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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산업 유니콘을 만들어보자

익산시민 유 성 무

얼마 전 왕궁에 있는 국가식품클러스터 근처에 갔다가 오는 길에 클러스터를 돌아봤다. 70만평이라고 하니 땅은 제법 넓었지만, 아직도 많은 곳이 비어있어 이곳이 국책사업 현장이라는 느낌이 와 닿지 않았다. 세계 4대 식품클러스터를 능가할 익산의 미래 성장 동력이란 말이 민망할 정도였다.

물론 시간이 가면 언젠가는 공장들이 다 들어설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나가면서 본 국가식품클러스터에서 2단계 사업은 고사하고, 1단계 사업부지의 분양 및 기업 입주도 쉽지 않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사업을 추진한 정부와 전라북도, 익산시가 사업 성공을 위한 특단의 노력을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클러스터 이론을 보면, 클러스터는 3가지로 구성된다. ①발전방향을 제시하는 ‘비전 제시자’ ②다양한 생산요소를 공급하는 ‘전문요소 공급자’ ③여러 요소들을 하나로 묶어 전체를 이끌어가는 ‘시스템 통합자’로 구성된다. 이렇게 볼 때, 익산의 국가식품클러스터는 ①국가와 전라북도가 ‘비전 제시자’로 ②다양한 중소기업들과 교육연구기관들이 식품생산에 필요한 원재료와 가공품 및 전문인력을 공급하는 ‘전문요소 공급자’로 ③이들을 체계적으로 연계시켜 식품산업을 이끌 대기업이 ‘시스템 통합자’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식품클러스터는 사업계획 입안 과정에서 네덜란드의 푸드 밸리(Food Valley)를 상당 부분 벤치마킹 했다고 한다. 푸드 밸리는 오랜 농업 역사를 가진 네덜란드의 민-관-산-학-연이 장기간에 걸쳐 체계적으로 구축하여 2015년 기준 연간 70조원의 매출을 올린 거대한 산업복합체다. 그런데 국가식품클러스터는 실행과정에서 이런 유기적 협력체계가 없는 것 같다.

푸드 밸리의 비전 제시자는 세계적 농업대학과 연구기관이 결합한 와헤닝언 대학교 연구소(Wageningen University & Research center, 이하 와헤닝언 UR)라고 한다. 와헤닝언 UR은 푸드 밸리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동시에 강력한 산-학 연계 프로그램을 통해 인재와 연구 성과를 제공하면서 푸드 밸리를 이끌고 있다.

와헤닝언 UR은 농업과 식품 분야만을 연구하고 교육하는 체계가 아니라, 농업부터 시작해서 관광학, 동물과학, 환경과학, 음식가공학 등 20여개의 학부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또한 생명과학 응용분야, 기후학, 영양학 등은 말할 것도 없고, 경영학과 경제학 등 30여개의 석박사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즉 식품산업을 단순한 제조업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전방산업인 농생명과 기초 및 응용 과학 분야, 그리고 후방산업인 요식업 등 관광 서비스산업까지 망라해서 정의함으로써 산업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고 하겠다.

푸드 밸리는 와헤닝언을 중심으로 반경 30Km에 위치한 8개 지자체에 걸쳐 있다. 푸드 밸리 형성 초기에 와헤닝언 UR과 같이 비전 제시자 역할을 했던 지자체들 또한 푸드 밸리에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대학 및 연구소, 기업에 대한 지원은 말할 것도 없고 지자체 및 중앙정부와의 협력체계 구축에 주력하고 있다.

푸드 밸리에는 네덜란드와 세계 전역에서 원재료를 조달하는 망이 구축돼 있다. 여기에 20여 개의 연구소와 2천6백여 개의 기업들에서 1만 명 이상의 농식품 과학자들이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혁신을 위해 협력과 경쟁을 펼치고 있다. 푸드 밸리에는 이런 전문요소 공급자들이 촘촘하게 가치사슬을 이루고 있다.

네슬레(Nestle), 유니레버(Unilever), 하인즈(Heinz), 하이네켄(Heineken), 프리슬레 캄피나(Royal FrieslandCampina) 등 세계 유수의 식품 거대기업들이 푸드 밸리에 진출하여 시스템 통합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자본과 연구개발능력, 마케팅 파워를 가진 거대기업들이 푸드 밸리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다. 이들은 또한 농식품산업에 ICT, AI, 로봇, 바이오 등 첨단기술을 접목하고 식물공장 상업화 등을 통해 산업의 개념 자체를 변화시키고 있다.

푸드 밸리의 성공은 클러스터 3요소들이 혁신과 성장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안착시켰기 때문이다. 그런데 익산의 국가식품클러스터 성공을 위해서는 아직 갈 길이 멀고도 험난한 것으로 보인다. 클러스터 3요소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국가식품클러스터는 국책사업이기 때문에 익산의 역할이 크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익산이야말로 사업의 성패에 결정적인 키를 쥘 수도 있다. 사업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통해 푸드 밸리처럼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과 방법론을 개발하여 국가적 지원을 확보함으로써 사업 성공을 견인해야 한다.

최근 정부가 ICT 분야 중심으로 12조원을 지원하여 5~10년 이내에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인 신생기업) 20개 이상을 육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실상 직접적인 일자리 창출능력도 크지 않은 ICT 분야에 엄청난 지원을 투입하겠다는 것이다. 익산이 푸드 밸리처럼 되기 위한 준비를 잘하면, 일자리 창출과 혁신성장이 둘 다 가능한 식품클러스터 육성을 위한 예산과 정책적 지원을 어찌 이끌어내지 못하겠는가?

식품산업이란 드넓은 초원을 질주하는 유니콘을 익산에서 볼 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