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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부짱

윤복순 윤약국약사

그녀가 환한 얼굴로 공항에 나타났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젊다. 그리고 웃는 얼굴이다. 각자 통성명을 했다. 그녀의 이름이 어려워 수첩에 적어 놓고 외웠다. 아버지는 한국인 어머니는 일본인이란다. 한국어는 단어 몇 개 아는 정도다. 한국어에 별 관심이 없었는데 나이를 먹으면서 무궁화공원을 맡으면서 이제 조금씩 배우고 있다고 한다.

아버지는 해방 후 일본으로 건너가 건설업을 했는데 전후라서 그리고 발전도상국 시기라서 크게 성공했단다. 현재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나가토로 관광지에서 오토캠핑장을 운영하고, 언니는 호텔, 오빠는 아버지의 사업을 하고 있다. 그녀는 결혼해 살림만 하고 있었기에 아버지께서 그녀에게 무궁화공원을 주셨단다.

그 크기가 세계에서 제일 큰 30만평이다. 무궁화공원 때문에 그녀와 인연이 되었다. 사단법인 한일친선여성협회 전북지부와 자매결연이 맺어진 것이다. 문화교류를 통한 친선도모다. 격년으로 한 해는 우리가 일본에 가고 또 한 해는 그들이 한국에 온다. 나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는 3남매를 둔 엄마고 막내가 고 3이다. 고3 엄마가 해외 손님을 4명이나 초대해 삼일 밤을 재워주고 밥을 해 먹이고 우리 일행의 가이드 및 기사를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못 할 일이다.

그녀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 저녁밥이라고 밖에서 먹고 들어가자고 하면 우리들에게 집에서 해주고 싶은 음식을 미리 계획했기에, 또 애들과 남편 저녁식사를 준비해야 하니 걱정 말라고 한다.

하루는 남편과 연락이 안 돼 딸을 학교로 데리러 가야 했다. 딸까지 타면 여섯명이 되니 우리를 마트에 내려주며 쇼핑하고 있으란다. 딸을 집에 데려다 놓고 다시 오겠단다.

집에 들어가니 먼저 온 딸이 우리 일행에게 밥을 해주기 위해 쌀을 씻고 있다. 세상에 고3이 그것도 웃는 얼굴로. 우리나라에선 어림없는 일이다. 그녀는 아래층의 우리들 방 신경 쓰랴 이층의 자기 식구들 챙기랴 다다다닥 발바닥에서 불이 나게 다녔다.

시어머니에게도 우리를 소개시키기 위해 시댁에도 갔다. 아무리 같은 도시에 산다고 해도 나 같으면 시어머니한테 까지 갈까 생각해 보았다. 고부지간에 사이가 좋아 보였다. 시어머니는 우리를 위해 요구르트와 과자류를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볶음밥과 만두를 빚어 놓았다. 저녁식사 준비하기 바쁜 며느리를 위한 배려였다.

친정 엄마는 토요일 점심에 초대해줬다. 마침 나가토로 캠핑장에선 단풍축제가 열이고 있다. 앞엔 아라카와강이 흐르고 뒤엔 호도산이 있어 경치가 정말 아름답다. 한번 벌어진 입이 쉬 다물어지지 않았다. 바비큐 식사를 대접받고 단풍이 절정인 그곳에서 축제도 즐겼다.

저녁에는 히포(Hippo)라는 다국어 연구회 모임에 갔다. 젊은 엄마들이 자녀들을 데리고 와서 외국어를 배우고 그 나라의 언어를 통해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모임이다. 그들은 우리말을 조금씩은 알고 우리를 생각해 한국어로 자신들을 소개했다. 애기들도 중학생도 우리말로 한다. 모두들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하는 줄 몰랐다.

멕시코에서 와 일본 가정에 홈스테이 하는 학생도 우리말을 잘했다. 자기들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스럽게 하고 이름을 말하고 별명도 말했다. 회원들끼리는 별명으로 부른단다. 일종의 애칭이다. 나도 복덩이 복순이라고 소개했다. 그녀, 하세가와 노부에상이 자리를 노부짱 이라고 불러달란다.

그녀는 하나라도 더 보여주려고 늦게야 집에 들어가고 그 시간에 밥을 해주고 식사가 끝나면 무궁화공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 자고 언제 일어나는지, 식사 준비하랴 딸 학교까지 데려다 주랴, 하루 종일 운전하고 설명해 주고 정말 슈퍼우먼이다. 짱이라는 별명이 맞다.

3일째 되는 날 전북 김치 명인의 김장축제가 고려신사에서 열렸다. 고구려의 유민들이 야광이라는 왕족을 중심으로 직접 살았다는 집이 고려신사 내에 있다. 그 앞마당에서 매년 김치축제가 열린다. 노부짱을 데리고 그 축제에 참여했다. 그녀와 우리 일행이 같이 김치를 담그는 것이 이번 여행의 목적이다. 일본인도 김치를 좋아한다. 주먹밥 도시락을 김치와 먹으며 김치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날 담근 김치를 그녀에게 선물했다.

고려신사 옆 성천원에 갔다. 이곳엔 일제 때 끌려와 무연고자로 사망한 자들의 위령탑이 있는데 한국의 역사를 잊지 말자는 의미로 고구려 을지문덕, 신라의 문무왕, 백제의 왕인박사, 고려의 정몽주, 조선의 신사임당의 석상이 있고 맨 위에는 단군의 석상이 있다. 파고다공원의 팔각정을 축소한 쉼터도 있다. 이 공사의 모든 재료는 한국에서 가져왔단다. 이 공사에 론짱의 아버지가 4억엔을 기부했다고 기부자 명단에 적혀있다.

무궁화공원에는 비영리법인 유치원이 있고, 전시실 겸 미술관이 있고, 천연염색 체험장이 있다. 우리도 도토리를 이용한 예쁜 스카프를 만들었다. 우리나라 산림조합중앙회에서 팔각정을 지어주고 무궁화나무 전지를 도와주었다고 한다. 공원에 입장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의 국화공원도 아니니 시에서 보조를 받는 것도 아니고, 그 넓은 곳을 관리하려니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도 꿋꿋하게 견디며 이끌어가고 있는 그녀가 자랑스럽다.

이민 초창기 시절 많은 어려움을 겪고 또 많은 차별을 받았을 텐데 한국인임을 잊지 않고 무궁화공원을 만들고 성천원에 많은 기부를 한 그녀의 아버지께 경의를 표한다. 그녀의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오늘 더 많은 감정 교류를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녀는 그런 아버지의 딸이다.

그녀의 집에서 2박 하고 1박은 호텔에서 하려고 했는데 비싼 돈 주고 뭣 땜에 호텔에서 자냐고 기어이 자기 집에서 자라고 해 세 밤 다 그녀 집에서 잤다. 지치고 귀찮을 텐데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여전히 위아래층으로 발바닥에 불이 나게 다닌다.

어려운 일을 즐거운 마음으로 하기에 그녀의 얼굴이 환하지 않을까. 노부짱의 얼굴에서 웃음이 가시지 않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