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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점

▲ 윤복순

윤약국 약사 윤복순

대전에서 30년을 지켜온 OO문고가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곳도 세계의 서점들처럼 문화행사도 많이 하고 특히 중고 책 코너를 만들어 이곳에서 나온 수익으론 지역 미혼모 돕기를 했다고 한다. 책이 상할 염려에도 아이들이 엎드려 책을 읽을 수 있는 널찍한 공간을 만들어 유치원 초등학생 견학장소로 쓰이게 했다. 아이들이 질문쟁이로 자라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토니로스의 그림책 “왜요”를 자주 읽어 주어 대표는 왜요 아저씨로 불렸다. 이런 서점이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하니 마음이 아프다.

요즘 “세계 서점 기행” 이란 책을 읽는다. 여행을 좋아해 국내 해외 여러 나라를 다녔지만 서점 구경을 한건 딱 한 번 있었다. 나만 그럴까. 약국에 오는 손님들과 여행 다녀온 얘기를 나눠봤지만 어느 나라에서 서점을 들러봤다는, 꼭 사고 싶은 책을 사 왔다는 얘기는 들어 본 적이 없다. 내 수준이 그렇다는 것이다.

여러해 전 남미여행 때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엘 아떼네오”서점을 구경했다. 여행사 사장님이 현지 가이드였는데 그 서점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 중 하나라고 했다. 원래 여행 스케줄에는 없는 일정이었다. 오페라극장 이었던 곳을 2000년부터 서점으로 리모델링했다. 3층에서 내려다 본 서점 내부는 어느 박물관 미술관보다 아름다웠다. 오페라 무대였던 곳은 카페다. 그 큰 공간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 삼삼오오 차를 마시는 모습은 지성과 감성이 녹아들어 보였다. 이런 서점을 가지고 있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민은 왠지 문화시민, 교양인일 것 같았다. 아르헨티나 하면 그 서점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세계의 내놓으라하는 도시에는 그 도시를 대표하는 서점이 있고 그 서점이 그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고 시민들의 자존심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서점 주인들은 하나 같이 책을 좋아하고 수집하고 읽고 다른 사람들이 이 좋은 책 읽기를 열망한다. 서점을 개업할 때의 의식도 강하다. 단순히 영리 목적보다는 문화공간을 먼저 생각했고 그 실천을 위해 다방면으로 피나는 노력을 했다. 그 열정에 탄복해 책 서점 출판 유통 아무것도 모르는 나도 서점 한 번 해보고 싶은 욕망이 솟았다.

매일매일 수많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어느 책을 선택해 서점에 진열해 놓을 것인가 그들이 선택을 위해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것도 알았다.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니다. 시민들의 문화, 지적향상을 위해 저자와의 대화, 연극공연, 전시회, 유명강사 초청 강연, 연주회, 음악회, 독후감대회 등등 서점의 역할이 무궁무진함도 알았다. 심지어는 식당을 겸한 서점도 있다.

대부분의 독자들은 서점보다는 인터넷으로 책을 구입한다. 서점은 매출이 줄어 경영난을 겪고 이걸 보충하기 위해 식당 카페는 기본이고 굿즈 기념품 등을 만들어 판매한다고 한다.

어느 서점은 처음부터 유명 건축가의 설계로 지어 여러 가지 볼거리를 제공하기도 한다. 상상을 초월한 인테리어에 눈이 휘둥그레지고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을 내게 한다. 신인의 무명작가들이 2~3년씩 서점의 한 공간에서 무료 숙식을 제공 받으며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는 서점도 있다. 그 작가들이 대작을 쓰고 유명작가가 되고 그들이 다른 신인을 키운다. 이런 작가들이 서점이 어려울 때 북콘서트를 열어 힘을 보탠다.

어떤 서점은 경영난으로 폐점 위기에 처했을 때 온 시민이 나서 기금을 만들어 서점을 살리기도 했고, 문인들이 십시일반으로 폐점을 막았다고 한다. 시민들은 서점을 우리 도시의 문화적 품격으로 생각한다. 노벨문학상 작가가 다녀가고 대통령이, 수상이, 다른 나라의 석학들이 다녀갈 수 있는 공간이 바로 서점이다. 그들이 찾는 책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어느 서점 대표는 해발 800미터의 소수민족이 사는 곳에 서점을 냈다. 글을 모르는 사람도 책을 볼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글을 익힐 수 있는 기회를 줘야한다는 것이다. 그곳은 서점이면서 힐링의 공간이다.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들이 산속으로 쉬러 가고 그 서점에서 주변경관을 보면서 책을 읽을 수 있다. 현지인들의 마사지도 받을 수 있다. 마사지를 받으며 현지인들에게 문화 역사 생활을 들을 수 있다. 이런 아이디어가 보태져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고 매출이 늘어나고 일자리가 창출되고 문화교류까지 된다.

일본의 미치코 황후가 투명인간이 되어 혼자서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학창시절 드나들었던 서점에서 책을 읽고 싶다고 했다. 3대째 가업을 이어 100년 넘게 이어진 서점으로 2대 주인은 대학교수를 그만 두고 서점주인이 되었다. 그는 서점이 아니었으면 가업을 잇지 않았을 거라 말했다. 서점에 대한 열정이 지금의 진보초 서점거리를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나라 부산에도 OO도서가 있다. 원래 식당 유흥가였던 곳에 서점이 들어오면서 갤러리, 극장, 미술관, 카페 등이 들어서고 유명 시인들의 시석이 세워진 공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시민들의 약속장소로도 이용된다. 나도 부산에 가면 이 서점을 찾아가 보고 싶다.

요 며칠 사이 책 3권을 받았다. 전북수필 회장이었던 Y의 수필집, 약사문인 회원 K의 시집, 약사문인 O의 고희 일기집이다. 독서클럽 회원인 딸이 집에 올 때마다 읽은 책을 가지고 온다. 가끔은 동네 선생님이 도서관에서 빌려왔다며 책을 주고 가기도 한다. 어쩌다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딸이 인터넷으로 사준다. 서점 간 지가 언제인지 모르겠다. 20대 때는 서점도 잘 가고 적금타서 세계문학전집 한 질씩 사기도 했는데.

대전의 그 서점은 “책 읽어주는 아빠 모임” 등 독서문화 증진을 위한 공로를 인정받아 2022년 대한민국 독서대전에서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이런 서점이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서점이 개인사업장이 아닌 공공사업으로 지식의 생태계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길은 없을까. 책이 있고 서점이 있고 독서토론이 이어지고 문화가 꽃피고 문화강국이 유지되고. 나도 조제실 안에 있는 책을 출입문 쪽으로 내놓아 동네사람들이 빌려볼 수 있게 할까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