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새해 첫날 우연히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었다. 아주 오래전에 봐서 자세한 내용을 잊어버렸는데, 다시 읽어보니 감흥이 새로웠다. 이 소설은 신의 명을 어긴 죄로 벌을 받게 된 천사 미하일이 인간 세계로 내려와 6년 동안 지내면서 신이 내린 3개의 질문에 대한 답을 깨닫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신이 미하일에게 내린 첫 번째 질문은 ‘사람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는가?’였다. 답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에 대한 자비로움이었다. 두 번째 질문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였다. 답은 자신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 지혜였다. 세 번째 질문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였다. 답은 사랑이었다. 미하일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하나를 더 깨달았다. 신은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기를 원하기에 사람들에게 사랑만 주고 지혜는 주지 않았으며,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삶이 곧 신과 함께 하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톨스토이는 시민혁명의 원년인 2017년을 맞이한 우리에게 나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지난 1998년 IMF관리체제 때부터 본격적으로 몰아닥친 신자유주의 사조는 우리 사회를 극적으로 바꿔놓았다. 효율이란 미명으로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몰아갔고, 세상은 갈수록 각박해지기만 했다. 우리는 잘못된 제도에 의해 약자에 대한 자비로움을 점차 잃어가는 야만적인 사회에 살게 됐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는 돈 그리고 돈과 연결된 힘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면서 많은 서민들은 살기 힘들어서 아우성인데, 소수의 금수저들은 온갖 비리와 특혜로 더 많은 것을 축적해왔다. 그들의 패악과 갑질이 극에 달한 지금 이런 세상이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 일지 않을 수 없다. 가진 것을 지키면서 누리려면 적당한 나눔을 통해 더불어 살아가야 함은 동서고금의 역사에서 증명된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던가?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평범한 지혜조차 잃어가고 있다.

사회를 이루고 사는 존재는 서로 믿고 돌보는 마음 없이 살아갈 수 없다.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는 것 자체가 사회로부터 커다란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약육강식과 승자독식의 세상이 된 우리 사회에서 서로 믿고 돌보는 마음이 약화되고 있다. 마치 혼자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경우를 심심찮게 보게 된다. 그 이유는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처럼 정의가 퇴색됐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도록 작동하는 작금의 우리 사회가 이런 상태로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겠는가?

누군가는 사람이 사회를 만든 것은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사람의 정신 속에 더불어 살기 위한 신뢰와 배려라는 보편적 무의식, 즉 원형(元型)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또한 호혜주의를 통해 결과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이타적 유전자가 있다고도 말한다. 표현은 다를망정 톨스토이의 말처럼 사람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재인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사회적 관점에서의 사랑이란 열매는 정의를 자양분으로 할 때만 열릴 수 있다. 인간의 보편적 무의식에는 사랑만 있는 것이 아니다. 시기와 증오, 탐욕과 이기심, 분노와 폭력 등과 같은 파괴적 측면도 존재한다. 이런 무의식들을 정의가 작동할 때는 조용히 있지만, 정의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폭발한다. 사랑타령만 한다고 사랑이 이 땅에 구현되지 못하는 이유다. 그래서 정의야말로 사람이 사랑에 기대어 살아가는데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것이다. 정의와 사랑은 같은 말이다.

극심한 국가적 혼란 속에서 2017년이 시작됐다. 국제 정세가 급변하는 가운데 탄핵과 대선 정국으로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다. 경제가 흔들리고 민생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나라 전반을 봐도 뭐 하나 제대로 굴러가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도 우리는 살만한 세상을 만들자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일터, 사회와 나라를 위해 걱정하고 헌신하고 있다. 희망조차 내려놓으면 더 이상 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문제는 작금의 혼란을 책임져야 할 사회지도층들이다. 그들이 정신 차려야 하는데, 정작 그들은 과오를 책임지는 것은 고사하고 통렬한 자기반성조차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정의를 말하지 않고 기존 질서의 연장선상에서 ‘효율적인’ 미봉책을 논한다. 정의가 실현되지 않고는 사람들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사랑이 흐르는 세상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정의를 말하지 않는 자 세상에 대한 사랑이 없는 자다. 아마도 2017년에도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가 정의를 외치고 실현해야 할 것이다. 정의만이 우리가 더불어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항상 정의를 외치는 주간소통신문의 발전과 이 땅의 정의를 갈망하는 독자제현의 소원 성취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