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 사회복지협의회장

(사)삼동인터내셔널이사장

김영주

죽음이란 호흡의 멈춤이다. 호흡의 멈춤은 생명이 없어지는 현상이다. 그렇다면 생명은 무엇인가? 우리는 생명에 대해서 의문이 많다. 생명은 흙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났을까? 아니면 우주에서 왔을까? 아니면 조물주가 만들어 낸 것일까? 아주 오래 전부터 과학자들이 이 비밀을 밝혀내려고 애써 왔지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진 않았다. 과학적 지식이 극대화되고 분초를 다투어 정보가 쏟아지는 오늘날에 와서도 이 문제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결말을 짓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11월 23일 전두환씨가 죽었다는 소식이다. 주변의 말을 인용하면 ‘잘 죽었다.’는 사람도 있고 ‘그가 죽었으면 국고환수금 받기 틀렸네’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는 1931년생 경상남도 합천 출신이다. 그리고 대한민국 11~12대 대통령을 지냈다. 그는 말년에 악성 혈액암인 다발성 골수종 확진 판정을 받고 투병중에 있다가 오전 8시 45분께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향년 90세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사 11기로 12·12 신군부 쿠데타와 5·18 광주 학살로 집권한 그는 생전에 이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고 발포 명령 여부도 부인한 바 있다. 그래서 감옥도 다녀왔고 국민들에게 외면당하며 살았다. 그리고 기본 경호 외에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도 박탈당한 상태였다.

그의 죽음에 청와대는 이렇게 발표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빌고 유가족에게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면서 “끝내 역사의 진실을 밝히지 않고, 진정성 있는 사과가 없었던 점에 대해서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조문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직 대통령을 지냈던 인물에 대한 청와대의 발표는 매우 이레적인 일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죽음에 자기만의 해석이 있다. 평소 죽음을 맞이한 사람과 나와의 관계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발표를 보면 전두환씨의 인생살이를 엿볼 수가 있다. 비극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권속들은 이러한 모습을 보고 어떤 느낌표를 가질까?

대개 사람들은 무척 죽음을 외면하려 든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 ‘가난에 찌들어도 천대를 받아도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좋다.’ 이러한 말들은 삶에 대한 강렬한 애착을 표현한 말들이다.

또 죽음을 재난으로 생각한다. 그러기 때문에 두렵다. 죽음은 휴식이 아니라 새로운 공포이고 재앙이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오복(五福) 가운데 오래 사는 것을 으뜸으로 친다. 그저 오래오래 살고 싶어 한다. 아기를 낳았을 때 금줄을 치는 것이나, 돌을 맞이했을 때 실을 안겨 주는 것은 모두 인생의 마디마디에 ‘오래 살아라’ 하는 기원의 뜻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죽음은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굳이 외면하고 싶지만 늘 가까이 있다. 저승 백 년보다 이승 일 년이 낫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저승길이 대문 밖’ 인 것이다. 죽음은 늘 내 앞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복의 마지막은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하게 죽는 것이 아닐까?

사실, 이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것은 제명대로 못 살고 원통하게 죽는 것이다. 일찍 죽는 것(夭死), 객지에서 죽는 것(客死), 횡액으로 죽는 것(橫死), 원통하게 죽는 것(寃死), 분하게 죽는 것(憤死) 모두 억울한 죽음이다.

하늘에서 받은 수명대로 오래 살다가 자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편안하게 자리에 누워 죽는 것(臥席終身)이 바람직하다. 억울하게 죽으면 원귀(寃鬼)가 된다. 억울하게 죽은 원귀는 저승에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구천을 떠돌게 된다. 무속 신앙에서는 죽음이란 다름 아니라 저승사자를 따라가는 일이다. 병사(病死)는 대개 천명이 다하고 조물주가 시기하여 영별의 객이 되는 것으로 알았다. 무속에서는 일반적으로 저승사자를 보내는 것은 명부(冥府)에 있는 최 판관(崔判官)이라 생각한다. 최 판관이 체포 영장인지 소환 영장인지를 발부하면 저승사자가 이것을 들고 사자(死者)를 찾아오는 것이다.

선가귀감(禪家龜鑑:조선 중기의 승려 휴정(休靜)이 불가(佛家)의 요어(要語)를 간추려 엮은 불교 개론서)에 보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무(無)로 되는 것이 아니다. 매미가 허물을 벗듯이(蟬脫) 훨훨 벗어 던지고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다. 낡은 허물을 벗는 것이 죽음이며,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는 것이 윤회(輪廻)다. 새로운 옷이 무슨 빛깔이 되고 어떤 모습이 될지는 이승의 업(業)에 따라 결정이 된다.’ 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무가 아닌 동시에 두려워할 일도 슬퍼할 일도 아니다. 도리어 웃으며 새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다만, 이승에서 살아 움직이며 맺은 인연이 있고, 주고받은 정이 있기에 아쉬운 느낌이 들 수는 있다. 이것이 다름 아닌 망집(妄執)이다.

사대(地水火風)가 내(我)가 아니고 오온(五蘊: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이 다 공(空)인 바에야 어찌 망령된 고집에 사로잡혀야 하는가! 매섭게 끊어 버려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삼세(三世)의 인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웃으며 훨훨 낡은 허물을 벗어 버려야 한다. 이것이 죽음에 대한 불가(佛家)의 인식이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스승에게 죽음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삶에 대해서도 모르거늘 어찌 죽음에 관하여 알겠는가(未知生 焉知死)!’ 아직 삶에 대해서도 모르면서 어찌하여 죽음까지 알려 하느냐고 한 것이다. 제자가 차근차근 공부하지 않고 덤벙대는 것을 꾸짖는 말일 수도 있고, 삶을 알게 되면 죽음은 저절로 알게 된다며 타이르는 말일 수도 있다.

여하튼 이 말에서 공자는 죽음보다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살아가는 태도를 더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세상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끼리의 따뜻함과 질서, 곧 윤리 도덕이 중요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전두환씨의 죽음과 그에 대응하는 청와대의 발표를 보면서 사람으로 태어나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