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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도시, 익산

임인년(壬寅年) 호랑이해가 밝았으나 꾸무럭한 날씨가 요즘 우리나라 정가의 앞날을 예고하는 것 같아서 우울하기만 하다. 각종 매스컴에서 예보하는 일기도 정확하지 않아, 선무당 사람 잡듯이 불안하기만 하고 오고 가는 수많은 대화들이 정리하기가 난해하고, 주고받는 수준 이하의 말장난이 이맛살을 찌푸리게 한다.
한 해가 시작되기 전 우리는 어수선한 가운데에서도 새해를 맞이하는 나름의 준비를 한다. 마치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무대 막 뒤에서 각종 악기가 조율하는 시끄러운 분위기와 마찬가지로 -

각각 다른 악기의 음과 서로의 합을 맞추며 연주를 준비하는 것이다. 시끄러운 것도 한순간, 준비가 끝나면 막이 오르고 수많은 청중 앞에서 장엄한 연주가 시작되니- 만약에 공연 전 조율하는 준비 시간이 없었다면 완벽한 하모니로 청중을 감동 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가 해마다 겪는 새해 시작도 마찬가지다.
한 해가 시작되면 해야 할 일 만나야 할 사람과 계획, 설계, 경험과 희망, 많은 것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니 - 아무 준비 없이 한 해를 맞이한다는 것은 악기의 조율 없이 공연을 시작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그러나 해마다 반복하여 겪는 일이지만 머지않아 또다시 준비한 모든 일을 망각하고 한 해를 지나쳐 또 한 살의 나이와 구질구질한 경력들을 정리 서둘러 한해를 마감하고 오늘과 같이 반복하여 준비를 하는 것이다.
나이가 어리고 젊은 날은 한 해가 무척이나 길고 멀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하면서 적당히 짧아지더니 이제는 너무나도 쏜살같이 한 해가 가버리니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크고 작은 헤어짐에 상당히 익숙해져 있는 우리지만 누군가 아니면 세월이 가고 떠나보내는 이별이란 분명, 아쉽고 마음 아픈 일이다.

태양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따뜻한 빛을 보내고 있다지만 세상 모두에게 빛이 닿지는 않는 모양이다. 장애물이 있어서 또한 스스로 편협하게 덧문을 내려서 햇살의 혜택을 거부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이다. 인간 생활에는 순조로운 흐름과 마음의 진행을 가로막는 크고 작은 방해자가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그 마음의 방해자를 제어하면서 열심히 최선을 다할 때 결과가 어느 정도이든 그 노력의 기쁨이 내 것일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해가 바뀌면 한 살 더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며 거부할 수 없는 일이기에 그때마다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나 수용 태세는 인생 화를 채색하는 희, 비, 애, 락의 온갖 색채로 나타나게 되니 - 다만 모든 일이 마음먹기에 달려있다고 하듯 아쉬움에 연연해 하기 보다는 당연한 생을 진지하게 응시하는 시간이 절실하게 필요한 연초인 것이다.

지난 일 년 동안 도대체 무엇을 했는가 하는 자문 앞에 그 대답을 반성의 두께만 더해갈 뿐이다. 흘러간 지난 생활의 반성은 인간을 아름답게 해주며, 자신을 응시하는 힘이고, 자아를 눈뜨게 하는 계기이다. 자아를 눈뜨게 함으로써 자신을 아끼고 이웃을 사랑하며 나라를 지탱하고 보전케 하는 힘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는 광복 77주년이 지나는 동안 6.25분단, 4.19, 5.16, 광주 민주화 운동 등 숱한 사건과 사연의 연속이었으나 아직도 불안한 현실은, 사라져버린 꽃다운 청춘을 그냥 어둠 속으로 묻혀버리게 했다. 세월 속에 파묻힌 산천은 옛 그대로 보일지 모르나 사람은 옛사람이 아닌 만큼 늙어간다.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은 언제나 쉼 없이 흐르기 마련이다. 한스럽고 안타까웠던 일들도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누그러진다. 불안과 초조, 피로 얼룩진 시련이 너무나 엄청나서 말문이 막힐 뿐 세월은 무정하게 가기 마련이다.

지난 세월을 탓해서 무엇하겠는가? 세월은 듣지도 보이지도 않은 채 그냥 그대로 흘러갈 뿐 매정하다. 세월은 가고 인정만 남는다고 했던가. 그래서 해 질 녘에 건질 것은 인간의 따뜻함과 정겨움 뿐이란 말인가. 세월이 모든 걸 해결해 주리라 기대하지만, 세월은 냉엄한 시간의 흐름을 고착할 뿐이다.

누더기 같이 얼룩진 지난해였지만 연말에 우리 익산에 빵 터진 선물이 있다면 제3차 법정 문화도시의 선정이었다. 심사단 몇 분은 “익산역에 내리자마자 문화도시를 염원하는 주민들과 민간단체들의 모습 뒤로 보석의 발광보다 수십 배 더 찬란한 아후라를 느꼈다고 말했다.”
이제 지난해의 묵은 마음과 먼지를 말끔히 걷어내고 미움을 사랑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희망으로 바꿔서 壬寅年을 맞이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