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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포근해 보이는 하늘을 뒤로하고 충분치도 않은 가을비가 내리더니 뺨에는 날카로운 바람이 스치며 차갑게 느껴진다. 낙엽들은 어느새 바닥에 소리없이 우수수- 벌써 11월, 올해로 저물어 가고 있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매일매일이 빠르게 지나면서 살벌한 겨울을 부르고 있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해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드리우시고 들판 위엔 바람을 놓아주십시오./ 마지막 열매들이 영글도록 명하시어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극의 따뜻한 날을 베푸시고 완성으로 이끄시어 무거운 포도송이에 마지막 단맛을 넣어주십시오./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더는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오래도록 혼자로 남아 깨어나,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그러다가 나뭇잎 떨어져 뒹굴면 가로수 길을 이리저리 불안스레 방황할 것입니다.’ 교과서에 실린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시, ‘가을날’은 가을보다도 더욱 가을색이 짙은 릴케의 시는 너무나도 깊고 웅장하여 한편으론 한없이 단순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독자들이 읽고 가을볕처럼 따사로우면서도 한편으로 허전한 정서를 마음에 아로새겼을 것이다. 열정과 폭염으로 이글거리던 여름이 지나고, 만물이 영글어 결실에 이르는 대자연의 서사를 릴케는 너무나도 짧고 선명한 이미지 속에 아로새겼다. ‘주여, 때가 되었습니다’라는 선언은 결실과 심판의 중의적 시간으로 만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인간은 이틀만 더 따뜻한 남극의 날을 달라고 기도하며 그것을 통하여 자연의 결실이 완성에 이르기를 희망한다. 포도송이에 비유하긴 했지만 신의 경작물이 인간의 수확이 된다는 것은 대단한 시적 영감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신의 경작물이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이 된다면 인간은 어떤 식으로 결실에 이르고, 심판받아 신의 수확이 될 수 있을까? 릴케의 시 ‘가을날’은 우리 인생의 가을을 돌아보게 한다. 나의 인생은 지금 어느정도에서 익어가고, 어떤 결실로 구분되며, 어떤 심판을 받을까? 우리는 아직 집이 없는 존재, 아직 집이 되지 못한 존재, 더 아파하고 더 깨어 있으라고 낙엽이 떨어져 뒹구는 거리로 내몰아 더욱 방황하게 만든다. 그리고 방황이라는 말을 얼마나 오래동안 잊고 살았나. 가을을 넘어서 겨울로의 입성이 시작된 요즈음 우리 주위의 자연은 아름다운 색채를 뽐내며 깊어가는 늦가을을 아쉬워 하기도 한다. 한국의 가을! 인공적으로는 진정 표현할 수 없는 그야말로 자연스럽고, 아름다우며, 화려하고 다양한 색감이 온누리에 펼쳐져 우리의 감성을 마구 자극하는 조물주의 귀한 선물이라 아니할 수 없다. 한편 추위를 동반하는 겨울은 대다수의 서민들에겐 그리 반가운 계절이 아니다. 전기나 기름을 물쓰듯 하는 세상이라지만, 그와같은 계층은 많지 않으니-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도 증가 추세에 있으며, 거기에 동반되는 번개탄(착화탄)은 우리 서민들에겐 추운 겨울, 자신을 태워 연탄에 불을 붙이는 번개탄의 희생이 필수적이다. 엊그제 27일 우리 익산에서 차안에 번개탄을 피우고 3명이 생명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번개탄 자살이 신문에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5, 6년 전이 아닌가 한다. 2007년 번개탄 및 가스중독 자살자는 66명, 2012년에는 1,069명으로 16배 늘었으나 올해에는 어느 정도인지? 유명인이 자살하고 이를 모방하는 일명 베르테르 효과는 세계적으로 확인된 바 있다. 특정 도구를 이용한 자살이 이처럼 무서운 속도로 늘어난 경우는 전례가 없다는 것도 걱정이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재미있는 일은 정부는 갑자기 “번개탄 판매 제한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가 “투신을 막기위해 한강을 매립하는 꼴”이라는 비아냥에 발표를 취소하기도 했으니- 현실적으로 번개탄 구입을 막기는 어렵다. 최근 경기도의 한 번개탄 제조업체 포장지에는 ‘생명은 소중합니다’라는 자살예방 문구를 넣기도 했다고 발표했다. 생명의 소중함은 백번, 천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으니 이 화려하고 풍족한 가을을 듬뿍 담아서 슬기롭게 겨울을 맞아야 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