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우분투!

김영주
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사단법인 삼동인터내셔널 이사장

새벽, 산책가다 보면 고양이들이 살겠다고 쓰레기를 뒤져 먹이를 물고 가는 모습을 종종 본다. 창문에 거미줄을 치는 거미, 바닥의 먹이를 찾는 참새들을 비롯해 미물 곤충에서부터 일체 동물들이 먹고 살기 위해 죽을힘을 다하는 모습들을 보면 참 위대하기도 하고 눈물겹고 경이롭게 여겨진다.

타조가 새끼들을 보호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사자가 나타나자 어미는 갑자기 날개를 크게 펼치며 과잉 동작으로 달려가기 시작한다. 그 동작은 마치 “어머나! 어떡하지, 사자가 나타났네, 큰일 났네! 어서 가서 우리 새끼들을 보호해야지!”라고 읽히는 동작이다. 잡초가 우거져 있어 새끼들이 어디에 있는지 사자의 눈에 보이지는 않는 상황이다. 그렇게 어미가 큰일 난 듯 달려가는 곳은 새끼들이 있는 곳과 사실은 정반대의 방향이다. 어린 자신의 새끼들을 지키기 위한 어미 타조의 노련하고도 절박한 연기이다.

과한 동작으로 새끼들과 멀리 떨어진 벌판까지 유인한 후 연기를 멈추면 사자는 완전히 속아 텅 빈 벌판을 두리번거리다가 허탈한 발걸음으로 사라져 간다. 연말 연기대상을 받은 여우 주연상급 연기력이다. 덕분에 새끼들은 목숨을 건진다. 순간적인 판단으로 위기를 지혜롭게 헤쳐 나가는 정글의 동물들을 보면 경이롭지 않을 수가 없다.

모든, 존재들이 하루하루를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정글에서의 성공이란 무조건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다.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지금 존재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정글에서의 성공이다.

인간도 동물이고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곧 정글이다. 우리가 동물들의 삶을 바라보며 때론 안쓰럽고 때론 갸륵하게 여기며 경탄하듯, 다른 초월적인 존재가 우리 인간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또한 그렇게 여길 것이다. 하루하루 온갖 경쟁과 신체적 정서적 악조건들을 겪어내며 삶을 이어가는 상황이 위태위태한 정글 속 동물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먹을 것 입을 것 거처할 곳을 장만하며 살아간다. 하기 싫어도 일터나 학교에 나가 모진 소리, 싫은 소리, 힘든 일 겪어내며 살아간다.

우리가 지금 무엇을 하든 살아남아 있다면 그것이 성공이다

게다가 지금 웃고 있다면 그것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삶이다. 언젠가 먼 훗날에 이런저런 조건이 갖춰지면 그때 웃으리라 기대하지 말라. 그 누구도 내일의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지금 살아남아 웃고 있는 것 외에 더한 성공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오늘을 처음 맞이했다. 모든 이들이 단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시간을 살아간다. 모든 이들은 이렇게 동등하게 매 순간 한 걸음 한 걸음을 살아보지도 못한 미지의 세계로 나가고 있다. 한 걸음 앞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지 못한 채 말이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모든 이들은 한 번도 살지 않았던 시간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그 여정은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절대적인 고독의 길이다. 정말 위대한 발걸음이다.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윗사람도 윗사람이 처음인 채로 하루하루 새로운 걸음을 내딛고 있다. 어떤 지위에 있건 모두에게 오늘은 처음이다. 어제처럼 계속 반복되는 것 같지만 실상 전혀 다른 시간이다. 비슷한 것 같아도 매 순간의 삶은 전혀 다른 시간과 상황이 전개된다. 그 시간을 어떻게든 살아나가는 모든 이들이 참 갸륵하다.

누구나 매 순간 처음 맞이하며 살아가야 하는 절대고독의 그 길, 자기 스스로를 위해, 그리고 다른 존재들도 그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서로 북돋우며 살아가야 한다. 어느 누구도 쉽게 살지 않는다.

미지의 시간인 삶의 정글을 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이런 마음으로 살면 좋겠다.

“어제처럼 반복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시간 매 순간 처음 맞이하며 살아가자”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모시는 것이 수행이고 불공이며, 낙원을 만드는 길이다”
“당신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고, 당신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다. 사실상 우린 서로 이어져 있는 하나이다.”

누구도 충분히 해주지 못하는 위로와 인정을 자신에게 해 주기 바란다.

‘오늘도 참 잘했어. 오늘 하루 살아가느라 정말 수고 많았어. 바보 같았던 일이 있더라도 괜찮아, 오늘은 처음이잖아, 실수해도 괜찮아. 어제 했던 실수를 반복할 수도 있지. 오늘은 처음이고 상황은 다르니까. 오늘은 어제가 아니니까. 내가 왜 이러지? 처음이라 그렇지. 일이 잘못되었어도 괜찮아, 오늘은 처음이잖아. 오늘 처음 하는 일이잖아.’ 이런 식으로 처음 맞는 오늘의 나를 위로하고 인정하며 정글의 시간을 살아내면 좋겠다.

다음은 상대방을 부처님으로 모시며 고독한 그들과 잘 지내는 것이다.

어느 수도원에 네 명의 수사가 있었다. 이들은 서로 미워하고 무시하고 자기 말만 옳다고 늘 상대방을 비난했다. 만나면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고, 찾아오던 사람들은 점점 줄었다.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하자 그들은 지혜로운 스승 랍비를 찾아가 물었다. 그 랍비는 이렇게 한마디만 했다.

“내가 아는 사실은 이 네 분 중 한 분이 메시아, 구세주라는 사실이다.” 이 말을 들은 수사들은 누가 구세주일지 궁금했다. 저들 중, 한사람이 구세주란 것을 알게 되자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모두에게 공손히 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혹시 그 사람이 자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더 자신을 소중히 하고 수행에 정진했다.
수도원은 점점 즐거움과 웃음이 가득하고 낙원이 되기 시작했다. 활기가 돌기 시작한 그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찾아왔고 수사들의 법력은 점점 높아졌다. 수사들은 모두가 구세주, 부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모시는 것이 수행이고 불공이며, 낙원을 만드는 길이다.

아울러, 모든 존재를 연결된 한 몸으로 대하는 것이다. 모든 존재가 하나임을 깨닫는 순간 고독한 정글의 삶이 낙원으로 변하는 마법이 일어난다.

아프리카 부족에 대해 연구하던 한 인류학자가 부족 아이들을 모아놓고 게임을 제안한다. 아프리카에는 없는 달콤한 딸기를 나무 위에 한 바구니 매달아 놓고 달리기해서 1등한 사람만 먹을 수 있다고 달리기의 룰을 말했다. 통역이 끝나자 아이들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나란히 손을 잡고 신바람 나게 결승선까지 달려 나갔다. 당연히 모두가 동시 일등이 되어 딸기를 조금씩 골고루 나눠 먹으며 무엇이 그리 좋은지 깔깔거리며 웃는다. 당황한 그 학자가 의아해서, 그 맛있는 딸기를 혼자 다 먹을 수 있는데 왜 그렇게 했느냐 물었다. 아이들은 학자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큰소리로 일제히 대답한다. “우분투! 우분투! 다른 친구들이 슬픈데 어떻게 제가 행복할 수 있단 말이죠.”

‘우분투! 당신이 있어서 제가 있다.’ 남아프리카 부족의 인사말이다. 우리 모두는 뗄 수 없는 관계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인드라망이라고 한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고, 당신의 행복이 나의 행복이요 당신의 불행이 나의 불행이다. 우리는 사실상 서로 이어져 있으며 우리가 하는 일 하나하나가 세상 전체에 서로 영향을 미친다. 이런 이치로 우리가 좋은 일을 하면 그 자체로 인류 전체를 위하는 선행이고 보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