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애

  나는 오늘 대한민국의 모국어 교육의 현실에 대하여 성토를 하고자 한다. 얼마 전 우연히 교육방송의 한 프로그램을 시청하고 난 후, 나는 우리의 미래가 참으로 암담하게 느껴졌다.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국어도 아닌 영어 선생님이 영어 지문의 우리말 번역의 뜻을 일일이 학생들에게 설명을 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는 진풍경이 TV 화면에 보였다. 영어 선생님의 말인 즉, 아이들한테 항상 이렇게 칠판에 모르는 우리말 단어를 써놓고 설명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작 중요한 영어 교과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은 뒷전으로 밀려서 진도를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다. 더 가관인 것은 두 사람이 낱말 맞히기 게임을 하는데, 한 사람은 낱말 카드를 머리 위로 들고 앉아 있고 앞에 선 아이가 그 단어를 설명하면 앉아 있는 아이가 단어를 맞히는 게임이었다. 남학생이 ‘존귀’라는 단어 카드를 들고 있는데 여학생이 앞에서 그 단어를 설명하는 것을 보고 나는 내 눈과 귀를 의심해야 했다. 그 여자아이는 지금 자신의 학교에서 방송을 찍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 여학생이 어떻게 설명을 했는지는 글로 쓸 가치가 없기 때문에 쓰지 않겠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학교 현장에 있는 교사라면 그 여학생이 어떻게 설명을 했는지 다 알 것이다.

학생들이 단어의 뜻을 몰라서 문제를 풀지 못하는 현상이 영어 수업 시간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수학, 과학, 역사 등 모든 과목 시간에 공통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 바로 문제인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늘 문제는 있어왔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자라나던 시절에는 거의 겪지 않았던 일들이 지금 이 시절의 아이들에게는 마치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이렇게 청소년 시절에 말과 글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아이들이 커서 대학에 들어가게 되면 대학 논문은 고사하고 입사 지원서에 자기소개서 한 줄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전문가의 손을 빌려야 하는 이른바, 영혼 없는 어른으로 살게 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바로 언어를 사용할 줄 안다는 것이다. 오직 인간만이 언어라는 도구를 통해서 지식과 경험을 발전시켜 찬란한 문화와 역사를 이루어내고 또한 그 언어가 있기에 미래의 후손들에게 물려 줄 삶의 유산들을 전수해 줄 수가 있는 것이다. 동물은 언어가 없기에 기록을 할 수 없으므로 그저 신체의 감각만을 유전자로 전해주지만 인간은 이 언어로서 모든 삶의 기록을 다양한 형태로 보전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소중한 언어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의 선조들은 일제의 강점기에도 우리의 말과 글을 버리지 않았고 그런 선조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훈민정음’은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등록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한류 열풍이 불면서 전 세계 대학에서 한국어학과를 개설한 대학이 약 47개국에 달한다고 한다. 이렇듯 외국에서조차 배우기 위해 애쓰고 있는 우리의 언어가 정작 우리의 학교 안에서는 홀대를 받고 있다.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 ‘혼불’의 작가 최명희는 ‘언어는 정신의 지문’이라는 명언을 남겼다. 정말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내면의 모습을 키워나갈 나이에 우리 아이들의 정신 세계가 이 정도라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이것이 우리나라 국어 교육의 현주소라면 이제 바꾸어야 한다. 나라를 이끌어갈 인재를 키우기 위해서는 리더쉽을 가르치기 전에 제 나라의 언어를 제대로 사용할 줄 아는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그래야만 그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국제적인 활동 무대에서 자신의 의사 표현을 제대로 하고 나라의 운명을 건 협상을 할 때도 자신 있고 당당하게 외국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청소년기는 예나 지금이나 과도한 학업과 입시에 시달리며 살아야하는 한 세대의 모습이 변하지 않고 있다. 이 모습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는 또 몇 세대를 기다려야 하는 것일까? 심지어 이전 세대에서는 보이지 않던 문제가 왜 21세기의 교육 현장에서는 이토록 심하게 나타나야만 하는지 우리는 정말 각성해야 한다. 다가올 미래에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서 그 시절에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지금 쓰고 있는 언어의 행태를 그대로 물려준다고 생각을 하면 이것은 정말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제 모국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화성에서 온 아이들을 그들의 고향 대한민국으로 귀환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