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숲교회 담임목사 
강 남 웅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정을 받고 싶고, 주목을 받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다. 때깔 고운 자리에서 뭇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아보고 또 자신의 원하는 꿈을 펼쳐보고 싶은 열망, 달리 말하자면 모두가 꽃자리를 원한다는 뜻이다. 격한 세상 속에서 저마다 나름대로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조신(操身)하게 살아가려 몸부림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 한 순간이라도 찬란한 꽃을 피우기 위함이리라. 그런 면에서 봄의 소쩍새 우는 소리는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함이라던 시인의 노래는 정직한 고백이다.

그러나 ‘열흘 붉은 꽃은 없다 (花無十日紅)’는 말이 있듯이 꽃은 피었다 지기 마련이다. 오래가는 꽃은 있을지언정 영원히 가는 꽃은 아예 없다. 그럼에도 꽃은 생명이 내려앉도록 잠깐 자리를 지키다 떠나는 게 운명이자 하늘이 준 사명임을 아는지, 그 자리를 영원한 자신만의 자리라고 고집부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꽃이 피었다 진 그 자리에서만 생명의 초록빛 잎이 나오고, 탐스런 열매가 익어간다.

‘화무십일홍’은 중국 남송의 시인 양만리가 지은 ‘납전월’ 즉 ‘섣달 월계화 앞에서’란 시의 '지도화무십일홍(只道花無十日紅)'이란 표현에서 유래한다. '그저 꽃이 피어야 십일을 못 넘긴다'는 뜻으로, '권불십년(權不十年)', '월만즉휴(月滿則虧)'와 함께 권력의 무상함을 이르는 사자성어로 쓰여 왔다. 사실 해방 이후 근현대에 들어서 우리나라의 최고 권력자들의 모습은 역사의 기록 앞에 당당함을 잃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순리를 저버린 권력 남용은 국민들에게 큰 고통과 짐을 안기는 불행한 역사로 매번 반복되어 왔고, 이러한 권력자 자신들의 불행이자 대한민국과 국민들 가슴에 깊은 생채기를 낸 아픈 역사에, 지방 권력의 잘못 또한 예외일 수 없을 것이다.

6.13 지방선거는 예견된 결과이지만 우리나라의 정치사에 상당히 의미 있게 자리 매김 하리라 생각한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처음 치러진 전국 단위 선거인 지방선거에서 17개 광역단체 가운데 14곳을 차지하는 '역대 최대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현 정부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온 한반도 평화 분위기 조성이 큰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민주당의 동진 전략이 부산·울산·경남에 파란 깃발을 꽂는 성과를 거두었고, 보수 텃밭이었던 경기 북부의 파주, 포천, 동두천과 서울 강남, 송파 등지의 정치지형을 바꾸는 등, 호남과 영남으로 갈랐던 지역기반의 경계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성공을 이루어냈다.

반면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그동안 정권의 심판대이자 여당의 무덤이라 여겨지던 지방선거임에도 대구·경북(TK)만 가까스로 방어하면서 지역 정당으로 쪼그라든 형국이 되고 말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1년 이상이 지났지만, 보수 진영에 대한 국민적 분노인 ‘촛불 민심’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결국 국민은 달라진 것 없는 이대로의 한국당은 안 된다고 보고 유례없는 '역대급 참패'라는 결과로 한국당을 심판했다. 선거 막판에 결집을 호소했던 '숨은 보수'도 응답하지 않았다.

우리네 인생도 동일하다. 절세가인의 아름다움도 몇 년을 유지하기 어렵고, 아무리 위대한 영웅호걸도 결국 때가 되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이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베드로전서 1장 24,25절) 아무리 위대한 업적도, 아무리 큰 영광이나 권세도,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한 모습도, 때가 되면 ‘열흘 붉은 꽃은 없다.’(花無十日紅)는 말처럼 지기 마련이다.

이제 과거와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는 쉽지만, 그들을 만족시키기는 어렵다’는 C.S 루이스의 말처럼, 지금은 단순한 개선이 아니라 '변형'Transformation이 필요하고, 더 좋은 쪽으로 바뀌는 식의 변화가 아니라 전적으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변화가 되어야한다고 믿는다. 이번 선거로 권력을 위임 받은 이들이 ‘화무십일홍’의 교훈을 새겨 단지 조금 더 좋은 사람(Nice Person)이 아니라, 새사람(New Person)이 되어 역사의 이정표가 되기를 응원하며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