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한국예총 익산시회장
김영규

1960년대 후반 필자가 다니던 마포구 와우산 중턱에 위치한 H대학의 허름하고 낡은 강의실 한 동은 일명 석빙고라고 불렀다. 단층의 넓은 건물은 아니었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 정이 듬뿍 가는 그곳, 얼마 후에 철거되고 새로운 건물이 세워졌지만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인공으로 얼음을 만들지 못했던 옛날에는 천연 얼음을 저장해 두는 방법으로 학교에서 내려다 보이는 한강의 겨울 얼음을 옮겨와 여름까지 보관하여 사용했던 그곳이 바로 2 강의실이었던 것이다. 신라 때인 6세기 초에 이미 석빙고라 하여, 땅속 깊이 갱을 파고 내벽을 돌로 쌓아 올려서 얼음의 용해를 방지하는 특수한 저장시설이 석빙고였고 오늘날 냉장고의 기원이 아닌가 싶다.

요즈음이야 집집마다 냉장고, 냉동고, 김치냉장고 등 두 개, 세 개를 갖고 있는 집도 많아서 현대인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생활필수품이 된 지도 오래다. 냉장고는 언제 먹을지도 모르는 음식을 쌓아두기 위해 하나, 둘 늘어가고 용량이나 성능도 커져만 간다. 유통기한을 알 수 없는 검은 비닐에 싸인 음식, 투명하지 않은 용기에 담겨 쌓아놓은 음식물들이 서로 엉켜 자리를 꽉 차지하고 있다. 새로 장을 본 후 할 수 없이 잘 먹지 않는 음식은 끄집어내고 다시 채워서 대충 냉장고를 정리한다.

밖으로 밀려난 음식은 대부분 시장(마트)에 갔다가 싸게 판다는 유혹에 이끌려 견물생심으로 구입한 생선이나 고기, 가공식품들이 대부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렇게 냉장고에 오래 넣어둔 음식들은 생활비의 낭비와 음식물 쓰레기 양산의 신호탄이자 심지어는 우리 사랑스러운 가족의 건강까지도 위협하는 적신호이며, 내외간 다툼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

진정 이제는 가정 내 식품 보관장소인 냉장고의 효율적 사용으로 음식물 쓰레기를 줄여 환경운동을 가정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가정에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음식물 쓰레기를 쉽게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우리 집에서 나오는 음식물 쓰레기의 대부분은 냉장고에서 오래 보관하다 버려야 하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음식물로 인하여 보다 더 심각한 건 환경오염 문제가 아닌가 한다. 음식물 쓰레기는 1ton처리시 106만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어 지구를 뜨거워지게 하는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된다나 어쩐다나? 전문가가 아니라서 모호하지만 심각한 것은 사실임이 분명하다.

장보기 전에 냉장고에 남아있는 재료를 확인한 뒤 필요한 최소한의 재료를 메모한 뒤 시장에 나가고 충동구매를 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조리할 때에도 우리 가족의 식습관을 고려하여 약간은 적은 듯 장만해야만 한다.

식품을 적당하게 구입하고 빠른 시간 안에 순환시키는 것이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음식물쓰레기를 없애는 첩경이다. 나중까지 대대손손 먹을 것을 걱정하여 냉동실에 빈틈없이 많은 음식물을 쌓아놓지 말자고 이렇게 쌓인 음식물은 결국 음식 쓰레기와 내가 직접 결재하는 과도한 전기요금 등 많은 폐해를 양산하고 있다. 거창한 환경운동이니, 지구 지킴이니 어쩌고 저쩌고 사소한 것 하나부터 생활 속에서 실천하자.

위와 같이 주장하는 나의 이야기를 아내는 잔소리로 치부한다. 모르는 소리 직접 요리해보라는 식이다. 거기에 덧붙여 신문에 기고까지 하여 본인의 주장을 발설한다면 앞으로 생활이 편치는 못할 것이다.

요즈음 텔레비전을 켜면 여기저기서 놀랄만큼 먹방이 많이 나온다. 먹는 거 보여주는 방송을 줄여서 먹방이라나? 청소년들이 줄임말을 많이 쓰는 바람에 소통이 어렵다고 걱정하는 어른들이 많지만, 말 줄임은 비단 아이들 세계에서만 나타나는 일은 아니다. 앞으로 얼마나 오래살지 모르지만 재미있는 새말을 바로바로 적응해야만 한다.

맛있는 거 먹자고 우르르 몰려가서 먹는 걸 “먹방 찍는다”고도 하는데 유명하다는 맛집 찾아가 먹방 찍는 게 요즘 풍속도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하다.

최근 1~2년 사이에 부쩍 늘어난 먹방은 우리 식생활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 음식을 해 먹으려고 이것저것 재료 구입해다가 냉장고에 묵혀놓으면 손도 못 대고 버리는 경우가 많으니 외식이 오히려 더 싸게 먹히는 결과가 된다.

전통적으로 아내의 손맛에만 의지하던 남편들이 아내에게 점수를 따고자 주말에 집 밖에서 밥을 해결하려는 사정도 작용한다. 먹방 덕에 음식에 대한 식견이 넓어지면서 집에서 만들기 어려운 음식을 맛보기 위해 바깥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선거의 계절이 다가오니 정치인들도 먹방을 준비해야 될지도 모른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니 혀를 찰 일만은 아닐 것이다. 이제 냉장고는 머지않아 사라질지도 모른다. 냉장고에 먹을 것이 꽉 채워져 있는데도 배가 고프다. 특히 우리 삶의 배고픔을 어떻게 채워야 하는가? 먹는 거 말고는 즐거움이 없는 사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