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동사회경제연구소 대표

권 태 홍

생활은 어렵고 정치에 대한 불신은 하늘을 찌른다. 정치인에 대한 불신이고 사회 시스템에 대한 불신일 것이다. 선거 때 다해주겠다는 공약이 난무하고 당선되면 현안에 무능한 것이 현실이기도 하다. 부패와 불법행위로 인해 연이어 전해지는 사법처리 소식과 기본에 못 미치는 소모적인 분쟁들까지 접하다 보면 절망적이기도 하다. 정치인들도 바쁘다. 특히 지역구의 선출직 정치인들은 온갖 경조사에서부터 지역행사에 이르기까지 정신없다. 눈도장을 많이 찍을수록 차기 선거에 유리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가 아는 전북의 어떤 지방의원은 정책활동은 완전 무능함에도 지역구에 있는 장례식장에 주구장창 밤낮으로 근무하다시피 한 덕에 3선의원까지 했다. 월급 등 비용으로 나간 혈세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주요 정책에 대해 어떤 결정을 했을지 생각하면 끔찍하다. 차라리 외면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문제는 선출직 정치인들이 시민들의 삶에 대한 중대한 결정들을 한다는데 있다. 특히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일수록 이런 정치적 결정들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제한된 자원을 가지고 수많은 이해관계의 충돌에 대해 조정과 갈등 통합을 해야 하는 정치와 정치인의 존재 의미는 너무나 클 수밖에 없다. 욕하고 등한시할수록 부메랑처럼 피해가 돌아온다. 하지만 많은 서민들은 그런 관심을 보일 여유조차 없기 십상이다. 정치가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사회통합을 이룰 수 있도록 바뀔 수는 없을까?

공익에 대한 철학을 가진 사람들이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어쩌면 이 시점에서 최선의 사회봉사는 국민이 원하는 좋은 정치인이 되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더 많은 권력과 명예를 위해 선택하는 정치의 영역이 봉사 일리는 만무하다. 경쟁 일변도의 이 사회가 수많은 사회악을 극복하고 지속적일 수 있는 이유는 훨씬 다수의 사람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정치인보다 상생과 통합을 위한 정치의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 많은 비용과 스트레스를 감내해야 하는 정치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힘든 결정이다. 그러나 가장 의미 있고 효과적인 사회적 봉사를 할 수 있는 영역임에 틀림없다. 이런 선의를 가진 분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고, 정치지도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면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를 통해 봉사하자고 호소한다. 또 정당이 블루오션이라고도 얘기한다. 정당을 통해서 가장 많은 사회적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도록 정치제도의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정치제도, 그중에서도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 지방선거는 지역을 기반으로 치러지는 것이 자연스럽지만 국회의원의 경우 왜 지역을 기반으로 대다수를 선출하는지 근본적 검토가 필요하다. 지난 4월 총선에서 익산은 시장과 도의원 재보궐선거도 함께 치렀다. 모두 다 지역발전 공약을 내거는 바람에 익산시민들이 후보들의 공약만 보고는 그 사람이 국회의원 후보자인지, 시장 후보자인지 구분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에서 지역주의에 기반한 영호남의 정치독점 구조와 국회의원 소선구제도는 부패하고 낙후한 정치의 뿌리이다. 대한민국의 정치제도가 정당정치를 중심으로 다양한 계층과 서민들을 대변할 수 있도록 크게 바뀌어야 한다. 이번 총선에서 호남지역은 민주당과 국민의당이 경쟁했지만 사실상 같은 기득권의 뿌리를 가진 찻잔 속의 태풍일 뿐이었다.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선출 총수의 절반 정도로 줄이거나 전체를 비례의원으로 선출해야 한다. 정당득표에 따라 국회의원 의석수를 보장하고, 그 수의 최소 절반 이상을 정당 내에서 당원들이 선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당정치를 안착하게 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지역주의 정치구도도 근본적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또 지역행사를 쫓아다니는 국회가 아닌 국가정책에 전념하는 국회가 될 것이다. 이로부터 지방정치도 지역주의와 엘리트 국회의원을 넘어서서 바뀌어 나가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선의를 가진 많은 사람들이 정당을 통해서 정치를 바꾸기 위해 참여할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겨놔서는 곤란하다. 이런 정치개혁안을 내년 대선 때 공약으로 제기하고 당선 직후에 최우선적으로 제도개선에 착수하는 실천적인 접근법이 필요하다. 실제적으로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 등 선진국들은 지역구 국회의원수가 정수의 절반 이하이거나 100% 비례국회의원이다. 진정으로 공익을 위해 일할 국회의원 선출제도의 도입과 다양한 계층을 대변할 수 있는 다당제도의 정착 등의 제도개혁이 내년 대통령 선거를 통해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많은 국민들이 하나 이상의 정당에 참여하고 존경받는 정치인들이 많이 등장하며 정치가 사회변화와 희망의 근거가 되어주기를 기대한다. 정치의 혁신을 통해 경제개혁, 사회개혁 등이 서민들의 입장에서 근본적으로 이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