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중국 전국시대의 책략들을 엮은 <전국책(戰國策)> 위책편(魏策篇)에 재미있는 일화가 나온다. 위(魏)나라 혜왕(惠王)이 조(趙)나라의 한단을 공격하려고 했다. 이에 계량(季梁)이 왕을 찾아가서 말했다. 그가 왕에게 오는 길에 북쪽을 향해 마차를 몰면서 초(楚)나라를 간다고 말하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다. 계량은 그 사람에게 남쪽에 있는 초나라를 간다면서 왜 북쪽으로 가냐고 물었다. 계량의 질문에 그 사람은 자신의 말이 훌륭하고, 노자도 충분하며, 마차를 잘 모는 마부도 있다고 하면서 남쪽으로 가야 한다는 계량의 충고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계량이 왕에게 말하기를, 그 사람은 목적지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많이 갖췄기에 시간이 갈수록 초나라와 멀어지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불필요한 공격을 하게 될수록 왕업과 점점 멀어지게 되니, 이는 북쪽으로 가면서 초나라를 찾는 사람과 같다고 했다. 그로부터 천 년이 지난 후 당나라 시인 백거이가 이 일화를 빌어서 남원북철(南轅北轍 끌채는 남쪽을 향하면서 바퀴는 북쪽으로 간다)이란 표현을 했다는데, 의도와 행동이 서로 다름을 빗댈 때 주로 쓰인다.

위나라는 혜황의 조부 문후(文侯) 때 크게 융성해져서 전국칠웅(戰國七雄)의 선두에 서게 된다. 위나라는 강대국들 사이에 낀 지리적 약점을 안고 있는 약소국이었다. 문후는 이런 불리함을 소통으로 극복했다. 이회와 서문표 등 인재를 두루 영입하고 이들과 힘을 합해서 국가체제를 급속하게 정비했다. 토지제도와 농업기술 향상 등 경제를 개혁하고 부국강병을 이뤄냈다.

그런 위나라의 전성기도 오래가지 못했다. 혜왕의 아버지 무후(武侯)는 독단적이고 시기심이 강한 군주였다. 그래서 당대 제일의 군사전략가 오기(吳起)와 같은 인재들이 위나라를 등지고 타국에서 활약하게 만들었다. 무후의 뒤를 이은 혜왕의 리더십은 더욱 형편없었다. 방연의 참소에 속아서 <손자병법>으로 유명한 손무(孫武)의 후손인 손빈을 벌함으로써 천하의 지략가와 원한을 맺게 됐다. 후에 위나라는 제나라로 탈출한 손빈과의 전투에서 대패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또 혜왕은 상앙으로 널리 알려진 공손앙을 중용하거나 죽이라는 공숙좌의 조언을 듣지 않음으로써 공손앙이 진(秦)나라로 가는 계기를 만들었다. 나중에 공손앙은 진나라에서 변법을 시행함으로써 약소국인 진(秦)이 천하 통일하는 초석을 다졌다.

혜왕 이후 위나라 왕들의 리더십도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전국시대를 화려하게 장식한 명장 악의(樂毅), 지략가 범저같은 인재들을 놓치고 세력싸움에서 밀리다가 결국 진(秦)나라에 의해서 멸망당했다.

결과적으로 계량의 충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남긴 비유와 역사의 결과는 오늘날 국가를 비롯한 모든 조직과 개인에게 커다란 교훈을 주고 있다. 현대사회는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어서 장기적인 전략적 목표마저 설정하기 어렵다. 수시로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서 전략과 전술을 수정해나가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명확한 상황판단과 유연하고 신속한 대처가 필요한데,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다름 아닌 내외부를 망라하는 ‘열린 소통’이다.

현대조직에서 소통은 리더와 구성원 모두에게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 누구도 조직의 목적지인 초나라로 가는 길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여정이 끝날 때까지 마부가 실수하지 않을 것이며, 말과 마차가 무사하고 노자가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또 가다가 무슨 일이 발생할 것인지 전혀 예측할 수조차 없다. 이런 상황에서 조직이 무사히 초나라로 가려면, 리더와 구성원들이 내부적으로는 말할 것도 없고 외부와 끊임없이 소통함으로써 상황을 점검해야 할 것이다.

결국 리더의 역할은 소통을 장려함으로써 조직의 자원을 지키면서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초나라로 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라고 하겠다. 물론 리더는 이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조직 내외부의 갈등을 조정하면서 방향을 결정해야 한다. 상황에 따라서 때론 민주적으로 때론 비민주적인 결정을 하게 되겠지만, 모든 결정은 일상화된 소통을 기반으로 이뤄져야만 한다.

소통의 리더십은 특히 공적인 조직에서 절대적으로 요구된다. 리더는 조직의 주인이 아니라 권한을 위임받은 관리자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통하는 것은 조직의 운명을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겠다는 무책임함과 오만함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다. 엉뚱한 곳으로 가면서 조직의 자원을 탕진함으로써 조직을 파멸로 이끌 것이니, 계량이 말한 ‘초나라로 가는 사람’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소통으로 흥했던 위나라는 불통으로 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