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우리는 살면서 많은 사람을 만나지만 그 사람이 다 아는 사이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런저런 인연으로 만나다 보면 아는 사이가 된다. 아는 사이가 되면 처음 만났을 때의 이상했던 행동의 오해도 풀리고 정도 나누게 된다.
 

 한 달 전쯤이다. 전혀 얼굴이 익지 않은 아주머니가 P제과점의 빵을 나를 주려고 사가지고 왔다는 것이다. 큰 봉투에 가득, 20개도 넘는 것 같았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공짜로 받아야 할 이유가 없어 고맙지만 사양하겠다고 했다.

  생퉁 모르는 사람에게 나는 믿음이 가는 사람일까. 나는 또 그런 사람을 얼마나 신뢰할까. 내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그래서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에게 길을 묻고 그가 알려준 대로 행동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잘 알려주고 친절하다.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무슨 악감정이 있어서 골탕을 먹이려 하겠는가.
 

아주머니는 모르는 사람에게 맛있는 빵을 주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 지 조사해 논문을 쓰려는 것일까, 나름의 규칙을 정해 놓고 자선사업을 하는 걸까, 전에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한 빚을 갚는 걸까, 별 상상을 다 해 보았다.
 

극구 사양했지만 기어이 놓고 갔다. 분명 유명한 P제과점의 빵이다. 그런데 먹지는 못하겠다. 행여 빵 속에 독극물이 들어있지나 않을까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왜 나에게 이걸 주고 갔을까. 혹 내가 그 아주머니에게 알게 모르게 마음 상하게 하는 말이라도 했을까. 이렇게 저렇게 지난날을 뒤적거려 보았지만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이 놀러 나오셨다. 이만저만 이런 일이 있었다며 빵을 보여 드리니 이구동성으로 버리라고 한다. 나도 먹을 생각이 없었다. 남편에게 포도밭 공터에 묻으라고 차에 실어주었다.
 

먹는 것을 버렸다는 것 보다 사람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 더 양심에 걸렸다. 혹여 이만저만해 빵 먹고 무슨 탈이 났다는 뉴스가 있는지 귀를 쫑긋 세워보았지만 그런 얘기는 없었다. 나만 나쁜 사람이 되었다. 괜한 사람을 의심했다는 죄의식에 며칠 동안 우울했다. 그러다 잊어버렸다.
 

2~3일 전이다. 어떤 아주머니가 인사를 하며 들어왔다. 나는 신문을 보는 중이어서 안경을 벗고 있었다. 안경을 벗은 상태에선 사람을 얼른 알아보지 못한다. 안경을 쓰고 보니 드링크 선물용세트를 들고 있다.
 

그걸 나에게 주려고 왔다는 말에 잘 생각해 보니 그 아주머니다.
  “나한테 왜 그래요?”
  “물론 약국에도 많지만 그냥 드리고 싶어요.”
쫓아나가며 가지고 가라고 했지만 다른 말 한마디 없이 가버렸다.
 

 두어 달 전쯤 함라산 둘레길에 갔다. 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만나면 인사를 나눈다. 조금 앞에 부부와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꼬마가 가고 있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그들도 가볍게 인사를 받았다. 앞서가던 꼬마도 얌전하게 인사를 했다.
 

 인사도 예쁘게 잘 한다고 칭찬을 했더니 꼬마가 엄마 아빠를 뒤에 두고 우리 부부를 따라 왔다. 산에 다니는 것 좋아하니? 이름은?, 몇 학년?, 어디서 왔어? 엄마 아빠 여행 다닐 때는 꼭 따라다니는 게 좋다는 둥, 오빠나 언니는 없냐는 둥 말을 시켜 보았다.
 

 한참을 따라오더니 저의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우리가 걸음이 빨라 저의 부모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저씨 아줌마랑 가고 있으라고 했단다. 1시간 이상 같이 걸었다. 또랑또랑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얘기를 한다. 엄마 아빠는 대화를 많이 하는데 아저씨 아줌마도 대화 많이 하는 편이냐고 묻는다.
 

이야기 중 그 애가 외둥이이며 익산이 객지임을 알았다.
  “우리 포도밭에 놀러 올래?”
포도를 제일 좋아 한단다. 남편이 휴대폰번호를 알려 주었다. 그 애가 그 번호로 전화를 해 남편 휴대폰에도 그 아이의 번호가 찍혔다.
 

일요일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데 타야할 버스가 왔다. 그 애 부모는 아직 내려오지 않았다. 그 애 혼자 남게 되어 얼른 엄마에게 전화해 보라고 하였다. 거의 다 왔단다. 시내버스는 1시간에 한 대 꼴이다. 일요일에는 그 간격이 더 클 때도 있다. 그 버스를 놓치면 요양병원에 계시는 시어머니의 면회시간이 맞지 않아 꼭 타야만 했다.
 

사정을 얘기하니 괜찮단다. 버스가 한 정류장 쯤 지났을 때 전화를 해보니 엄마랑 만났다고 했다. 그 뒤로 우리도 그 애도 더 이상 전화도 없고 만나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 꼬마가 가을, 포도가 익어갈 때 전화를 하고 포도밭으로 놀러 왔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빵 사건이 있고 난 뒤 그 애의 엄마 아빠도 그 애가 우리에게 휴대폰 번호를 알려 준 것에 대해 꺼림칙하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걱정을 했다.
 

아주머니가 놓고 간 음료수 박스를 한 쪽 구석에 던져놓았다. 병뚜껑을 따지 않고서야 어떤 이물질도 넣을 수 없겠지만 왠지 그냥 버리고 싶다. 지금까지 모르는 사람한테 어떤 피해를 입은 적이 없는데 왜 이렇게 남을 의심하는 병이 생겼을까.
 

모르는 사람에 대해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의심하는 것은 분명 죄악이다. 더 이상 죄 짖지 않게 그 아주머니가 정체를 밝혀 줬으면 좋겠다. 이만저만 오해를 했었다고 용서를 빌고 잘 아는 사람으로 지낼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