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 세 개의 금낭주머니

세 개의 금낭주머니

이리자선원 원장

김 영 주

이제 금년도 며칠 남지 않았다. 세계, 국가, 사회적으로 수많은 희로애락이 있었고 가정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엄청난 희로애락이 있었을 것이다. 특히 익산시에는 시민이 직접 뽑은 시장이 중도하차하는 불행을 맞기도 했다. 이러한 어수선한 세월은 말없이 하늘의 도(道)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또다시 새롭고 희망에 찬 새해를 맞이해야 할 운명이다. 왜냐하면 이는 맞이하지 않으려 해도 반드시 맞아야 하는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왕에 맞으려 하는 운명이라면 좀 더 새롭고 희망차게 맞아야 한다. 그 새롭고 희망의 선물은 우리의 마음을 청명한 가을 하늘처럼 맑고 밝고 훈훈하게 하는 일이다. 그래야 혼탁한 세상에서 편안하게 살 수 있으며, 어지러운 환경에 밝은 판단력을 가질 수 있으며, 가는 곳마다 은혜의 씨앗을 심어 무수한 복을 장만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라는 소설이 있다. 이 소설은 후한 말기 중국 촉, 오, 위나라의 세 맹주인 유비, 손권, 조조가 서로 대결하며 천하를 통일하는 과정을 그린 중국의 유명한 세계적인 소설이며, 필자가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역사소설이다. 이 삼국지에 보면 제갈량이란 분이 나온다. 제갈량(諸葛亮, 181년~234년)은 중국 삼국시대 촉한의 모신(謨臣)이며, 자는 공명(孔明), 별호는 와룡(臥龍) 또는 복룡(伏龍)으로 후한 말 군웅인 유비(劉備)를 도와 촉한(蜀漢)을 건국하는 제업을 이루었다. 221년 유비가 제위에 오르자, 승상에 취임하였고, 유비 사후 유선(劉禪)을 보좌하여 촉한의 정치를 주장했으며, 234년 5차 북벌 중 오장원(五丈原) 진중에서 54세의 나이로 병사하였다. 중국 역사상 지략과 충의의 전략가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가 북벌을 시작하면서 유선에게 올린 출사표(出師表)는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며, 이를 보고 울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고 평하는 명문으로 꼽히고 있다.

삼국지 중에서 제갈량과 관련해 필자가 항상 신기해 한 대목이 있다. 유비와 손권이 대치하고 있을 때, 유비가 형주라는 땅을 차지하고 있던 중 부인이 열반한다. 형주 땅을 차지하려는 오나라의 손권은 유비를 죽이고 형주를 찾으려는 꾀를 내는데 자신의 여동생을 유비와 결혼시켜 여동생을 데리러 왔을 때 유비를 죽이려는 계책이었다. 그래서 손권은 유비에게 사자를 보내 자기 여동생을 줄 터이니 양가가 인척을 맺고 힘을 합쳐 조조를 무찌르자는 뜻을 전한다. 이 때 제갈량은 손권의 계책을 눈치 채고 조운이라는 장수에게 비단주머니 세 개를 주면서 주군 유비를 모시는데 “어려울 때 하나씩 풀어보라”한다. 결국 조운은 제갈량의 세가지 묘책을 열어 무사히 형주 땅으로 돌아오게 한다.

이렇게 제갈량은 현장에 있지도 않았지만 유비를 세 번이나 구했다.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을 읽고 그 관계의 원리를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세상을 사는데 제갈량의 그 세 개의 금낭비단주머니가 있으면 얼마나 수월하게 세상을 살 수 있을까?

필자는 세상 살아가는데 문제를 푸는 그 3개의 금낭주머니가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생활’이라 말하고 싶다.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생활은 마음을 다스리는 생활이다. 부질없는 망상으로 마음을 요란하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온전한 생각은 자기의 책임을 잘 수행하는 것이고, 일에 대하여 실수를 하지 않는 것이고, 무슨 일에나 주의하는 마음을 놓지 않는 것이며, 평상시 정신이 뽑혀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얼마 전에 택시를 탔는데 운전사가 손을 드는 여자를 보더니 차를 세웠다. 그 여자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을 말했고 운전사는 방향이 맞았는지 여자를 태웠다. 그런데 차가 약 4백 미터 정도 갔을 무렵 뒷좌석에 앉았던 여인이 다급한 소리를 했습니다.

“이 일을 어째, 아저씨 차 좀 세워주세요.”

운전사가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짐짓 놀라는 말투로 물었습니다.

“왜 그래요?”

“은행 통장을 놓고 왔어요.”

여인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옷차림으로 보아 모임이 아니면 물건을 사러가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통장을 놓고 왔던 것이다.

부주의한 것이다. 실수를 한 것이다. 결국 여인은 택시에 올라 약 4백 미터를 가고 택시요금 1천원을 냈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여인은 한 순간 자신의 마음을 온전하게 갖지 못하여 부주의와 실수로 생산성이 없는 돈 1천원을 썼고, 시간을 버려야 했고, 만약 약속을 했다면 약속시간도 어겨야 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마음 다스리는 것을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여 전문적으로 수도하는 사람이나 하는 것으로 미루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마음 다스리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챙기는 것이다. 때문에 마음을 관찰하고 챙기지 않으면 세상을 온전하게 살아가기가 어렵다.

요즘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학교에 신발이나 우산, 연필, 심지어는 옷도 놓고 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학과 공부는 잘하는지 모르지만 마음을 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앞으로 어른이 되어 사회에 나가면 사회가 어떻게 될까? 아이들만이 아니다. 지하철 물품보관소에 가면 우산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가방도 수를 헤아리기 어렵다고 한다. 이 모두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어른이나 아이나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두 순간순간 제 정신을 놓고 사는 모습인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늘 신호등이 있는 곳에서 길을 건너려면 신호등의 불이 어떤 것인가를 일단 멈추어 살핀다. 이것이 온전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좌우를 돌아보아 차가 오는지 안 오는지 살핀다. 생각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온전히 생각했으면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다. 이것이 취사이다.

말 한 번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바로 말하지 말고 일단 멈추어야 한다. 온전해지는 공부이다. 그리고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생각한다. 생각하는 공부이다. 그리고 궁굴렸으면 궁굴린 말을 입을 통해 전달한다. 취사하는 공부이다. 이와 같이 매사를 온전히 하여 생각하고 취사하는 공부가 바로 마음이 맑아지고 밝아지며 훈훈해지는 것이다. 새해에는 모든 시민들이 제갈량의 금낭처럼 이 온전한 생각으로 취사하는 생활이 되어 세상도 편안하고 밝아지며 훈훈한 세상이 되기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