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공자는 기원전 5세기에 노(魯)나라 역사기록을 정리한 <춘추(春秋)>를 편수(編修)했다. 그는 <춘추>를 편수함에 있어서 기사(記事 사건을 기록), 정명(正名 직분을 바로잡음), 포폄(褒貶 칭찬과 비판을 엄격하게 함)이라는 일관된 원칙을 세웠다. 그는 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켰고, 객관적 사실에 자신의 가치기준을 더하여 역사를 서술했다. 이것이 동양의 역사집필 기준이 된 춘추필법(春秋筆法)이었다.

공자가 <춘추>를 편수한 데에는 목적이 있었다. 그는 당시 천하가 어지러웠던 것은 도(道)가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봤다. 그래서 인(仁)의 관점에서 대의명분을 밝히고, 이를 기준으로 역사를 준엄하게 평가함으로써 천하의 질서를 세우고자 <춘추>를 남겼다. 공자는 세상을 이끌어가는 엘리트들의 행적을 사실대로 밝혀서 역사적 평가를 받게 함으로써 난신적자(亂臣賊子)들의 난행을 경계하고자 했다.

역사의 본질과는 다른 맥락이지만 조선 중기에 사문난적(斯文亂賊) 논란이 있었다. 당시 성리학 이념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에 윤휴가 성리학의 집대성자인 주희(朱熹)의 유학경전 주석을 부정하고 다른 해석을 냈다. 이에 주류였던 서인 정권은 윤휴를 성현의 도를 어지럽히는 사람으로 낙인찍었다. 윤휴는 천하의 도(道)를 주자 혼자만 안다고 할 수 없음을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주자와 다른 입장이지만 공자와 맹자를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했다. 하지만 결국 사문난적으로 몰려서 사약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주자와 윤휴는 사실 전혀 다른 사상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다. 다 같이 공맹(孔孟)의 사상적 본질을 궁구했으나, 관점이 달랐을 뿐이었다. 윤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도의 본질에 대한 학문적 대립이 아니라, 학문적 이념을 내세운 서인과 남인의 권력싸움이었다. 이념이 정치적 이해관계와 만나면 이처럼 파괴적인 것으로 변질된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를 탐구하는 학문과 그로부터 파생된 이념은 궁극적으로 통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순한 정치적 의도는 ‘다름과 다양함’을 용인하지 않는다. 동근이기(同根異技)를 부정하는 자기모순을 드러낸다.

지금 우리사회가 때 아닌 역사전쟁으로 혼란의 늪에 빠졌다. 현 정권이 ‘올바른’ 역사관을 정립하겠다고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천명했다. 역사논쟁의 축은 이념편향과 역사왜곡이다. 현 정권에 저항하는 학계 및 시민사회, 국제사회의 논리는 굳이 논할 필요도 없다. 대신 이념과 역사의 본질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는 있겠다.

정치이념은 무엇이 이상적인 정치체제인가에 대한 신념이다. 현대 정치이념의 지향점인 ‘주권재민(主權在民) 국태민안(國泰民安)’을 추구한다면 그 어떤 정치이념도 문제가 없다. 문제는 이념의 문구상 차이가 아니라, 이념의 실현가능성과 이념추종자의 실천의지일 뿐이다. 우리가 제헌헌법 이후 견지하고 있는 헌법정신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지가 특정이념의 진정성을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다. 이에 대한 판단은 특정정권의 몫이 아니다. 오롯이 주권자인 국민의 몫이다.

본디 사(史)란 역사적 주체와 독립적인 관계에 있는 자가 ‘있는 그대로를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를 배운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알고, 이를 토대로 개인들이 다양한 사고와 경험을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체득하고 정의를 추구해나가는 과정이다. 역사교육의 목적은 다양한 관점과 건강한 비판능력을 갖고 ‘올바른 것은 올바르고 그른 것은 그릇됐다’고 말하고 행동하는 민주시민을 육성하는 것이다. 교육가치가 있는 역사적 사실을 선정하고 평가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은 역사학계와 교육현장의 몫이지, 특정정권이 될 수 없다. 그 사회의 역사학계가 진실을 왜곡하는데도 시민은 사리분별도 못하는 수준이라면 또 몰라도!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역사논쟁이 ‘올바른’ 것인지 묻고 싶다. 한반도 주변의 안보환경이 급변하고 있고, 세계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경기침체와 정책실패로 가계와 국가의 재정이 심각한 상태다. 부익부 빈익빈으로 인한 사회갈등이 모든 분야에서 드러나고 있다. 자영업계는 도산 직전이라고 아우성이고,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서 미래를 포기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에 고심하고 있다. 사회 전체가 몸살을 앓고 있는데, 역사전쟁이 그토록 시급하고 중대한 의제인가?

현 정권이 진정으로 이념편향을 막고 ‘올바른’ 역사관 정립을 원한다면, 역사전쟁을 벌일 것이 아니다. 현 정권이 추구하는 정치이념의 진정성을 실천으로 증명하기 위해 오직 국가안보와 경제정의를 통한 균형성장에 진력하는 모습을 보이면 될 일이다. ‘올바른’ 역사관을 세우려면 먼저 근현대사와 관련된 모든 사료를 국민들과 공유하고 소통하면서, 통렬한 과거사 반성과 청산을 통해서 민주복지국가로 나가는데 전 국민이 자발적으로 동참하도록 솔선수범하면 된다. 현 정권은 산적한 문제를 제쳐놓고 치루는 역사전쟁의 진정성을 증명해야만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사문난적은 아니고, 난신적자의 득세를 막는 것이 역사의 소명임을 되새길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