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5월이다. 여기저기 녹색세상이다. 우리 포도밭 밭둑에 심은 무궁화나무에도 잎이 났다. 삐죽삐죽 나오는 모습이 쌍둥이 손녀들의 웃음만큼 해맑다. 작년 딸이 임신했을 때 그 아이들이 잘 자라길 바라며 심은 무궁화들이다. 새싹의 모습이 보기 좋아 포도밭에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열 살, 일곱 살, 여섯 살, 두 살, 두 살, 두 살짜리는 쌍둥이로, 태어난 날로 치면 8개월이 지났지만 칠삭둥이로 태어나 실제로는 6개월이나 된 셈이다. 외손주들이 오면 집이 꽉 찬다. 쿵쿵 뛰고 뛰지 말라는 말소리가 커지고 애기 우는 소리가 나고 정말로 사람이 사는 집 같다.

지난 4월초 쌍둥이들이 처음으로 외갓집 나들이를 했다. 애기들이 우리 집에 들어오자마자 울기 시작했다. 보듬고 얼러도 소용없고 업어줘도 울고 밖으로 나와도 그치지 않았다. 낯가림을 하는 것이었을까. 쌍둥이들은 하나가 울면 다른 놈도 울어 혼을 쏙 빼놓는다.

1.3Kg, 1.7Kg으로 태어나 체중 10g 늘어날 때마다 박수를 치며 좋아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볼에 살이 붙어 넙죽이가 되었다. 태어날 때의 체중이 중요한지 현아(1.7Kg)가 윤아 보다 한 달 이상 빠른 것 같다.

나는 그 애들이 고맙다. 윤아를 보듬고 등을 가만가만 다독이며 주문을 외웠다. ‘네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잘 자라 외갓집에 나들이를 올 수 있어 감사하다. 사람은 살면서 이런 저런 어려움을 만난단다. 너는 아주 작은 몸으로 수많은 검사를 다 받았고 또 이겨냈잖니? 그 강한 의지와 생명력에 박수를 보낸다. 할머니가 뒤에서 지켜보고 응원도 많이 해 줄게 잘 자라라. 건강하고 훌륭하게 자라 자랑스런 사람이 될 거라고 믿는다.’

윤아가 내 말을 알아듣기라도 한 것처럼 울음을 그쳤다. 윤아가 그치니 현아도 그쳤다. 뉘어 놓고 체조를 시켰다. 하나 둘 셋 넷, 팔을 위아래로 또 옆으로 쭉쭉 펴 주고, 다리를 주물러주고, 옆으로 위아래로 들었다 놓았다하니 기분이 좋은지 방긋방긋 웃는다. 천사의 미소다.

여섯 살짜리 민희가 내 허리를 꼭 안으며 옆에 와 앉는다.

“할머니 걱정했어요.”

“왜?”

“할머니 할아버지랑 자고 싶었는데 애기들이 울어서, 엄마가 집에 가자고 할까봐서요.”

딸이 근 1년 만에 친정에 왔다. 쌍둥이를 임신하고 예후가 좋지 않아 병가를 냈고, 조산기가 있어 입원을 하고, 결국 미숙아를 낳아 인큐베이터에서 두 달 키우고, 지금도 매달 검사를 받으러 다닌다. 조금 늦되지만 결정적 이상은 없는 것 같다.

4월에는 재작년 작년에 심은 무궁화에서만 싹이 났다. 올해 심은 것들은 움이 트지 않아 애를 태우더니 5월이 되니 작은 잎을 피워냈다. 3년 전 우연히 수목원에서 가지치기한 무궁화를 주워 밭둑에 심었는데 30% 정도 살았고 작년에 심은 것은 반타작 정도 했다.

올해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가지치기한 지가 오래되어 더러는 말랐고 더러는 겨울에 얼었던 것이다. 3월에 우리밭둑의 무궁화 가지를 잘라 바로 심었더니 모두 살았다.

많은 시행착오와 시간을 들여 우리는 하나씩 알아간다. 어른이 이럴진대 아이들은 오죽하랴.

며칠 전 딸이 어버이날을 앞두고 애들 다섯을 죽 데리고 왔다. 이번에는 윤아와 현아가 울지 않았다. 한 달 사이 이렇게 달라졌다. 지난달에 왔을 때 현아는 엎어지는데 윤아는 못했다. 5월 10일 까지 못하면 담당의사가 재활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단다. 좀 늦되는 애도 있다며 딸을 안심시켰지만 워낙 요란하게 태어난 애들이라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애들을 내가 맡고 딸과 사위는 들어가서 좀 쉬라고 했다. 쌍둥이들은 순해서 자기 손을 보고 놀고, 서로 쳐다보며 웃기도 한다. 큰 것들이 그 사이 있었던 이야기를 조잘조잘하며 내 관심을 끌려고 야단이다.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이 5월의 신록만큼이나 상큼하다. 바라만 보아도 위로가 된다. 머릿속에 생각이 많고 마음이 복잡했는데 아이들과 놀고 있으니 안정이 되고 기분전환도 된다.

잠깐사이 윤아가 엎어져있다. 신천지라도 발견한 듯 딸 사위를 불렀다. 며칠 전부터 엎어졌다며 재활치료 안 받아도 된단다. 신통방통이다.

사위가 육아휴직을 냈다. 딸이 근무지와 가깝고 퇴근 시간도 빠를 뿐 아니라 방학이 있어, 딸이 복직을 하고 사위가 휴직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남편의 육아휴직율은 아주 저조하다고 한다. 어찌 알았는지 지역방송국에서 사위가 휴직한 것에 대한 인터뷰 요청이 왔고 집에 와서 쌍둥이들까지 찍어갔단다. 방송나간 다음날 다른 방송국에서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찍자는 제안이 와 생각중이라고 한다.

쌍둥이가 스타다. 어쩐지 의젓해졌다. 저녁에도 9시 조금 넘어 잠이 들면 다음날 6시까지 한 번도 깨지 않고 잔단다. 조금 컸다고 우는 시간보다 해죽해죽 웃는 일이 더 많아졌다. 5월의 햇살만큼 쑥쑥 자라는 것 같다.

아이들은 돌아갔고 집은 다시 텅 비었다. 일요일 포도밭으로 무궁화를 보러가야겠다. 무궁화는 하루가 다르게 어린잎을 키워 갈 것이고 쌍둥이들도 기어 다니고 혼자서 앉는 묘기를 다음에 와서는 보여줄 것이다.

쌍둥이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