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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윤복순 윤약국약사

지난 일본 여행 때다. 한일친선여성협회는 문화교류를 통한 친선도모이므로 올해는 김치 담는 행사를 일본 고려신사에서 가졌다. 우리 회의 자문위원이 전북의 김치 명인인데 그녀가 매년 일본에서 김치축제를 한다. 그 행사에 개인 자격으로 참여했다.

일본 회원들과 김치를 담으며 한국의 김장문화를 공유해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다. 한국 일행 중 한 사람이 일본에서 대학을 나왔는데 자기가 담은 것은 대학 친구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마침 그 친구도 고려신사 가까운 곳에 볼 일이 있다며 김치를 가져가겠다고 해 약속이 되었다. 그녀가 남편과 같이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가 커피 값을 계산하고 조그만 선물까지 준다.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까지 선물을 준비한 것에 놀랐다. 아니 감동이었다.

내가 얼마나 인색하게 살았는지 반성이 되었다. 일면식도 없는, 이해관계가 없는, 더구나 외국인을 위해 만나면 주려고 선물을 준비해 본 적이 있던가. 그녀의 마음 씀이 부러웠다.

미얀마 여행을 갔다. 나도 선물을 준비해 가기로 했다. 그들에게 소용될 만한 것이 무얼까. 남편의 모자가 생각났다. 더운 나라라 괜찮을 것 같다. 챙이 좁다고 안 쓰는 야구모자가 두 개 있다. 제약회사 직원들이 준 볼펜도 넣었다. 무엇을 가지고 가야 할까. 선물도 해 본 사람이 잘 한다.

오래전 후지와라신야가 쓴 동양기행이란 책을 읽었다. 거기에 미얀마편이 나온다. 그가 길거리에서 미얀마 카레를 사 먹는데 청소년으로 보이는 애들 두 명이 자기 옆에 서 있더란다. 그 애들이 먹고 싶어 서 있는 줄 알고 쳐다보니 그들이 자기 먹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반대편을 보고 있어 일단 먹고 싶어 그런 것은 아님을 알았다.

그 시간이 거의 1시간이 되어갔다. 아무래도 이상해 밥을 판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그녀는 일본어를 못 알아들어 고개만 흔들더란다. 마침 어떤 아저씨가 2차 대전 때 일본에 군인으로 갔다 왔다며 “응달”이라고 대답하더란다.

외국인이 밥을 먹는 동안 그에게 그늘을 만들어주기 위해 그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땡볕에 서 있었던 것이다. 그때는 여름이어서 땀이 줄줄 흘렀단다. 그 글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이런 사람들이 사는 나라, 미얀마를 어서 가보고 싶었다.

내가 아는 상식으로 미얀마는 가난한 불교의 나라, 사회주의국가, 아웅산 폭발사고, 수치여사의 가택감금 등이다. 일본에서 터키까지 아시아다. 인도가 아시아의 중앙이 된다. 인도를 중심으로 서쪽은 이슬람 국가로 광물의 세계이고, 동쪽은 불교국가로 식물의 세계라는 글을 읽었다. 식물의 세계라는 말에서 내 생각이 긍정으로 바뀌었다.

양곤을 출발해 바간에 갔다.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도시 간의 이동은 모두 비행기로 했다. 미얀마는 지금 건기이고 나무도 사람도 집도 모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그리고 덥다. 모자는 버스 기사와 로컬가이드에게 주었다. 입이 귀에 걸린다. 그들이 한국의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한단다. 그들이 하루 종일 모자를 쓰고 관광지에서 내릴 때마다 내게 눈을 맞추며 웃어준다.

비행기로 이동하니 가는 곳마다 버스가 바뀌고 기사도 바뀐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모자 좀 더 사 왔으면 좋았을 걸. 아쉬움이 남는다. 아직 볼펜은 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만달레이에서다. 이곳은 미얀마 제2의 도시고 경제가 발달한 곳이다. 저녁식사 후 호텔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대도시라도 먼지가 폴폴 날렸다. 앞 가방도 방에 두고 달러 몇 장만 주머니에 넣은 채 일행 몇 사람과 같이 했다. 길거리 좌판도 구경하고 가게들도 흘깃흘깃 쳐다봤다. 사람 사는 것은 비슷비슷하다.

건너편이 조금 화려해 보여 길을 건넜다. 삼성 휴대폰 가게도 있고 제과점도 있다. 먹음직스러워 빵집에 들어갔다. 불교국가인데 크리스마스 기분을 내고 있다. 트리도 있고 직원들도 산타 모자를 쓰고 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빵을 좋아한다며 하나를 들더니 정말 맛있는 빵이라고 사고 싶어 했다. 빵이 가벼울수록 맛있는 빵이란다.

미얀마 돈 ‘짯’을 바꾸지 않아 걱정이 되었다. 계산대 앞으로 가 유에스달러를 받느냐고 물었다. 젊고, 세련되고(미얀마 옷을 입지 않고 롱드레스를 입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아가씨가 옆에 있었다. 그녀가 직원에게 뭐라 미얀마 말로 통역을 해 줬다. 받지 않는단다. 우리가 달러밖에 없다고 하니 매니저에게 물어보겠다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 된단다. 비자카드도 안 된단다. 카드 자체가 없다고 한다.

들었던 빵들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나왔다. 바로 그때 그 세련된 아가씨가 빵 봉투 두 개를 들고 뒤따라 나오더니 하나를 나에게 준다. 눈을 크게 뜨며 “아니, 왜?” 하는 제스처를 보이니 온 얼굴에 웃음을 띠며 두 개이니 하나는 줘도 된단다. 우리를 줄려고 똑같은 것으로 두 개를 산 것이다.

이런 감동이 어디 있나. 달러를 줄 수도 없고, 돈을 준다는 것은 그녀의 호의를 모독하는 것 같고, 안 받는 것은 그녀의 좋은 일에 누가 될 것 같고, 그녀의 마음을 진심으로 고맙게 받았다. 나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 이런 때를 대비해 가방에 작은 거라도 넣어갖고 다녀야 하는데. 내가 정말 작아 보였다.

나는 한국인이고 매우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그녀가 자가용을 타고 창문을 내리더니 손을 흔들며 출발한다. 나는 망부석이라도 된 듯 한참을 그곳에 서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대접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도 물론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없다.

누가 미얀마를 못 사는 가난한 나라라고 할까. 미얀마는 GNP 겨우 1200달러 정도이고 우리는 3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미얀마 처녀에게서 나는 보시를 받았다. 이런 뭉클함이 팍팍한 삶에 윤활유가 된다. 오랫동안 이 가슴 떨림을 즐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