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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기러기의 지혜를 되새기자

익산시민 유 성 무

우리에게 요즘이야말로 더불어 살아가는 기러기의 지혜가 절실한 때다. 기러기들은 무리를 지어 매년 수만KM를 이동하면서 살아간다. 무리생활을 하는 철새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만, 기러기들의 삶속에서는 더불어 살아가기 위한 지혜가 숨어 있다. 기러기들의 삶에는 먼 거리를 날아가는데 필요한 힘을 최소화하는 과학적 사회시스템과 함께 약자를 배려함으로써 더불어 살기 위한 사회적 신뢰가 자리 잡고 있다.

흔히들 기러기는 구만리를 난다고 한다. 이렇게 먼 거리를 이동하려면 개체로서는 도저히 감당하기 어려운 힘이 필요하다. 기러기들은 비행할 때 V자 대형을 이룬다. 건강한 개체들이 선두자리를 이어가면서 공기 저항을 감당하면서 무리를 이끄는 한편으로, 가장 뒤쪽을 지키면서 뒤처지는 개체들의 무리이탈을 막는다. V자 대형은 뒤따르는 개체의 양력(揚力)을 크게 높여서 혼자 날 때의 30% 정도 힘으로 비행이 가능토록 만든다. 또 일사분란하게 소리를 내면서 동시에 날갯짓을 함으로써 무리 전체의 힘을 극대화시킨다. 실로 놀랍도록 과학적인 자연의 섭리다.

기러기는 신조(信鳥)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동료들 사이의 신의를 지키는 새라는 말이다. 기러기들은 이동하면서 기력이 다하거나 다쳐서 비행하지 못하는 개체가 있을 때 다른 기러기 두 마리가 같이 대열에서 이탈한다고 한다. 그래서 문제의 개체가 기력을 회복하거나 죽을 때까지 곁을 지키다가 대열에 다시 합류한다고 한다. 비행 대형의 선두자리도 리더가 아니라 건강한 개체들이 차례로 맡는다. 무리에 대한 이런 믿음과 헌신이 기러기들의 힘들고 거친 삶을 지탱해낸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아프리카 격언이 있다. 인간 세상에서 사회는 ‘서로 믿고 살만한 세상’이라는 머나먼 곳을 향해 구성원들이 손잡고 가야만 하는 운명공동체다.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멀리 가기 위해서는 공동체가 공익을 축으로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동시에 굳건한 신뢰. 즉 각자가 사회를 위해 조금씩 헌신함으로써 서로 이익을 향유하고 사회가 약자를 버리지 않는다는 믿음이 공유돼야만 한다. 구만리를 더불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처럼 말이다.

인류의 역사를 살펴볼 때, 구성원들이 기러기처럼 서로 신뢰하는 가운데 사회시스템이 효율적으로 작동된 시기에만 공동체가 융성했음을 알 수 있다. 복잡한 욕망을 지닌 사람을 미물인 기러기와 직접적으로 비교함은 온당치 않다. 하지만 기러기들의 삶에는 한 사회가 유지되고 성장하는 비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래서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효율적인 사회시스템이 붕괴된 사회가 다시 나갈 방향을 찾는데 그 무엇보다 훌륭한 교훈을 던져주고 있다고 생각된다.

기러기 공동체를 보면 한 가지 재미있는 질문이 제기된다. 기러기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효율성과 신뢰의 두 축 중 무엇이 먼저 선행되어야 두 축이 형성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물론 무리생활을 하는 동물들의 유전자 속에는 이런 특질이 내재돼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생각건대 무리에 대한 신뢰가 먼저일 것으로 보인다. 효율성은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 체화된 결과로 생각된다. 즉 사회적 신뢰는 공익을 위한 효율적 사회시스템을 낳고 이는 다시 사회적 신뢰를 강화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한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제 2016년 우리사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사회적 신뢰가 유지되고 있는가? 사회시스템이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돌아가고 있는가? 아마도 우리사회가 기러기 공동체처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다수의 구성원들은 묵묵히 V자 대형의 앞뒤에서 헌신하고 있으며, 뒤처진 구성원이 다시 무리로 돌아올 수 있도록 애쓰고 있기에 우리사회가 그나마 유지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앞뒤에서 무리를 이끌면서 약자를 격려해야 하는 사람들은 책임을 방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신뢰가 약화되고 효율성도 저하되는 악순환 구조에 빠지는 것은 아닌지 심히 걱정된다.

신뢰가 깨진 사회에서는 함께 멀리 갈 수 없다. 구성원들이 혼자 빨리 가려고만 하기에 사회가 효율적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사회는 약자가 고통 받는 단계를 거쳐서 사회가 붕괴되는 참혹한 결과로 막을 내림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하루 빨리 신뢰가 흐르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잘못된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

이제 얼마 후면 기러기들이 창공에 V자 대형의 장관을 연출하면서 다시 머나먼 여정에 나설 것이다. 기러기들을 떠나보내면서 그들이 보여주는 지혜를 되새겨야 할 것이다. 신뢰와 효율을 양쪽 날개에 싣고 더불어 날아가는 기러기들의 비행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