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 사람들 > 우울에 대한 소고

우울에 대한 소고

(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봄이 가까워졌다지만 아직도 쌀쌀하고, 우리를 감싸고 있는 주위 환경은 우울한 무채색으로 휩싸여 있다.

오늘날 우울증은 매우 익숙한 단어가 됐지만 이를 바로 보고, 그 증세는 어떠하고, 대처하는 방법이나 치유하는 데는 아직 서툴고 어리석지 않나 생각된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우울을 외면할 수만은 없을 것이다.

우리 모두 관심 있게 바로 보고 민감하게 대처할 때 함께 하고 싶은 사회, 살고 싶은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본다.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즐거움, 유쾌와 불쾌 등, 우리는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감정을 시시각각 느끼며 살아간다.

우울 역시 누구나 느끼는 흔하고 일상적인 감정이지만 그 색이 짙어지면 삶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

즉 일상에서 느끼는 가벼운 우울감이 습관화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차 우울의 늪에 빠져든다. 우울한 기분이 습관으로 굳으면 우울의 원인이 해결돼도 계속 그 기분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나타난다.

이렇게 침체된 기분 때문에 점점 매사에 무기력 해지면서 모든 일이 귀찮아진다. 서서히 심해지는 우울감은 결국 허우적거릴 힘 조차 남기지 않고 사람을 가라앉게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울증인 것이다.

우울증은 우울감과는 그 감정의 지속 기간과 심각성에서 차이가 있다. 보통 2주 이상 강한 강도로 광범위하게 우울감이 지속되면 우울증을 의심할 수 있다. 우울증으로 진단 받은 사람은 생활 전반에 걸쳐 흥미와 활력, 의욕이 현저히 현저히 줄어들며 심지어 자신이 살아야 할 가치가 없다고 느껴 자살까지 생각한다.

무엇보다 우울증은 한번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기 어려워 영국의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고백하면서 "검은 개(Black Dog)"라고 표현했다.

한번 물면 절대 놓지 않는 개처럼 우울증도 좀처럼 떨쳐내기가 어렵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우울증이 의심스러우면 가능한 빨리 전문가에게 상담하는 것이 상책이겠으나 우리 예술인 입장에서 본다면, 예술활동이 최고의 치유방법이 아니겠나 생각해본다. 본인 스스로 민감하게 기분을 조절하고, 가라앉은 기분에 머물 것이 아니라 거기서 빠져나올 수 있는 행동을 찾아야 한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것이어도 좋다. 가벼운 산책이나 운동으로 몸을 움직이고, 전시회·영화·연주·음악회 등을 통하여 감성을 건드리, 자신이 비교적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서 취미를 가지는 일이 출발이 아닌가 싶다. 또 자신을 위한 현실적인 계획을 세우고 거대한 목표가 아닌 작은 목표를 만들고 이를 성취하는데서 오는 즐거움을 느껴보는 것이다.

우울증을 이겨내는데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가 아닌가 한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관계는 사람의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중요한 자양분이니,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 우울이란 다른 사람과의 관계로부터 자꾸만 탈퇴하는 일종의 고립 과정이 아닌가 한다.

바꿔 말하면 주변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우울을 깨트릴 수 있다. 우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스스로 찾아가지 않는다.

주변 사람이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한다. 결국 나 자신, 그리고 내가 가진 민감성이 다른 사람의 우울감, 더 나아가 심각한 우울증을 막아주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이러한 사회적 민감성, 즉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다. 우리 주변, 우리 회사, 우리 조직에 우울한 사람이 없는지 둘러보고 그를 위하여 손길을 뻗어보자.

이것이 많은 이의 마음 속에서 울부짖는 검은 개를 달래고 우리 사회를 정신적으로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길이 아닌가 한다.

우울이란 자신을 상실하는 경험이다. 그렇다면 나 자신이란 누구이며, 나에 대한 정답이 있을까?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하고 누구를 만나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까? 누구도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을 주지 못한다. 그리해서 우리는 실수하고 잘못하고 어긋난다. 그럴 때 우리는 스스로 벌하거나 남의 평가를 믿어버리거나 불안을 숨기기도 한다. 마음이 피폐해지고 관계도 사라진다. "우울은 뭘 해도 안 돼"라는 자신에 대한 비관적 예견이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우울은 우리가 반드시 겨뤄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기도 하다. 그 문을 나서는 순간 우리는 잘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늘 불행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늘 잘못하는 것도 아니다. 이제 더는 스스로를 벌하지 않아도 된다고 자신에게 이야기를 해주자. 이제 따뜻하고 우울한 빛이 사라지는 봄이 올 것이다. 우리는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느꼈던 삶의 방향을 바꿀 수 있다. 우울이 사라진 그것에서 편안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