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사)삼동인터내셔널이사장

김영주

사단법인 삼동인터내셔널(국제 NGO 단체)의 이사장을 맡아 운영한 지 3년이 되었다. 많은 시간 국내 국외를 오가면서 사업을 실행해 오지만, 미얀마에서 발굴한 유학생 두 명이 별 대과 없이 대학에 진학하여 그중 한 명이 졸업을 맞아 설레는 연말을 맞게 되었다. 그가 감사문자를 보냈다. 골자는 ‘세상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한국에 와 삼동인터내셔널의 도움으로 대학을 졸업하게 되었으니 손길이 닿고 발길이 머무는 곳마다 남을 위해 희생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이야기이다.

1995년 5월 6일부터 1995년 11월 12일까지 방영된 KBS 2TV 주말 드라마 <젊은이의 양지>가 있었다. 1980년대 후반, 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의 탄광촌과 서울을 배경으로, 출세를 갈구하는 젊은이들의 야망과 배신을 주제로 해 최고 시청률 62.7%(역대 드라마 시청률 5위)를 기록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작가는 이 드라마를 통해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옛말에 『二十前政丞 三十前郡守 四十前面長』이란 말이 있다. 스무살 때는 정승을 꿈꾸었고 서른 때는 군수, 마흔 때는 면장 정도만으로도 만족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청년 시절의 이상은 원대하다. 그리고 원대해야 한다. 그러나 실천이 결들이지 않은 이상은 앉은뱅이 용쓰는 격이라 하겠다.

화랑 김유신은 젊은 시절부터 그의 큰 꿈을 이루기 위해 작은 현실을 희생했다. 사랑하는 기생 천관의 집 앞에서 애마의 목을 친 그의 칼이 삼국통일의 초석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라를 위한 그의 큰 이상을 이루기 위해 작은 일을 버리는 행동이었다. 이렇게 옛날의 젊은이들은 나라를 민족을 나아가 인류를 위한 큰 이상을 품고 작은 일을 희생하는 결단성 있는 실천을 하였다. 세상 사람들의 입에 회자하는 미담의 주인공들은 모두 자기보다는 남을 위해서 사는 생활이었다.

과연 오늘날의 젊은이는 어떠할까? 지난 수 세기 동안의 역사는 물질과 자유주의가 팽배한 시대였다. 물론 지구의 한쪽 구석에서는 전체주의가 그 착실한 발전을 밟아가고 있다지만 우리 사회는 화려한 물질문명의 발전과 경제성장을 위한 안간힘으로 이어져 온 게 사실이다. 이런 시대사조와 더불어 우리 젊은이들의 이상도 현실적 풍요로 변하고 있다. 이미 그들은 경제적 안정과 착실한 지위의 획득 이외에는 바라는 바가 없게 되었다. 수년 동안의 새로운 풍조인 대학 1년생의 고시열(考試熱)도 이 풍조를 단적으로 증명해 주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관도 확립도 되기 전에, 선악의 기준도 서기 전에 그들은 사법고시, 행정고시에 열중하고 있다. 그러니 그들이 사법고시를 합격하고 검사 판사가 되어도, 그들이 행정고시를 합격하여 국가기관에서 국민을 위한 행정을 펼친다 해도 과연 그들이 업무를 공정하게 처리하고 국민을 위해 희생과 봉사를 할 수 있을까? 확률은 거의 없다고 필자는 생각된다.

현대는 영웅이 없는 시대이다. 코르시카섬의 구석에서 웅지를 품던 나폴레옹도, 통나무 집에서 도끼질을 하며 꿈을 키우던 링컨도 없기 때문이다. 비록 이루어지기 힘든 꿈이지만 쉬 내뱉을 수 없는 그런 이상을 품은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고고홀에서 몸을 뒤흔드는 젊은이가, 휴대폰에 점령되고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을 하는 젊은이가, 일요일마다 산과 들을 찾아다니는 젊은이가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 이웃을 위해, 민족을 위해, 인류를 위한 이상을 품고 있을까? 아니 조금이라도 남을 위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을까?

대학의 동아리들은 대부분 연례행사로 농촌봉사니 도시봉사니 하고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중·고등학생들도 봉사활동이 의무화되었다. 물론 방학 동안 무위도락하는 학생들보다야 천배 만배 낫겠지만 이들의 봉사활동이 남을 위한 것인지 지극히 의심스럽기도 하다. 봉사활동의 목적에 꼭 삽입되는 회원 간의 친목 도모, 심신단련 등의 형식적인 면은 제쳐놓더라도 봉사활동보다는 저녁의 오락시간을 더욱 기다리는 마음에서 과연 남을 위하는 마음이 우러나올 수 있을까? 비록 큰 이상이 없고 실천력은 약하더라도 조그만 일이라도 남을 위하는 마음만 있다면 정말 더할 나위 없겠다.

고대의 원시 공동사회에서 개인의 존재는 희미하여 공동사회에서 이탈되면 곧 죽음을 의미하였다. 그는 한 개인이기 전에 공동사회의 한 일원이기 때문이다. 중세까지도 공동사회는 개인에 앞섰다. 인간은 자기보다는 신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생활하는 것이 미덕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국을 중세의 모든 사람들은 실현되리라 믿었고 그러기에 실현되도록 노력하였다. 역사가 진행되면서 즉 근대사회로 이행되면서 공동사회에서의 개인존중의 이념은 점점 짙어져 갔다. 공동체는 영국의 시민혁명, 프랑스 대혁명, 미국독립과 함께 산산이 부셔졌다.

모든 인간은 외로운 개인으로 떨어져 나갔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개인의 심성을 존중하고 자본주의는 사유재산을 인정하였다. 이로 인해 물질문명은 또 경제는 눈부신 발달을 보았다. 독일의 사회학자 퇴니스가 인간의 본질적인 의지에 의해 결합된 사회 즉 공동사회(Gemeinschaft)로부터 이해관계에 의해 결합된 사회 즉 이익사회(Gesellshaft)로의 이행을 역사적 개념으로 파악하면서 이를 슬퍼하였듯이 오늘날의 현실은 너무나 슬픈 것이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함께 몰려온 지나친 개인주의의 풍조, 사유재산의 추구로 인한 이기주의의 팽배가 우리 젊은이들을 자기에의 몰두, 자기 이익만의 추구에 빠뜨려 버린 오늘날의 현실이다.

종교를 왜 믿냐고, 이로운 점이 무엇이냐고 물을 때 대부분의 대답이 천국에 가는 것, 극락에 가는 것, 부처의 인격을 이루는 것 또는 심신을 안정하는 것이라 한다. 이러한 대답은 사회로 향한 젊은이의 활동을 망각한 대답이다. 물론 자아의 완성을 이루겠다는 뜻이었겠지만 또 자아의 완성이 없는 사회에의 헌신도 있을 수 없겠지만, 이웃에 대한 사랑, 조국애, 인류애가 없는 인격은 더욱 바람직스럽지 않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