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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경제, 더불어 살기 위한 사회혁신이 답이다

익산시민 유 성 무

TV 프로그램 ‘동물의 왕국’을 보면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끼곤 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이 아프리카 탄자니아와 케냐에 펼쳐진 세렝게티 평원이었다. 제주도 크기인 14,763㎢에 이르는 사바나 지역인 세렝게티에서는 장엄하고 역동적인 생태계가 펼쳐진다. 이곳은 자연이 탐욕스런 인간에게 선물한 지혜의 보고이기도 하다.

현지어로 ‘거대한 평원’이라는 뜻인 세렝게티에는 엄청난 수의 초식동물들과 이들을 먹고 사는 육식동물들이 더불어 살아간다. 특히 200만 마리가 넘는 얼룩말, 누, 톰슨가젤 등의 초식동물들이 세렝게티 생태계의 탄탄한 하부구조를 이루고 있다. 여기에 사자와 표범, 하이에나 등의 포식자들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면서 생사의 수레바퀴를 돌리고 있다.

세렝게티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그토록 많은 초식동물들이 평화롭게 공생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많은 동물들이 제한된 먹이인 풀과 물을 놓고 경쟁하지 않을 수 있을까? 자연의 놀라운 조화가 아닐 수 없으니, 그 이유는 초식동물들의 주둥이 구조와 소화기능의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되새김 기능을 가진 얼룩말은 크고 넓은 풀과 거친 풀을 주로 먹고, 넓은 주둥이를 가진 누는 짧은 풀을 먹고, 좁은 주둥이를 가진 톰슨가젤은 새싹을 주로 먹는다고 한다. 이들이 공생하기 위해 이렇게 진화했는지, 아니면 각기 다른 먹이활동을 하기 때문에 공생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종별로 다른 먹이가 있기 때문에 모여 살 수 있음은 분명하다.

이들은 매년 우기(雨期)가 되면 풀과 물을 찾아 짧게는 수백㎞, 길게는 2,500㎞에 이르는 대이동을 한다. 곳곳에서 만나는 포식자들을 이겨내야 하고, 악어가 득실대는 강을 건너야 하는 실로 험난한 여정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집단적으로 엄청난 위험을 감수하니, 자연의 조화가 참으로 오묘하다.

인간세상이 돌아가는 원리도 이와 별반 다름이 없다. 사회가 평화롭게 돌아가려면 직업군별로 사람들이 살아가는 영역이 조화와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이런 조화와 균형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경세제민(經世濟民), 즉 세상을 경영하여 백성을 구제하는 경제의 이치라 하겠다.

요즘 우리나라 경제, 특히 서민경제가 매우 어렵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경제민주화 및 소득주도 성장을 지향하는 정책을 펴고 있지만, 그 성과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최저임금 인상 등을 이유로 영세 자영업자의 채산성이 악화되고 그나마 있던 일자리마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경제가 돌아가는 시스템을 학문적으로 말할 능력이 없다. 다만 세상을 살아가는 소시민으로서 말하자면, 작금의 어려움은 최저임금 인상 등과 같은 부분적 요인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경제적 공생을 위한 조화와 균형이 깨진 것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경제사정의 일시적 호전을 위한 미봉책보다는 문제의 본질을 바로잡는 근본적 대책이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서민경제가 어려운 이유는 우리 경제가 더 이상 고도성장이 어려운 상황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 경제가 지속적인 고도성장을 하려면 인구증가와 함께 전반적인 기술혁신, 더 나가서는 사회혁신이 뒷받침 돼야 한다. 우리나라도 2000년대 초까지는 지속적 인구증가와 함께 대기업 중심의 기술혁신이 이뤄졌기 때문에 수출을 기반으로 내수가 점진적으로 커지는 고도성장이 가능했다.

이때까지를 세렝게티 평원에 비유하자면, 서민경제가 나름대로 나눠먹고 살기 위한 풀이 크게 부족하지 않았던 시기라고 하겠다. 서민경제의 각 영역이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공생할 수 있었다. 서민경제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재벌과 대기업, 건물주들과 같은 포식자들도 풀까지 뜯어먹으려고 달려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1997년 일어난 IMF 외환위기를 기점으로 우리나라를 덮친 신자유주의 사조는 경제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기 시작했다. 서민경제가 먹고 살 풀밭이 점점 좁아지면서 과거와 다른 양상의 먹이경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자본과 기술로 중무장한 포식자들이 연합하여 풀밭까지 노렸으니, 서민경제가 파탄날 수밖에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서민경제가 새로운 풀밭을 찾아 이동할 수 있는 길마저 점점 좁아지고 험난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포식자들에게 포위된 서민경제가 제한된 풀을 놓고 사투를 거듭하면서 점점 쇠퇴할 수밖에 없다. 종국에는 포식자들까지 죽게 될 것임이 자명하니, 우리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는 이렇게 더불어 살 수 있는 조화와 균형이 파괴된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와 같은 구조적 문제의 근본적 혁신이 없는 그 어떤 경제정책도 작금의 어려움을 해소할 수 없다고 본다.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중장기적으로는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다. 지금 당장은 힘들어도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을 복원시키는 경제정책과 함께 강력한 사회혁신, 즉 창조적 파괴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인구증가는 한계점에 왔고, 기술은 급속하게 발달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 생태계가 돌아가는 원칙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와 정치권은 국민과 함께 근본적 해법을 고민하면서 사회혁신을 밀고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