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숲교회 담당목사

강 남 웅

 
저의 신혼집은 서울의 반지하(banjiha)였습니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았던 작은 반지하였지만 전라도에서 상경한 가난한 전도사 부부에게는 참으로 행복한 공간이었습니다. 월세 내기에 빠듯했던 기억도 있지만 군종장교 입대를 앞두고 열심히 공부하며 또 첫 아이가 태어나고 자란 아름다운 꿈 터였습니다. 4년을 살았던 이곳은 30여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행정적으로 우리 부부와 자녀들의 본적지이기도 합니다. 

반지하를 신혼집으로 선택한 이유는 아내 때문입니다. 저는 하루 종일 발품을 팔아 살 만하고 적당한 집을 계약하기를 원했지만 아내는 그 중에 가장 저렴한 집으로 결정했습니다. 여러모로 불편하더라도 지금 형편에 맞게 시작하고 조금씩 살림을 늘려 가는 게 좋겠다는 아내의 말을 떠올리면 지금도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뿐입니다.     

당시 반지하에 세 가정이 이웃으로 살았습니다. 우측 보미네 집은 아빠가 사업에 실패해서 형편이 어려워져서 이사를 왔는데 늘 같은 옷을 입었던 것과 전혀 외식을 안했던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늘 귀티 나고 웃는 얼굴이었고 열심히 장사해서 저축을 하여, 집을 마련하여 이사 간다고 할 때 진심으로 함께 기뻐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왼쪽에는 시골에서 상경한 대학생 자매가 살았습니다. 자주 대하지는 못했지만 늘 책을 안고 다니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보미 엄마는 김치나 반찬 등을 나누어 주며 동향을 전해 주었는데 집안이 무척 어렵다는 등, 외모가 예뻐서 인기가 많다는 이야기 등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교사임용고시에 합격했다며 빵을 돌리던 동생의 모습이 아스라이 기억납니다.

이러한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글을 쓰는 것은 서울의 반지하는 결코 누추한 곳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115년 만의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난 9일 서울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에 살던 발달장애 일가족 3명이 침수 사고로 큰 변을 당한 일 때문에, 서울의 반지하(banjiha)가 세계적인 뉴스거리가 되었습니다.

언론에는 그저 반지하 가족으로만 알려졌습니다. 하지만 크리스천 투데이의 취재에 의하면 이들은 적극적으로 신앙 생활하는 누구보다 밝고 행복한 믿음의 가정이었습니다. 이웃들은 특히 동생에 대해 “똑똑하고 일 잘하는 뛰어난 인재였을 뿐 아니라, 발달장애 언니를 돌보고 나이든 모친을 부양하며, 자식을 건사하는 너무 착한 사람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대통령실은 지난 9일 ‘집중호우 침수 피해지역 현장 점검/국민 안전이 최우선입니다’라는 제목의 카드뉴스를 올렸습니다. 대통령이 신림동 반지하 창문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관계자들과 현장을 쳐다보는 사진 위에 “신속한 복구, 피해 지원과 아울러 주거 취약 지역을 집중 점검하고, 취약 계층에 대한 확실한 주거 안전 지원 대책을 조속히 마련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을 실었습니다. 참으로 통탄스런 홍보입니다.

이에 대해 어느 변호사는 “대통령이 수해 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한 곳을 찾아서 누추한 곳에 가서 관계자들도 위로하시고 그런 건 아주 잘한 것 아니냐”고 말했습니다. 누추하다는 지저분하고 더럽다는 뜻입니다. 이는 서민들의 '반지하' 주거 형태를 비하하는 것입니다. 또 '국민의 머슴'인 대통령을 마치 상전으로 받드는 발언으로 들립니다. 참으로 잘못된 자세와 말입니다.

우리나라 반지하의 원래 용도는 방공호였습니다. 1970년대 남북체제 경쟁의 와중에 북한군의 남침 대비용으로 생긴 것이지요. 그래서 단독주택이나 다세대주택을 신축할 때 비상시 방공호 또는 참호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하실 건축을 의무화했는데, 산업화 시대 도시로 사람들이 몰리면서 주택난이 극심해지자 거주용으로 둔갑한 것입니다. 서울의 반지하는 분단과 압축성장이 만들어낸 잔인한 자화상이라 말할 수도 있습니다.

통계청 인구총조사 자료에 따르면 2020년 전국 반지하(지하 포함) 주택은 32만7320가구입니다. 서울에 20만849가구(61.4%)가 몰려 있습니다. 수도권이 전국의 95.9%를 차지하며 대략 62만여 명이 반지하에 살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10일 ‘지하·반지하 거주 가구를 위한 안전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우선 주거 목적으로 지하·반지하에서 거주하지 못하도록 건축법 개정을 정부와 협의키로 했습니다. 또 지하층은 사람이 살 수 없도록 규제를 강화한다는 방향입니다.

하지만 급조하여 발표한 대책의 실효성과 부작용이 우려됩니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반지하는 게으르고 위생 관념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 아닙니다. 반지하가 서민층의 최후의 보루이기도 하지만 꿈과 희망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국민의 삶의 터전임을 기억해야합니다. 부디 반지하의 사람들에게 행복과 상승의 사다리와 징검다리가 될 수 있는 대책과 정책이 바르게 세워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