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애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은 이런 말을 했다.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이 나라가 복구되려면 백 년은 걸릴 것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전쟁이 끝난 지 35년 후에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냈고 국민의 힘으로 독재를 물리치고 민주국가를 수립했으며 70년 후에는 이 나라의 문화콘텐츠와 제품들이 전 세계를 누비고 있으며 이 나라의 언어와 음식마저도 외국인들에게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어디 그뿐일까?
나라를 대표하는 가수들이 유엔에서 연설을 하는가 하면 영국 국왕으로부터 훈장까지 받은 여가수들도 있다. 오래전부터 내전이 심했던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의 젊은 대학생 청년들은 국가에서 주는 장학금을 받으며 한국의 대학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해 정말로 간절히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언젠가 TV에서 내가 본 장면이다. 그들이 그토록 가고 싶어 하는 나라에 우리가 살고 있다. 맥아더 장군이 살아있다면 지금의 한국을 향해 무슨 말을 할지 참 궁금하다.

  한류가 수많은 나라에서 문화의 코드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요즘 오랜만에 국내 영화계에서도 천만관객을 향해 달리고 있는 영화가 있다. 코로나로 인해 한 동안 주춤하고 있던 국내 영화산업에 ‘서울의 봄’은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 시절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제대로 현대사를 배우지도 못한 2030 세대들이 이 영화의 주요 관람층이라고 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사람들이 왜 심박수 챌린지를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될 만큼 나의 심장도 거칠게 반응을 하고 있었다. 내가 기억하는 군부독재 시절의 이 나라의 정치행태는 조선시대보다도 민주적이지 못했다. 결국 독재자는 삶을 마치고도 자신이 누울 자리조차 찾지를 못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인과응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암울했던 그 시절에 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수많은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내 생전에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을까?’라는 물음이 삶을 관통하는 명제였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내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 영화가 해외로도 수출이 되어서 한국이라는 나라가 지금 이룩해 놓은 수많은 결과들이 결코 저절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외국의 한류 팬들에게도 알려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렇듯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무수히 많은 역사의 굴곡을 거치면서 이제는 세계의 선진국들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일들을 척척 해내며 지구촌의 문화강국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에 대하여 이제는 정말로 진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나라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문제가 없지는 않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정말로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요즘 국내에서 한 가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하여 폐지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여름 한 초등학교 여교사의 사망사건 이후로 교권회복을 위한 정책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에서 화살을 엉뚱한 방향으로 돌린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문제이다. 만약 학생인권조례에 문제가 있다면 논의를 거쳐서 수정 보완을 하면 될 것이고 선생님들의 권리 또한 마땅히 지켜져야 할 것이다. 우리의 교육이 그 출발부터 대화와 토론을 중요시하는 토양에서 싹이 튼 교육이었다면 지금 이런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이런 문제는 인성교육의 부재가 일으킨 안타까운 사건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왜 온 세상이 그렇게 좋아하는 나라에서 정작 그 나라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이렇게도 불행해야 하는 것일까. 대한민국에 가는 것이 소원인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가 자살률이 이렇게 높다는 것을 과연 알고 있을까. 우리의 문화가 전 세계인에게 인기를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안에서 살고 있는 국민들이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라를 이끌어가는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가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을 말해준다는 것을 우리는 덴마크라는 나라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그래서 덴마크의 국민들은 우리처럼 자국의 문화가 온 세상을 휩쓸지 않아도 마냥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아마도 이것은 정치와 교육과 수없이 많은 사회제도의 협업이 이루어낸 최고의 수혜일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루어낸 기적 같은 일들은 분명 우리에겐 저력이 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그래서 한류를 지속가능한 콘텐츠로 키워내려면 저력이 있는 이 땅의 국민들이 먼저 행복해져야 한다. 행복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문화는 장차 이 나라를 지구의 중심 국가로 만들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진정한 문화강국으로서의 탄탄대로를 달리고자 한다면 부강해지기 이전에 아름다운 나라가 되어야 한다. 아름답지 못한 채 강하기만 한다면 서울의 봄을 겨울로 만들어버린 독재자가 또다시 출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