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어머니 세 분, 작은아버지 한 분, 고모 두 분이 우리 집에 오셨다. 시어머니가 요양병원에 계시니 문병을 오신 것이다. 작은집은 전주와 군산이고 고모들은 서울과 부산에 산다. 막내 고모가 전주에 사는 작은아버지와 시어머니 문병을 온다고 하니 시댁 어른들이 이렇게 뭉친 것이다.
나는 장손며느리라서 막내 고모와는 세 살 차이다. 고모는 남편과 어릴 때 같이 자라 사이가 좋다. 막내 작은아버지와도 나이 차이가 별로 없으니 만나면 한 집에서 함께 살던 얘기 등으로 시간가는 줄 모른다.
시아버지와 작은아버지 한 분, 고모 한 분이 돌아가셨다. 작은아버지 한 분이 또 건강이 좋지 않아 문밖출입을 못하시고 작은어머니 두 분도 허리수술 무릎수술로 걷는 것이 불편하다. 고모 한 분도 그렇다.
당신들이 간병을 받아야하는 처지인데 이렇게 오신 것이다. 포도밭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데도 우리 집에서 하루저녁 주무시고 가시라고 했다. 전주 군산이야 가깝지만 서울서 부산서 큰 맘 먹고 오셨는데 그냥 가시게 할 수는 없었다.
7~8년 전 작은집 사촌동생 결혼식 때다. 토요일이라서 나는 참석할 수 없었다. 핑계는 내 얼굴이나 보자는 것이었지만 오지랖 넓은 남편이 그냥 헤어지기 아쉬우니까 시댁어른들을 다 모시고 왔다.
나는 살림을 못한다. 이미 소문이 나서 시어른들도 다 아는 사실이다. 저녁은 나가서 먹으면 되지만 아침이 문제다. 남편은 요리를 잘해 남편이 있을 때는 걱정이 없다.
그날은 4월 하순이었고 여섯 분을 모시고 고창여행을 떠났다. 고인돌 세계문화유산지, 청보리축제장을 둘러보고, 고창읍성(모양성)을 한 바퀴 돌고, 선운사까지 구경을 하고, 장어구이로 저녁식사를 했다.
작은어머니들과 고모들이 그날 참 좋았다고 친구들한테 자랑 많이 했다고 전화를 했었다. 많이 좋아하고 행복해해서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쉽게 되지 않았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다가 3년 전 막내 작은아버지네 딸 결혼식이 군산에서 있었다. 그때도 그분들을 모시고 부안구경을 했다. 새만금과 내소사, 격포채석강을 구경하고 맛있는 횟집에서 식사를 했다. 고맙다고 돈을 너무 많이 써서 어떻게 하냐고 내 손을 잡고 걱정을 해 주셨다.
남편이 퍽 기분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아쉬움이 있었다. 정작 시어머니는 같이 모시고 다니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모는 깐깐하고 당신 주장이 강하고 완벽하다. 큰 며느리로써의 위엄과 체신을 갖추고 있어 작은어머니들과 고모들도 시어머니의 눈치를 본다.
친근감의 표시로 시어른들에게 존칭을 쓰지 않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너는 대학까지 나온 애가 말을 그렇게 하냐.”며 면박을 줘 분위기를 싸늘하게 만든다. 작은어머니들이나 고모들도 한 두 번은 야단을 맞아서 시모를 조심하는 편이다. 이러다 보니 시어머니는 빠지게 되었다.
아들 며느리가 포도밭일을 돕겠다고 서울에서 내려왔다. 좁은 집에서 열 식구가 잤다. 집이 옹색했던 것보다 더 큰 문제는, 일요일에는 밭일 하는 아주머니들이 나오지 않는데 그날은 세 분이 나오시기로 했다고 남편은 새벽 6시도 못되어 밭에 나갔다.
아침상을 차리려는데 내 솜씨를 익히 알고 있는 작은어머니가 “그냥 김치하고만 먹게.”한다. 고모도 아침밥은 별로 안 먹으니 신경 쓰지 말고 있는 대로 먹자고 한다.
나는 작은어머니 고모들이 우리집에 오시는 것이 좋다. 완벽하게 잘하려고 하면 내가 지치고 돈도 많이 들어가니 자주 오시라고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내가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한다. “그러니까 우리가 이렇게 부담 없이 오고, 자고 가는 것이 아니냐.” 큰 작은어머니 말씀이시다.
김치를 놓고, 오이를 깎아놓고, 계란찜을 하고, 쌈미역을 씻어놓고, 조기를 구워놓고, 모두 요리라고 할 것도 없는 것들로 상을 차렸다. 나만의 불고기 레시피가 없어 시중에 나와 있는 양념에 팽이버섯과 목이버섯을 넣고 마늘씨만 조금 더 넣어 불고기를 만들어 화룡점정으로 상 가운데 올려놓았다.
밥은 옥수수밥을 했다. 가끔씩 밥물을 잘못 잡아 체면이 서지 않을 때가 있다. 남편이 밥 못한다고 안경을 바꿔보라고도 했다. 안경이 안 맞아 물을 못 보는 것 같다고. 그런데 오늘은 정말 밥이 잘 되었다.
작은어머니들과 고모들이 나의 상차림을 보고 박수를 치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자네 며느리 보더니 살림솜씨 늘었네.”
“명식이(남편)한테 보내야겠다. 아침밥도 못 먹는 줄 알고 걱정깨나 하고 있을 텐데.” 가운데 고모가 사진을 찍어 ‘감격! 감격! 감격! 우리 이렇게 아침 먹는다.’ 이런 글과 같이 남편에게 카톡을 보냈다. 시어른들은 육십 줄의 장손며느리가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는데 엄청 잘 한다고 칭찬이 대단하다.
건강하셔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철철 마다 만날 수는 없어도 1년에 한 번이라도 우리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막내 고모가 “두 번 만나면 안 될까?” 하며 나를 쳐다본다. 나는 두 번 까지는 되지만 네 번은 안 된다고 해 웃음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어른들이 한 번 다녀가면 나는 할 일이 많다. 그렇지만 이런 만남도 잘 하면 열 번이고 보통은 다섯 번이나 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귀한 시간이고 귀한 만남이다.
포도농사가 끝나는 11월에 다시 만나 대아리저수지로 용담댐으로 드라이브를 하자고 했다. 그곳은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길 10등 안에 들 만한 곳이다. 모두들 다리가 불편하니 조금 걷는 곳으로 잡았다. 꼭 오시겠단다. 나이들이 있으니 그 동안 그분들의 건강이 나빠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