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문화원 고문

김 복 현

지금까지 발생한 대형 참사를 기억해보면 눈부신 발전 속에 우리 사회가 얼마나 안전에 허술했는가를 알 수 있으며 무책임하고 위험한 사회였나를 알 수 있다. 힘이 없어서 나라를 빼앗기고 미리 대비하지 못해서 당한 ‘한국전쟁’도 아니고 ‘한일 병합’도 아닌데, 지난날에 어이없이 죽어간 이웃 형제와 유가족들에게 아픔과 설움을 안겨주었던 사건들을 기억해보면 1993년 10월 서해 훼리호 사건으로 292명 사망, 1994년 10월 성수대교 붕괴사고로 32명 사망, 1995년 4월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사고로 101명 사망에 이어 1995년 6월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로 502명 사망했다. 2003년 2월에는 대구지하철 방화사고로 192명 사망했고, 2014년 4월 16일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로 304명의 고귀한 어린 생명을 바다에 묻고 말았다. 하나같이 국가가 조금만 정신을 차렸으면 안전에 대하여 철저히 점검하는 관계자들의 자세만이라도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을 참사(慘事)였다. 그리고 감기 걸리지 말라고 틀어놓은 가습기를 좀 더 청결하게 쓰고 싶어 넣은 살균제를 들이마셔 아이가 죽고 엄마가 죽고 뱃속 아이와 엄마가 같이 죽어가는 일이 그저 신문에서나 보는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피해자 개개인의 잘못이라면 그래도 위안이 될 법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탐욕스러운 이권, 금전 추구, 안전의식 부족, 이름뿐인 행정 구조 능력 그리고 얽히고설킨 부정과 무능이 앞서는 우리 사회의 실태에서 왔다는 것이다. 돈 벌려는 욕심으로 치명적인 물질로 살균제를 만든 기업 그런 물질을 버젓이 허가해준 기관, 지금 2000명에 가까운 가습기 피해자들을 사지(死地)로 몰아간 소리 없는 살인자들이 버젓이 우리는 같이 살고 있다. 사건이 난 뒤 이구동성으로 재발 방지 말하지만 두렵게도 이런 구조적인 사고는 얼굴만 바뀔 뿐이다.

서울 구의역 전동차에 치여 죽은 19살 수리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미 두 차례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이다. 돈에 대한 욕심, 안전 무시가 부른 참사다. 그리고 우리가 무지해서 모르고 있었던 참사는 삶의 안방에서도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로 100여명이 이미 죽었고 300여명이 평생 후유증에 시달려야 하는 상황을 보면서 살균제 사건은 안방의 세월호가 되었고 구의역 참사는 일터의 세월호가 되어버린 모양이 되었다.

미국 환경청(EPA)의 가습기 사용법 매뉴얼에는 ‘세정제 살균제 사용 후에 가습기를 수돗물로 여러 차례 행군 다음 다시 작동해야 한다’라는 내용이 들어있다. 가습기 살균제라는 게 농약 묻은 사과를 그냥 먹는 것과 다름없다고 한다. 그런데 우리는 왜 알지 못했을까? 내가 당하지 않았으니 모르겠다는 사고로 임해온 기업인들의 한심스러운 생각이 이렇게 큰 고통을 안겨 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 같다. 1996년 작업 시 노출 금지로 경고된 유독물질이 살균제로 둔갑해 20년 동안 1,000만 명이 호흡을 해왔다고 한다. 더욱이 한심스러운 것은 살균제 연구 대학 교수의 무관심으로 무너진 사회윤리와 생명 존중의식이 사라진 우리의 환경이랄 수 있으며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적 불신도 한몫을 한 것 같다. 그동안 우리는 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만들어놓고 규정을 준수하는지 안 하는지 확인도 점검도 안 한 공무원과 연구진을 믿고 살아온 것이다. 현대 사회는 풍요사회이자 위험이 노출된 사회라는 것을 십분 이해하고 마치 내 자신에게 일이 닥친 것처럼 처리하는 우리 사회가 되기를 희망해본다. 보훈 호국의 달이 다 가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주변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이웃들에게 강 건너 불구경을 하고 있지 않는지 모두가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기를 소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