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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중날 상념(百中日-想念)

사회복지법인 삼동회 삼정원장

김영주

차 한 잔 하자는 친구가 있어 외출을 서둘렀다. 자세히 말하면 한 참 후배가 되는 친구다. 지연(地緣)의 관계로 일 년에 두서너 번 만나는 사이다. 무슨 차로 할까 묻는다. 나는 사실 차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다. 차 이름도 잘 모른다. 그냥 누군가 만나면 양촌리 커피만 마시는 정도다. 양촌리커피는 믹스커피를 말한다. 믹스커피를 왜 양촌리 커피라고 하는지 모르지만 그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그렇게 부른다. 이야기 도중 백중날에 대해 묻는다.

‘형! 백중날 뭐해, 토요일인디 영광 안 갈래?’

‘왜, 영광 갈 일 있어?’

‘응’

‘잘 갔다 와. 지난번 수술한 다리가 완쾌되지 않아 좀 쉴래’

‘그려 그럼’

‘백중날’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금년은 8월25일이 백중날이다. 음력으로 7월 15일. 그런데 달력엔 표시가 없다.

옛날, 어렸을 때 우리 선조들에게 들었던 백중날은 ‘머슴 날’이라고 했다. 그 날이 오면 동네 사람들 모두 마을 모정에 모여 돼지를 잡았다. 그리고 떡과 술을 나누어 먹으며 놀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어린 우리들은 어머니들 틈새에 끼어 음식을 맛있게 얻어먹었었다.

백중날은 농민들의 명절이었고, 머슴들의 명절이었다. 머슴은 지금 말로 하면 개인 집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그들은 농사와 잡일들을 해주고 새경이라는 것을 받는다. 새경은 품삯이다. 주로 쌀이나 다른 곡식으로 받는다. 우리 집에도 머슴이 있었다. 머슴정도를 두는 집이면 꽤 괜찮게 사는 집 축에 낀다.

백중날이면 주인이나 머슴이나 평등해진다. 주인도 없고 머슴도 없다. 즐겁게 노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요즘 갑과 을의 차별, 국가의 어눌한 최저임금 정책으로 을과 을의 싸움이 되고 국가적 혼돈의 상태가 와 버린 그런 모습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만큼 백중날은 의미가 있고, 모두가 함께 뒤엉켜 웃고 떠들고 즐겁게 노는 그런 날이었다.

또 하나 백중날에는 목련존자가 생각나는 날이다. 예수도 12제자가 있었듯이 석가모니도 10대 제자가 있었다. 목련존자는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가운데 한 분으로 신통제일이라고 불렸다. 신통은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를 다 볼 수 있는 인간으로서의 최고의 초능력이다. 그러한 초능력의 소유자가 목련존자이다. 또 목련존자는 효행의 표본이다.

인도의 왕사성이라는 도시에 ‘부상’이라는 부자가 있었다. 그는 항상 석가모니를 흠모하고 석가모니의 수행법인 육바라밀(六波羅蜜)을 행하고 살아 고을에서 덕망이 매우 높았으나 늦게 아들 하나를 낳고 죽게 되었다. 그 아들의 이름이 나복이다.

나복은 아버지가 물려준 재산으로 날마다 500명의 스님들을 모시고 3년 동안 제사를 지낸다. 그러면서 자꾸 생각이 맴도는 것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 많은 재산을 모았으면서 왜 저승으로 갈 때 그냥 가셨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스님들을 가까이 하면서 그 의심이 바로 풀렸다. 저승으로 가지고 갈 수 있는 재산은 선근종자를 심어야 함을 안 것이다. 선근 종자는 남에게 베품을 통해 만들어진다. 그것을 불가에서는 보시(布施)라 한다. 스님들은 아버지가 선근종자를 많이 심으셨기 때문에 천상계로 갈 것이라 했다.

나복은 아버지의 3년상을 치르고 이웃나라인 남지국으로 아버지 가업을 이어 장사를 떠나게 된다. 아버지가 물려 준 재산을 셋으로 나누어 한 몫은 어머니께 맡기고, 한 몫은 아버지를 위해 매일 500명의 스님들을 불러 아버지의 재를 지내도록 하고, 나머지 한몫으로 장사의 밑천으로 삼았다. 그리고 나복은 길을 떠나면서 어머니에게 부탁의 말씀을 올린다.

“어머니, 제가 장사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몇 년이 걸리는 곳이라 그동안 어머니께서 아버지와 같이 남아있는 많은 재산을 가지고 이웃들에게 선근종자를 심으셔야합니다. 그래서 선근의 주인공이 되십시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생각이 달랐다. 하인들을 시켜서 승려가 오면 방망이로 쳐내도록 하고 짐승들을 많이 사오게 하여 달아 메고 피를 내어 귀신에게 제사지내고, 고기와 술 먹는 놀이로 나날을 즐겼다. 나복의 집은 하루도 빠진 날이 없이 양, 돼지, 오리, 거위들의 울부짖는 비명소리가 끓이지 않았다.

몇 년 후 나복이 장사를 마치고 집에 돌아 온지 7일이 못되어 어머니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한다. 나복은 절망에 빠졌다. 세상이 너무도 허무했다. 부모님없이 살아가야 하는지 앞이 막막하기만 했다. 결국 나복은 어머니의 3년 상을 마치고 동네 친구와 함께 석가모니를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목건련’이라는 법명을 받고 깊은 수행을 하여 신통력을 얻게 된다.

신통을 얻은 목련존자는 부모님을 찾았다. 부모님께서 선근종자를 많이 심으셨기 때문에 천상의 세계에서 행복하게 사시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신통력으로 보니 아버님은 천상의 세계에서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 보이나 어머니가 보이질 않는다. 천상의 세계에서부터 인도, 수라, 아귀 축생, 지옥의 세계까지 찾아봤으나 어머님은 보이지 않아 석가모니 부처님을 찾아가 묻는다. 어머님이 왜 보이질 않는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말한다. “목건련아! 너희 어머니는 죄업이 중하여 무간지옥에 있다.” “무간지옥은 음식을 먹지 못하여 주린 고통을 받기도 하고, 기름 가마에 튀겨져서 죽었다가 살아나는 등 하루에도 몇 만 번씩 죽고 살면서 고퉁을 당하는 곳이다.”

목련존자는 무간지옥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나지만 자신의 도력으로는 어머님을 구원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결국 석가모니 부처님께 애원을 한다. ‘어머니를 구원해 주십시오.’ 석가모니는 도력으로 목건련의 어머니를 무간지옥에서 차차 가벼운 지옥으로 나오게 하고, 다시 몇 번의 도력을 베풀어 나중에는 아귀의 세계, 축생의 세계를 거치게 한다. 그리고 목건련에게 어머님을 위하여 해탈하도록 발원을 정성껏 올리고, 7월 15일, 스님들이 수행을 마치고 해제하는 날, 우란분재를 대중에게 베풀면 천상계로 갈 수 있다고 알려준다. 목련존자는 어머니를 위하여 스님들에게 우란분재를 정성껏 올려 마침내 어머니를 천상계로 옮길 수 있었다. 우란분재란 죽은 사람이 사후에 거꾸로 매달리는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을 구하기 위해, 후손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승려들에게 공양하는 것을 말한다.

위의 예화는 목련경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요즘 세대들은 백중날이 기억 속에 없다. 늘 상 보는 달력에도 표시가 없다.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백중날이 우리 사회에서 왜 희미해졌을까?

백중날은 평등의 날이요, 효행의 날이다. 백중날이 옛날과 같이 성행했으면 좋겠다. 그래서 단 하루라도 차별이 없어지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