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평창 동계올림픽과 패럴림픽을 피해 날을 잡다보니 친정아버지 제사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었다. 죄송한 마음으로 아무 탈 없이 잘 다녀올 수 있게 도와달라고, 중국에서라도 그 시간을 기억하겠다며 출발했다.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거리의 가로수들은 크리스마스트리 같이 장식 되어 있다. 밤이면 그 화려함이 관광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대단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다. 일정이 매일 밤 10시에나 호텔에 도착하는데 그 환대에 피로함을 잊는다.

귀주성의 성도인 귀양은 햇볕이 귀하다고 해서 부쳐진 이름이다. 황과수폭포를 구경하는 날이다. 비는 오지 않고 흐릴 것이라는 예보였는데 맑음으로 바뀌었다.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햇볕을 하루 종일 내려 주었다. 덕분에 폭포 주변에서 무지개도 볼 수 있었다.

흥의에서 마령하대협곡과 만봉림을 구경하고 안순으로 가는 길이다.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될 거라는 가이드의 설명이다. 중국 관광은 걷는 길이 많다. 거기다 계단으로 되어 있어 피로가 더하다. 이 길은 시내 거리가 아니라서 볼거리도 없을 뿐 아니라 밤이라서 잠이나 자고 갈 생각이었다.

마침 저녁도 한식이어서 잠자기 좋을 만큼 먹었다. 출발하고 20여분이나 지났을까. 폭죽 터지는 소리가 났다. 차는 고속도로로 접어들어 불꽃이 저 아래 동네에서 쏘아 올리니 더 아름답다. 이렇게 까지 환영해 주지 않아도 되는데 과분한 대접을 받는 것 같다며 여기저기서 자기 덕분인 줄 알라고 만용을 부린다.

그 불꽃놀이는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휘황찬란한 아름다움에 기사한테 좀 천천히 가면 안 되냐고 할 정도였다. 동네마다 경쟁이라도 하듯 더 더 화려하고 품격 있는 폭죽을 쏘아 올린다. 이 동네의 갑부가 마을 잔치를 베풀며 주민들의 기를 살려주면 옆 마을의 지주가 이웃 갑부에게 지지 않으려 과용을 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며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날이 정월 대보름이란다. 중국 사람들이 불꽃놀이를 좋아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대대적으로 하는 줄은 몰랐다. 필리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위해 일 년 내내 돈 번다고 하던데 중국 사람들은 폭죽 사려고 돈을 버는 모양이다.

도로 양쪽에서 쏘아대는 불꽃에 목 운동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폭죽 때문인지 산불도 났다. 작은 것 까지 합치면 20건은 될 것이다. 땅이 넓고 숲이 울창하지 않아서인지 산불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이다. 산꼭대기에선 불이 활활 타고 있는데 아래 동네에선 개의치 않고 폭죽을 쏘아댄다. 심지어는 주유소 바로 뒤에서도 한다.

대보름이라는 것을 알고 혹시 달뜨는 것도 볼 수 있을까 창 쪽으로 눈을 고정했다. 불꽃놀이에 산불에 정신을 못 차릴 때쯤 붉은 달이 내 쪽으로 수줍게 얼굴을 내밀기 시작했다. 달이든 해든 뜰 때 그 붉고 큰 알 덩어리가 마음을 설레게 한다.

최명희 선생의 ‘혼불’에서 동네 사람 중 정월 대보름날 보름달을 제일 먼저 입으로 들이마시며 소원을 비는 사람만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읽었던 기억이 있다. 나도 입을 크게 벌려 달을 꿀꺽 삼켰다. 가족의 건강과 집에 돌아갈 때까지 무사하길 빌었다. 달님이 걱정 말라며 끝까지 지켜주겠다는 듯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 동행해 주었다.

2월 28일 출발 하면서 귀양은 봄일까를 생각하며 꽃이 피어 있다면 좋겠다는 바람을 안고 갔다. 겨울 추위가 대단했고 감기까지 겹쳐 많이 지쳐 있어 활기가 생기가 필요했다. 만봉림의 유채꽃을 상상했다.

만봉림과 유채꽃은 내가 상상한 것 이상이다. 환호성이 터지고 기쁨이 충만했다. 대단한 눈 호사를 시켜 주었다. 낮에는 유채꽃은 물론 벚꽃 배꽃 복숭아꽃 목련까지, 밤에는 춘절 행사의 조명으로 황홀하게 해 준다. 거기다 불꽃놀이까지.

호사다마라고 귀주성의 마지막 날, 직금동을 구경하는 날이다. 남편이 휴대폰을 호텔에 놓고 온 것 같다고 한다. 혹시 버스 안에 벗어 놓은 점퍼 주머니에 있을 수 있어, 일행들의 분위기를 생각해 동굴 안을 구경하는 동안 내색하지 않았다.

가이드가 숙박했던 호텔 마다 전화를 해봤지만 돌아온 답은 한결 같았다. 남미 여행 때 와이파이가 되는 호텔에서만 아들딸과 카톡을 했는데 요금 폭탄을 맞았다. 그 뒤로는 외국에선 거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다. 사진도 찍지 않는 편이다.

차라리 매일 사진을 찍고 와이파이가 되는 곳에서 뉴스라도 봤다면 아침마다 잘 챙겼을 텐데. 일행들은 ‘큰 가방 속에 있을 것 같다’에 한 표씩을 던졌다. 나도 집에서 입고 간 점퍼 주머니 속에 들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한 가닥 희망을 가졌다.

그날은 토요일이라 귀양으로 돌아오는 고속도로가 막혔다. 휴게소에 들르는 것을 생략해 더 애를 타게 한다. 휴게소에서 남편 큰 가방을 확인하려 했는데.

귀주성이 그 귀하다는 햇볕으로, 꽃과 춘절의 장식으로, 불꽃놀이로, 분에 넘치게 반갑게 맞아 후하게 대접해 주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린다면 지금까지의 환대가 물거품이 되고 만다. 끝까지 귀주성이 배신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다시 한 번 캐리어 안에 휴대폰이 있길 빌었다.

귀양 고속철 역에서 모든 일행의 염원을 담아 가방을 개봉했다. 겨울 점퍼를 드는 순간 묵직함이 느껴졌다. 감사 또 감사다. ‘큰 가방 속에 있을 것이다’에 표를 준 일행에게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아이스크림을 사려했는데 역 구내를 다 뒤져도 없다.

귀주성이 나에게 대접해준 최고는 따뜻한 날씨로 두 달 가까이 앓고 있던 감기를 훅 날려준 것이다. 아버지 기일에도 참석하지 못했는데 이런 큰 대접을 받아도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