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미소, 소리를 내지 않고 빙긋이 웃는 웃음. 미소를 머금다, 미소가 아름답다, 멋쩍은 듯 어색한 미소를 띠었다,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띤 채 등등 미소에는 긍정과 행복이 담겨있다. 이번 라오스 여행에서 이런 행복한 미소를 보았다. 여행 내내 흐뭇했고 그 미소를 떠올리며 나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일기도 했다.

루앙프라방에서 몽족의 야시장을 구경할 때다. 그들의 수공예품을 보면서 스카프나 하나 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여행은 서울의 사모님 등 세 가족이 같이 했다. 남자들은 자기들 소용품이 없으니 건성으로 다니고 우리 셋은 모양, 무늬, 색깔 등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한 아주머니 앞에서 구경을 했고 가격도 물었다. 계산기에 8자를 누른다. 8달러란다. 우리는 고개를 흔들며 디스카운트를 하자고 했다. 우리보고 원하는 가격을 찍으란다. 4를 눌렀다. 이번에는 아주머니가 고개를 흔든다. 우리는 몇 개를 뒤적여 놓은 상태다. 첫 번으로 흥정을 해 보았기에 다른 집에 가보려고 돌아서려니 4달러에 주겠단다.

가격을 금방 내려주어 시장조사도 할 겸, 또 시간도 많이 남아 저 끝까지 구경하고 오겠다며 손가락으로 끝을 가리키며 일어섰다. 물론 그 아주머니가 내 말을 알아들을 리 없으니 그냥 가려는 수작으로 알았을 것이다.

아주머니의 얼굴에 가득한 미소가 우리를 원망하거나 사지 않고 그냥 가는 것에 대한 서운함 같은 것이 전혀 없는 순박함 그 자체다.

야시장은 크지만 물건은 비슷비슷해서 그 아주머니한테 가서 스카프를 사자고 합의를 보았다. 문제는 아주머니의 가게를 못 찾겠다는 것이다. 여기저기 기웃거려 봤지만 노점상이라 간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외국인들은 그가 그 같아 구별이 쉽지 않다. ‘여기쯤 이었던 것 같은데’ 하며 걷고 있는데 갑자기 “훠 달라 훠 달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집으로 들어갔다. 아주머니가 우리를 용케 알아본 것이다. 우리는 땅바닥에 앉는 의자에 턱하니 앉았다. 기념으로 한 장씩 살까 했는데 사모님이 친구들도 사다주겠다고 해 아홉 장이나 샀다. 같은 것을 고르느라 상품들이 뒤죽박죽이 되고 찾는 것이 없어 옆집에서 가져오기도 했지만 아주머니의 미소는 보름달보다 더 훤했다.

다음날 아침 호텔 주변으로 산책을 나갔다. 물건들의 진열을 보며 지나가다 왠지 약국 같아 간판을 보니 약국이 맞다. 반가운 마음에 약국으로 갔다. 약사가 나온다. 여자다. 나이가 조금 있다. 가운이나 명찰은 착용하지 않았지만 온 얼굴에 미소다.

웃으며 한국에서 왔고 나도 약사라고 소개했다. 그녀는 영어를 못하는지 그저 미안한 마음을 담은 환한 미소만 지어준다. 나는 나대로 동료의식이 발동해 만나서 반갑다고, 건강하라고, 그리고 약국도 번창하고 행복하라고 우리말로 하고, 그녀는 그녀대로 나에게 몸조심해서 다니고 즐거운 여행되라고, 라오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한참을 라오스말로 했다.

서로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자기 방식대로 해석을 하고, 그냥 멋쩍게 웃고, 손을 흔들며 작별을 했다. 그 약사의 꾸밈없는 미소가 나를 퍽 기분 좋게 했는데 나의 미소도 그녀를 행복하게 했는지 모르겠다.

루앙프라방에서 방비엥까지는 7시간 정도 걸렸다. 터널은 하나도 없다. 안남산맥의 경치도 아름답지만 고산족들의 집과 삶이 도로변에 그대로 보여 좋은 여행이 되었다. 그 길에도 라오스의 순박함과 미소가 그대로 있다.

방비엥에 도착해 여장을 풀고 잠시 시간이 되어 호텔 주변 구경에 나섰다. 조그만 과일 가판대에서 누구를 보고 미소를 짓는지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바나나를 굽고 있는 아가씨를 보았다. 몽키바나나다. 구운 바나나는 어떤 맛일까. 1달러에 8개란다.

아직 구워지지 않았는지 이것저것 뒤집어 보더니 두꺼운 종이쪽을 가지고 와 숯불을 부치며 불기운을 돋운다. 그리고는 미안하다는 미소를 짓는다. 그 수줍은 미소가 라오스의 더위를 한방에 날려 줬다. 나는 저쪽을 가리키며 갔다 올 터니 천천히 구워 놓으라며 가판대 위에 1달러를 놓고 나왔다. 돌아오니 봉투에 9개를 담아준다. 아니라고 손사래를 쳐 보였는데도 기어이 하나를 더 넣어준다. 고마움이 가득한 그 미소를 머금은 체로.

그 아이가 아직은 너무 어려 안타까운 마음이 앞섰다. 여고생도 안 될 나이다. 다음날 저녁식사 후 일행들과 산책을 하고 들어오는데 아직 가판대를 접지 않았다. 망고주스를 주문했는데 믹서기로 한 번 갈 때마다 두 잔이 나온다. 일행이 일곱 명이니 네 번을 해야 한다.

얼음을 가지러 아이스박스로 가는 길이 우리가 앉아있는 쪽인데 우리 앞을 지날 때 마다 손으로 앞가슴을 가리고, 허리를 굽히고, 온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조신하게 지나다닌다. 마치 부처님께 예를 다하는 모습같이 보였다. 모두 그녀의 모습을 칭찬하지만 그녀는 알아듣지 못하고, 이렇게 예의바른 대접을 받는 것이 황송한 마음이 들 정도였다.

주스를 마시고 있는데 바나나 한 송이를 수줍게 평상위에 내놓는다. 제 딴에는 일곱 잔이나 팔아줘서 고맙다는 뜻인 듯 했다. 괜찮다고 고맙다고 그냥 들여놓으라고 하다가 바나나를 들고 1달러를 주었다. 아니란다. 그럴 수는 없다는 미소를 지으며 자꾸만 나에게 그 돈을 다시 준다. 내 어찌 도로 받겠는가.

어린 아이의 천진한 미소만 행복한 줄 알았다. 앳된 아가씨의 수줍은 미소도, 중년 아주머니의 삶의 미소도, 초로의 약사의 가식 없는 소박한 미소도 모두 나를 행복하게 했다.

나는 얼마만큼 기분이 좋아야 그들 같은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얼마만큼 마음을 내려놓아야(下心) 그들 같은 미소가 나올까. 약국에 들르는 사람들이 나의 미소로 행복함을 느낄 수 있으려면 얼마나 나를 낮춰야 할까. 언제쯤 나도 그들같이 미소가 일상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