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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기행

윤복순 윤약국약사

익산수필에서 문학기행을 다녀왔다. 매년 가는데 나는 한 번도 가 본적이 없다. 토요일이라서 약국 문을 닫고 갈 수 없어 미안하게 생각한다. 해외여행이나 가족모임으로 문 닫는 날이 많아 좌중하고 있는 참이다.

올해는 순천으로 정했다. 회원이 적다보니 버스를 대절하기도, 승용차 세 대가 가기도 마땅찮아 기차로 갈 수 있는 곳으로 골랐다. 승용차로 가면 운전하는 사람은 여행이 아니라 노동이 돼 재미가 없다. 익산에서 순천까지는 시간도 많이 걸리지 않고 순천에서는 택시를 이용하면 쉽다.

기차여행에는 나름대로 추억이 있어 모두 찬성을 했고 총무가 출발시간이며 차표예매 등은 다 맡았다. 회원은 50대 후반부터 70대 초반까지다. 나이들이 있다 보니 현역은 몇 명 안 된다.

문학기행도 못 가고 해서 옆 아파트에 사는 회원 둘을 불러서 점심식사를 같이 했다. 누구랑 여행하느냐에 따라 재미가 얼마나 다른가를 이번 여행에서 확실하게 알았다며 그녀들이 나만 빼놓고 마구 웃는다.

익산역에서 호남선과 전라선이 갈라진다. 어떤 차는 서울에서 익산까지는 같이 왔는데 앞부분은 호남선 뒷부분은 전라선이 되기도 한다. 익산은 호남의 교통요충지로 플랫폼도 10 번까진가 있다.

나도 순천은 송광사, 조계산, 선암사, 낙안읍성, 순천만 등 여러 번 가봤다. 매 번 기차를 이용했다. 기차를 탈 때마다 갑갑하다 할 정도로 몇 번씩 확인하는 버릇이 있다. 그래서 남편한테 지청구를 듣기도 한다.

이십 년도 훨씬 전이다. 새마을호가 처음 생겼을 때다. 전주에서 전국 여약사대회가 열린 해이다. 전북의 여회장단이 대회 날 행사 진행을 도울 회원들의 한복감을 사러 서울에 가는 날이었다. 서울 나들이를 겸한 월례모임이다. 남대문 시장에 가면 싸게 살수 있다고 해 돈도 아낄 겸 겸사겸사 이었다.

내가 익산에 사니까 차표 예매도 맡았고 미리 나가 익산역에서 전주에서 군산에서 오는 회장단을 맞았다. 출발시간이 다 되는데 전주 회장이 오지 않는 것이다. 정말 시간이 딱 되어 차표 한 장을 반납하고 일행이 줄줄이 죽을 힘을 다해 지하도 계단을 내려 5 번 홈까지 달렸다.

마침 열차 한 대가 우리가 타기를 기다리고 있다. 출발 예정시간 보다 1~2분 늦었을 것이다. 간신히 타 헐떡거리는 숨을 진정하고 내 좌석을 찾아갔을 때, 어떤 아저씨가 앉아 있었다. 내 좌석이라고 하니 그 아저씨가 차표를 내보이며 젊은 사람이 자기 자리도 못 찾나 하는 눈으로 쳐다봐 더 이상 내 자리라고 따질 수가 없었다.

마침 승무원이 차표 검사를 하러 왔다. 나는 그 아저씨 코를 납작하게 해 줄 요량으로 얼른 표를 보이며 내 자린데 저 아저씨가 비켜주지 않는다고 일러 바쳤다. “새마을표 사가지고 무궁화호 타는 사람은 아주머니 처음 봐요.” 어머머머.

창피하고 부끄러워서 일행이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두 명씩 나누어 각각 다른 칸으로 갔다. 심지어는 한글도 모르는 사람 행색을 했다. 우리들은 모처럼 서울 간다고 멋도 좀 부렸는데.

일행은 모두 새마을호를 그날 처음 타보는 것이었다. 우리가 탄 무궁화호는 새마을호를 먼저 보내려고 대기하고 있던 차였다. 무궁화호와 새마을호는 차 색깔부터 다르다.

문학기행 가는 날 익산역에서 열차를 타러 내려갈 때, 일부 회원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또 일부는 에스컬레이터를 탔단다.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들은 플랫폼에 있는 기둥 저쪽으로 내리고 에스컬레이터를 탄 사람은 이쪽으로 내려졌다.

회원이 반반으로 나눠졌고 서로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열차 시간이 다 되었다. 7호차를 타려면 이쪽으로 와야 하는데 엘리베이터에 탔던 사람들이오지 않아 전화를 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 지금 출발해서 가고 있는데.” 순천이니까 전라선을 타야하는데 호남선을 탄 것이다. 그들은 대학 교수로 퇴직한, 현역 교수까지 박사가 넷이고 교장 선생으로 퇴직한 한 분이다.

정읍에서 내려 상행선을 타고 익산에서 내려 다시 전라선으로 타려고, 다섯 분이서 이리저리 머리를 써 봤으나 그날이 토요일이라서 좌석이 없다. 광주에서 내려 택시 두 대를 불러 타고 가 순천에서 합류했다. 호남선에 탔던 선생들이 평생 잊지 못할 문학기행이라며 하루 종일 히죽히죽 웃고 다녔단다.

순천문학관에 김승옥 선생 관이 있다. 나는 새마을호 사건이 있을 때쯤 무진기행을 읽었다. 무진이 무안이나 장흥일거라 생각했다. 광주역 광장에서 택시를 탔다는 내용이 있어서. 소설속의 인물들이 나의 도덕관과 맞지 않았다. 모두가 안개 때문이라고 생각되어 그 안개구경 한 번 가보고 싶었는데 못 갔었다. 오늘에야 무진기행의 배경이 순천만이라는 것을 알았다.

김승옥 선생이 특별한 일이 없을 땐 문학관에 나오신다. 책을 사면 사인도 해준다. 뇌졸중이 왔는데 많이 회복되었지만 말은 못한다. 여러 문학관을 가 보았지만 작가가 직접 나와 계시는 곳은 처음이다.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수 없었음이 아쉬웠다고 한다.

그녀가 ‘무진기행’ ‘서울 1964년 겨울’ 선생의 소설집 두 권을 사왔다. 나부터 읽으라며 가지고 왔다. 소설 읽는 재미에 빠졌다. 아니 기차여행 재미에 빠졌다. 기차를 잘 못 탔다는 것을 알았을 때 그 선생들이 보였을 표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어찌 기차 하나 제대로 못 타가지고.

기차여행하면 새마을호 사건이 먼저 떠오르는데 익산수필 문학기행건도 만만치 않다. 하기야 우리 나이에 이런 추억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 있을까. 이래서 저래서 수필이 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