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중국 서쪽 변방의 후진국이었던 진(秦)나라가 전국시대를 평정하고 천하를 통일한 원동력은 강력한 국가개혁이었다. 진시황의 천하통일 130년 전인 효공(孝公) 재위 시절에 상앙은 20년 동안 변법(變法)이라는 대혁신을 추진했다. 상앙의 개혁은 무자비할 정도의 예외 없는 법 적용을 바탕으로 이뤄졌다.

강력한 법치의 실행을 백성들에게 인식시키기 위한 상앙의 일화는 유명하다. 상앙은 도성의 남문에 3장(三丈) 길이의 나무 기둥을 세우고, 그 기둥을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는 현재가치로 수억 원 정도라는 10금(十金)을 주겠다고 방을 붙였다. 너무도 황당한 조치에 아무도 반응을 보이지 않자 상앙은 상금을 무려 50금으로 올렸고, 실제로 기둥을 옮긴 자에게 상금을 지급했다. 그러자 백성들은 조정의 법 집행 의지를 믿기 시작했다.

상앙이 추진한 법치는 너무도 엄격해서 많은 저항을 불렀는데, 상앙은 지위고하를 막론한 법 집행을 단행함으로써 부국강병의 위업을 달성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개혁의 후원자였던 효공이 죽은 후에 수구세력들의 역모 모함으로 능지처참을 당했다. 개혁의 지난함과 세상인심의 무상함을 잘 드러내는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동서고금의 역사를 보면 국가의 흥망성쇠에 공통되는 코드 중 하나가 있으니, 법질서 특히 공직자와 사회적 권력층에 대한 엄격한 법 적용이 그것이다. 시대적 맥락은 다르지만 법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나라는 흥했다. 힘 있는 자들에게 부당한 예외가 적용되는 나라가 망하지 않은 예는 찾아볼 수 없다.

삼국지연의에는 제갈량이 유장의 서촉(西蜀)을 차지한 후에 법을 엄정하게 시행하는 대목이 나온다. 제갈량은 서촉이 망한 이유를 지도자가 나라를 다스릴 덕도 없으면서 법을 제대로 집행하지 않은 것에서 찾았다. 그 결과 관리들은 부패하고 백성들은 도탄에 빠졌기 때문에 나라가 망했다는 것이니, 관리에 대한 신상필벌로 나라의 기강을 잡겠다고 말했다. 초창기 공신에 대한 부당한 예외도 있었지만!

물론 예외 없는 법은 있을 수 없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관대하면서도 사회적 책임이 큰 자에게는 보다 엄격하게 집행되는 운용의 묘를 살리는 것이 합리적인 법 정신일 것이다. 미국의 뉴욕 시장이었던 피오렐로 헨리 라과디아가 빵을 훔친 가난한 노파의 범죄에 대해 사회가 함께 책임져야 한다면서 노파를 방면한 판결이나, 특정 지위에 있는 자의 범죄에 대한 가중처벌은 공평한 법적 예외라고 하겠다.

법(法)은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규칙을 뜻하는 의미인바, 법 집행에 있어 사회적 책임이 더 큰 자에게 더 엄중히 적용돼야 법이 존재가치를 가질 수 있다. 그래야 일반 백성들이 법질서를 따름으로써 나라가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맥락에서 법을 어긴 지도층을 엄하게 단죄하지 않는 것 자체가 법을 부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이명박 및 박근혜 정권 등 과거 정권에서 자행된 적폐에 대한 검찰 수사와 법원의 대응, 관료조직 및 정치권의 행태들을 보면서, 대한민국에 과연 만인에게 공평한 법이 있는가 하는 의문을 금할 수 없다. 일개 무지렁이인 내가 볼 때, 이미 증인과 증거, 정황 등이 차고 넘치도록 드러난 적폐세력들의 범죄를 놓고 이토록 나라가 시끄러운 것 자체도 문제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가권력을 악용한 혐의가 있는 자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긴급 구속하여 수사하는 것이 당연하다.

법언 중에 99명의 범죄자를 놓쳐도 1명의 억울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라는 말이 있는 모양이다. 물론 적폐세력으로 지적된 자들의 인권도 소중하지만, 국가의 최고 권력을 집행하는 자의 혐의에 대해서는 적용할 수 없는 논리다. 5,000만 국민의 안위를 책임져야 할 고위 공직자의 중대 혐의에 대해서는 99명의 억울한 혐의자가 나오더라도 1명의 범죄자를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올바른 법집행이다.

범죄 혐의나 의혹에 대하여는 고위 공직자 스스로 수사기관에 나가 시시비비를 밝히는 것이 마땅하다. 정치보복이나 국론분열, 민생난맥 등을 운운하면서 남의 일 이야기 하듯 넘어가려고 할 일이 결코 아니다. 그것이 국록을 먹은 고위 공직자의 당당한 자세이고,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겠는가?

나는 법을 집행하는 국가기관들이 이번이야말로 적폐를 성역 없이 뿌리 뽑음으로써 추락한 법의 권위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2300년 전 법치국가를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비참하게 죽은 상앙과 현재의 법 집행기관이 처한 입장은 다르다. 상앙의 법치주의를 밀어줬던 효공은 죽었지만, 법치국가 대한민국을 꿈꾸는 깨어있는 국민들의 열망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차제에 법 집행기관들은 오로지 영원한 주권자인 국민만 바라보고 법을 바로 세우기 바란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필연적으로 무능한 법 집행기관을 사분오열하여 새로운 사법기관을 만들게 될 것이다. 국민이 국가의 법을 믿지 못하면, 법이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