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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촛불과 대의민주주의

협동사회경제연구소 대표

권 태 홍

희망이 절망이 이렇게 함께 찾아올 수 있을까? 요즘 내 마음은 두 갈래이다. 국민들의 마음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광장의 국민들은 새로운 희망의 근거가 되어주고 있다. 하지만 대의민주주의는 국민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바닥까지 보여주고 있다.

지난 10월 28일 저녁에 서울 프레스센터 앞에서 연설회가 열렸다. 10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이 유체이탈 화법으로 첫 번째 사과를 하고 난 며칠 뒤였다.

시민 몇 분이 자유발언을 했다. 그때 이미 시민들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적극적으로 요구했다. 평범한 시민들이 마이크를 잡고 대통령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주장한다는 것이 보통 일인가? 민심의 흐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처음 느끼는 분위기였다.

나도 발언했다. ‘대통령 직선제는 거저 이루어진 게 아닙니다.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 국민들이 쟁취한 것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6명의 대통령을 국민들이 직접 선출해왔고,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세워왔습니다. 그때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은 헌법준수와 평화, 민주주의를 약속해왔습니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그 모든 약속을 어기고 불법과 범법을 주도했습니다. 저는 1987년에 서클 후배였던 이한열을 광주 망월동에 직접 하관해서 묻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피의 대가로 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했습니다. 민주주의 기본을 흔들고 최소한의 사회적 신뢰마저 깨뜨리고 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30년을 준비하기 위해서, 함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다시는 이런 범법이 반복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더 이상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라도 박근혜 대통령을 퇴진시켜야 합니다.’ 이런 요지였다.

익산에서도 매일 촛불을 들기 시작했고 11월 4일은 1,500명 이상, 11일은 2,000명 이상이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서울에서는 11월 5일 10만명이 모였고 지난 12일에는 100만명 이상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었다. 87년 6월항쟁 이래 30년 만에 처음이었다.

시민들은 대통령 퇴진과 엄정한 수사와 관련자 처벌을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었다. 학생들과 가족단위의 참여가 눈에 많이 띈다. 중고등 학생들이 많이 참여했고, 초등학생까지 마이크를 잡고 또박또박 주장을 펼쳤다.

100만 촛불 당시 서울시청과 광화문의 구석구석을 돌아보았다. 수십만이 집중하고 있었던 본무대 말고도 뒷골목 곳곳에서 별도의 집회가 열리고 있었다. 많은 시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를 표출하고 있었다. 청운동 청와대 앞에서는 충돌하는 모습도 있었고, 평화적 시위에 대해 공격적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100만이 넘는 시민들은 폭발적이고 열정적인 다양한 의사와 분노를 끝까지 평화적으로 표출하였다. 놀랍고 감동적인 경험이었다.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빽빽하게 모인 100만명의 시민들은 그 환경 속에서도 얘기하고 경청하고 의견을 모으고 결의를 만들었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변화를 촉구하고 희망하고 있었다. 자율과 책임의 직접민주주의 현장이었다. 민주주의를 공부하고 싶다면 대한민국 촛불에 함께 해보라고 얘기하고 싶다. 평화롭고 민주적인 100만 촛불은 상생하는 대한민국 미래의 희망과 변화의 동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친일파와 군사독재의 기득권에 맞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온몸으로 이룩해 온 것은 국민들이었다. 국민들이 희망이다. 지난 한 달 동안 밝혀지고 있는 박근혜, 최순실의 국정농단은 막장드라마였다. 조롱과 반전의 패러디가 넘쳐나고 있다. 모든 공적 영역은 사적 이익을 위해 저질스럽게 희생되었고 침범당했다.

이러한 상황이 박근혜와 최순실의 문제만이 아니라는 점이 절망이다. 대한민국 대의민주주의의 취약성이 바닥까지 드러나고 있다. 대통령이 완전히 무너졌는데, 국회도 대의적인 역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박근혜 같은 친박, 별 다를 바 없어 보이는 비박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큰 야당들은 앞으로 최소 30년 대한민국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갈 것인지를 백가쟁명하고 경청하는 대신 기회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좌고우면 하는 모습으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든지, 광장의 요구와 대의정치는 다르다던지, 혼자 국민을 대표하는 것처럼 튄다든지 하는 모습들은 엘리트 대의정치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언행들이다. 다행히 야당들이 박근혜 퇴진을 당론으로 정리는 했다.

앞으로 부패한 기득권의 저항이 문제이다. 100년 이상 쌓인 문제이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노골적인 버티기로 들어갔고, 야당들이 보여줬던 허약성은 틈틈이 노출될 것이다. 범법행위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처벌, 새로운 대통령의 조기선출과 대의구조의 새로운 재편성, 그동안 역행했던 많은 정책에 대한 재정비와 더불어 각종 정치경제제도와 권력기관들에 대한 민주화를 혁명적으로 추진해내야 한다.

3.5%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지난 100년 동안의 지구촌 사회운동을 분석해본 결과 3.5% 이상의 국민이 비폭력 저항운동을 지속적으로 해나갈 경우에 권력자들이 버티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폭력 저항운동은 다양한 시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고, 그만큼 생명력이 길고 혁신적인 방법을 찾거나 사회 분열을 치유하는데서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고 평화와 민주주의로 이어져 내전으로 악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순실 특검, 국정조사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대의민주주의를 감시하고 압박하자. 앞으로 30년을 준비하는 심정으로 수사 촉구와 퇴진 투쟁을 계속 이어가면서, 국회의 탄핵절차도 병행해서 압박하자. 국민들은 이미 보여주고 있다. 우리들 스스로 끈질기게 희망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