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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어른

익산사회적경제지원센터장
김 현 철

올해 고등학교를 입학하면서 기숙사에 들어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빠! 학교에서 자율동아리 활동계획을 내려고 하는데, 아빠가 하는 사회적경제로 하면 어떨까?” 평소 집에서 사회적경제라는 이야기를 화두로 이야기해본 기억이 없었는데, 아빠가 읽는 책이나 기사, 그리고 가끔씩 주관하거나 열리는 행사와 박람회를 통해 어려서부터 학습되어 있었나 보다. 한편 기특하기도 하여 계획서를 작성할 때 도움이 될까 자료를 찾아 보내주었다. 주말에 집에 온 아이는 아빠가 보내준 자료와 여러 사례를 보고 친구들도 관심과 흥미를 가지게 되었고 사회적경제를 주제로 자율동아리 활동을 하기로 했다고 뿌듯해 했다.

정부는 작년 ‘사회적경제 인재양성 종합계획’을 발표하면서 풀뿌리 사회적경제의 토대를 구축하기 위해 초중고 교육과정에 반영하는 등 학령기 교육을 확대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교과목을 개설하고, 사회적경제 연구학교를 운영하며, 사회적경제 캠프를 확대하고 학교협동조합을 활성화하는데 맞추어져 있다. 전라북도 교육청 또한 ‘학교협동조합 민관협의회’를 구성하고, 사회적경제 학습동아리 등 교육과 체험 학습을 지원하고 정책포럼 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학교협동조합 설립과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듯 정부와 교육청이 학령기 아이들에게 사회적경제를 교육하려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적경제가 시장자본주의의 실패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또는 보완적 경제로 대두되었다는 맥락에 그 결을 같이 한다. 경제적 부가 선택의 절대적 이유가 되어버린 사회에서 학벌은 중요한 성공요인으로 작동하였고 성적위주의 교육성과 정책은 경쟁만을 야기하였으며 이로 인한 교육의 실패는 참여, 협동, 공유, 나눔의 사회적경제 원리를 필요로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경제 원리에 의한 교육방식은 주위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협동조합으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축구 클럽인 ‘FC바르셀로나’의 유소년 육성 시스템인 ‘라 마시아 (La Masia)’에서는 우정, 존중, 팀워크, 동료애, 배려, 희생, 겸손, 포용이라는 바르셀로나 고유의 가치를 가르친다. 축구 기술뿐만 아니라 인성교육을 철저히 하고 그러한 가치를 몸에 익히도록 하며, 이는 승리만을 위한 축구가 아닌 매력적이고 품위 있는 경기력으로 나타나게 된다.

국내에서는 전국적으로 70여개 이상의 학교협동조합이 설립되었다. 최초 학교협동조합은 영림중학교의 ‘사회적협동조합 여물점’으로 학교매점에 대한 문제인식에서 출발하였다. 학생들의 먹거리를 책임지고 있는 학교매점의 불량식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교 구성원들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직접 운영까지 하게 된 것이다. 이 매점 식품의 80%는 친환경 식품으로 아이쿱 등의 생활협동조합에서 조달받고 있으며, 학부모회에서 진행하는 체육복 공동구매 사업을 위탁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협동조합이 매점위주의 사업을 하고 있지만, 다양한 형태의 모델들도 나오고 있다. 녹색 친환경 특성화 고등학교로 개편된 성수공업고등학교의 경우, 자전거와 모터사이클을 전문적으로 배우는 에코바이크학과가 있는데, 이 학과의 특성을 살려 자전거 정비와 교육을 주 사업모델로 하는 협동조합을 설립하였다. 광신정보산업고등학교는 협동조합으로 방송영상학과를 만들어 지역공동체에서 개최하는 각종행사를 직접 촬영하고 편집해 방송하는 등의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강원도 영월의 연당초등학교에서는 학교협동조합으로 아로니아를 재배하면서 잼으로 만들어 판매를 하기도 한다.

학교협동조합은 사회적 문제에도 참여한다. 아이쿱생협에서는 생수 뚜껑을 가져오면 1개당 30원의 기금을 모아 캄보디아, 몽골, 미얀마의 정수시설을 만들어주는 ‘세상을 바꾸는 마개 2그램’ 운동을 하고 있는데, 많은 학교협동조합이 이러한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독산고등학교는 캔을 모아 오면 그것을 팔아 축구공을 구매하여 빌려주는 사업을 진행하면서 자원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있으며, ‘미리내 100원’ 운동을 통해 거스름돈을 기부하면 다음에 잔돈이 부족한 아이들이 도움을 받고, 다시 다른 친구들을 위해 잔돈을 기부하는 호혜성을 배우기도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학과 공부 외의 활동에 참여한다고 하면 어른들은 딴생각 하지 말고 공부에 전념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학우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아이들을 사교육 시장으로 몰아넣는다. 세상을 살아보니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더라고 어른들은 말한다. 아이들의 사회적 행동이 마냥 어린 철부지 행동이라고 어른들은 생각한다. 하지만, 필자가 현장에서 본 아이들은 철부지 아이가 아니다. 학교에서 사회적경제를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은 지역사회 구성원으로의 사회참여에 적극적이며, 수동적이 아닌 자치와 참여를 실천하고 있었다. 문제가 발생하면 마냥 어른들에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해결할 능력들을 키우고 있었다. 학교협동조합으로 만들어진 수익을 장학금이나 기부금 등으로 내놓기도 하며, 어려운 환경의 학우들의 생활비를 지원하거나 급식비를 지원하는 등 경쟁보다는 협동이, 내가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닌 모두가 함께 잘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미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더 어른스러운 생각을 가진 아이들이었다. 어른이라고 생각이 어른이 아니 듯, 어리다고 생각이 어린 것이 아니다. 내가 만나본 아이들은 이미 생각이 어른스러운 ‘생각 어른’들이었다. 우리 익산에는 이미 2개의 학교협동조합이 설립되어 있다. 필자는 더 많은 학교협동조합이 설립되길 희망한다. 학교협동조합을 통해 ‘생각 어른’들이 많아지면,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적 가치는 확산될 것이며, 품격 있는 사회, 품격 있는 도시로 변모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