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함해국 대표
유은미

필자가 운영하는 회사는 구절초를 비롯한 야생식물을 재배·가공하는 작은 농업회사법인이다. 처음 자활사업으로 시작해 취약계층의 일자리를 만들고 현재는 인근 지역주민을 고용하여 농업을 유지하며 ‘어떻게 하면 더 많이 일자리 늘려 함께 잘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나름 성실하게 운영하고 있다. 때로는 사업내용을 오인하여 험한 말과 음해를 당할 때도 있지만 ‘언젠가는 알겠거니’ 하고 무던히 넘겨온 세월이 벌써 11년이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26세 실무자에서부터 시작해 29세에 공동 대표자가 되어 곧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기까지 지금도 변변치 못해 종사자들의 고용을 좀 더 안정화 하지 못한 못난 경영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10여년간 대표자 월급도 제대로 없이 사업을 유지했던 이유는 자본금도 없는 평범한 청년이 농촌에서 자립하여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욕심 하나로 가족의 희생을 발판삼아 아직도 버티고 있다. 다행히 최근 우리를 롤모델 삼아 귀농, 농촌창업을 하고 있는 후배들이 늘어난다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다.

그러나 올 여름은 이런 생각마저 꺾이게 하는 힘든 계절이었다. 몇 년째 지속된 가뭄과 최악의 폭염을 맞아 자연과 맞서는 인간의 한계를 느끼며 좌절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장기간 지속된 경기한파는 뼛속까지 파고들어 매일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심경이었다.

결국 10여년간 마르지 않던 둠벙이 말랐다. 동시에 회사 통장의 돈까지 말라버렸다.

처음으로 법인의 은행대출을 위해 문을 두드렸다. 내심 자신도 있었다. 매출이 크진 않지만 10여년간 성실히 운영해오고 각종 장관상에 지자체 단체장상까지 줄줄이 받았으니 크게 문제가 될 것 같지가 않았다. 익산시에서 지원하는 소상공인을 위한 운영자금 대출을 위해 영등동 신용보증기금을 찾아가 관련 절차를 안내받고 농협을 방문하니 대출이 불가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총 2,000만원 중 1,900만원은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해줘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 100만원은 농협에서 보증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재무재표상의 20만원정도의 손실 때문에 100만원 보증을 못해준다는 것이다. 아무리 재무재표상의 손실이라고는 하지만 10년의 세월을 큰 문제없이 운영해왔는데 100만원을 상환하지 못하는 기업으로 평가받은 것이다. 어느 은행은 땅도 건물도 없는 빈털터리라고 평가한곳도 있었다.

많은 우여곡절 끝에 한 달 여간 많은 곳을 돌고 돌아 농업정책자금 1960만원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 전에 들었던 말이 생각났다.

전남곡성에 우리나라 박사농부 1호인 이동현 박사님이 운영하는 ‘미실란’이라는 곳이 있다. ‘사업초기 연구 성과를 가지고 금융기관을 방문해도 문전박대 당하기 일쑤였다’고 했다. 설마 나라에서 전도유망한 곳이라고 상도 주고 연구 성과도 훌륭한 기업이 그럴까 싶어 그때는 공감하지 못하고 무용담이겠거니 흘려들었다. 그러나 직접 경험해보니 그 대표님이 겪었던 상실감을 고스란히 체험할 수 있었다. 동변상련의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그러면 과연 신용이란 무엇일까?

은행에서는 신상정보, 직장정보, 해당 금융기관의 여·수신내역, 연체여부 등으로 숫자로 1~10까지 등급을 매겨 결정된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냉정한 평가이다. 개인보다 법인은 인정절차와 규정이 더 까다롭다. 그러나 이 숫자로만 경제적 가치를 모두 평가할 수 있을까? 은행은 빌려준 돈을 잘 받는 일도 매우 중요하다. 상환에 있어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사업의 여부, 상환을 위한 의지, 성실성이 아닐까? ‘이것을 경제적 가치로 평가받을 수는 없을까‘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방글라데시의 그라민 은행이라는 곳이 있다.

빈민들에게 무담보 소액신용대출을 시행하여 자립을 위한 시작을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곳으로 마이크로그레딧의 시초이다. 이 곳의 상환율은 무려 90%이상이다.

신용도 평가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낮고, 담보도 없는데 어떻게 높은 상환율을 올릴 수 있었을까? 이들은 상환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약간의 대출로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닥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안정적인 상환과 연결되며 또 다른 수혜자를 후원하는 지원자가 되기도 한다. 부자들을 위한 자본주의가 아닌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위한 자본주의가 이곳에서 순환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작던 크던 어떠한 경영체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자금의 원활한 흐름이 중요하다. 장기 경기침체와 여러 사회적 여건으로 일선의 자영업 및 중소기업은 생존을 위해 피고름을 흘리며 버텨내고 있다. 작은 자본의 순환은 자영업 및 소기업들의 숨통을 트여 지속가능하게 사업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작은 문턱을 넘지 못해 폐업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건 대기업이 뿐 만 아니라 촘촘히 잔뿌리처럼 퍼져있는 작은 경제인데 대기업 중심으로만 운영되는 경제구조가 아쉬울 뿐이다. 잔뿌리가 없으면 굵은 뿌리를 내린 나무는 쓰러지는 자연의 이치를 함께 이해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다.

이번 일을 겪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영업과 소기업들을 위해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현장에서 오랫동안 지켜온 성실함을 신용으로 평가받기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제시하고 행동해야 함을 깨달았다.

부끄러운 이번 경험을 공유하며 다른 초보 기업들이 철저히 준비하여 많은 은행과 기관을 헤매며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를 바란다.

어찌되었건 우리 함해국 11년의 성적표는 196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