이 번갈아 가며 집권했지만, 어느 집권당도 프라이카우프를 중단하지 않았다.

과연 한국에서 이런 일이 가능할까 싶다. 바라기는 남북정책만큼은 집권이나 정쟁의 도구가 아니라 평화통일이라는 하나 된 목표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지속되는 청치와 사회가 되기를 기도한다. 무엇보다 분노와 슬픔, 긴장과 반목의 한반도를 평화의 터전으로 일구기 위한 한국 종교계의 적극적인 노력과 역할이 중요한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