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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 놓고 기역자도

윤복순 윤약국약사

약국에 근무하면 일상인데 특별한 날을 만들기 위해 약국 문을 닫았다. 한일·일한 여성친선협회 총회가 있는 날이다. 회장단도 아니고 꼭 참석해야할 의무는 없지만 한 번 가보고 싶었다.

금요일 오후부터 시작인데 서울까지 가지 않고 토요일 일본인들과 한국측 대표들이 충주 석종사로 온다고 해 그 곳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작년에 초청을 해 민박을 시켜줬던 하세가와 노부에상이 오는 줄 알고 기대가 컸는데 그녀가 오지 못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만난다면 감회가 새로울 텐데 많이 아쉽다.

그녀와 한 마디라도 더 얘기를 하고 싶어 틈나는 대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다. 독학이다 보니 어려움이 많다. 며칠만 하지 않으면 말은 고사하고 읽는 것도 쉽지 않다. 뿐 만 아니라 애써 외워놓은 단어가 책만 덮으면 금방 잊어버린다.

석종사에는 서울팀이 오기 전에 도착했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경내를 다 구경했을 때 그들이 도착했다. "忠州放問を歡迎します" 라고 쓴 현수막을 들고 그들을 맞았다. 아는 단어는 시마스 밖에 없다. 방문과 환영은 무어라 읽을까.

플래카드만 들고 서 있는 것 보다는 웃는 얼굴로 말을 하면서 맞이해야 할 것 같아, 큰 소리로 충주 방문을 환영 합니다는 일본어로는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K가 방문은 호우몽 환영은 간게이라고 알려준다. 호를 길게 하다가 몽하라고 한다.

‘충주 호~몽오 간게이시마스’를 그 일행들이 쭉 걸어 올라오는 동안 계속했다. 금방 배워 하려니 쉽게 되지 않아 나중에는 간게이시마스 만 했는데 그들이 환한 얼굴로, 우리말로 감사 합니다 라고 답례를 한다.

그들과 함께 석종사에서 제공하는 점심식사를 했다. 말을 해 볼까 하고 일본인 옆에 앉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내 명찰을 보이며 윤복순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기까지 하고 나니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집에 와서 천천히 생각하니 몇 마디는 더 할 수 있었는데 입에 익숙지 않아 쉬 나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 날 점심 메뉴인 시금치 된장국, 무김치, 각종 나물 같은 것을 설명해 줄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석종사에 대한 얘기까지는 못 하더라도. 이럴 때 조금 전 나에게 일본어를 가르쳐 준 K라도 옆에 앉았으면 좋았을 텐데.

K는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퇴직을 했다. 그녀가 근무하던 학교와 일본의 어느 학교가 자매결연을 맺었는데 어느 해 그녀도 학생 몇 명을 데리고 일본에 갔었단다. 아무 말도 할 지 몰라 갑갑했고 알아듣지도 못하니 학생들 앞에서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다른 도시로 전근을 갔고 그 학교에서는 학생 수도 많고 바쁘고 일본과 교류도 없어 잊고 지냈다. 5년 후 면 단위의 학교로 발령을 받아 갔다. 학급 학생이 일곱 명 밖에 되지 않아 둥근 테이블에서 수업을 했단다.

한가해지자 일본어 생각이 나서 아이들과 같이 일본어를 시작 했다고 한다. 결정적인 것은 매달 폐지를 모으던 시절이었는데 학생이 못 쓰는 책이라고 가져왔는데 그 속에 일본어 회화 책 2권 3권이 들어 있었단다. 그 학생의 어머니를 찾아가 1권이 있는지 부탁했고 다행히 1권도 찾아 그 책으로 학생들과 재미나게 일본어를 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학생들이 더 잘 해 K는 밤중에도 일어나 공부를 해야 할 정도였다고 한다. 닥치는 대로 일본어 책을 사서보고, 방학 때면 문화센터에서 강의를 듣고, 남편에게 자랑도 했다고 한다.

방학 때 남편이 지금까지 배운 일본어 한 번 써먹어보자고 해 무작정 출발 했단다. 부닥치며 해 보니 처음에는 말이 나오지 않아 벌벌 떨었는데 며칠 지나니 귀가 틔어 한 마디씩 들어오더란다. 그렇게 방학 때마다 일본여행을 하면서 익혔다고 자신의 체험담을 얘기해 준다. 지금도 여성센터에서 강의를 듣는다고 한다.

퇴직하고는 다문화 가정의 외국인에게 한글을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하는데 그 중에 일본인이 있어 그에게서도 많이 배우게 된다고 한다. 그녀의 열정에 비하면 나의 일본어 공부는 그야말로 조족지혈이다. 맨 날 ‘왜 이렇게 발전이 없을까.’ 불평불만만 했다. 일 못하는 사람이 연장 탓만 하듯이. K 옆을 따라 다니며 단어 하나라도 외울까 귀를 쫑긋 세워봤지만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쪽 귀로 흘러 나갔다.

식사 후 혜국스님의 법문을 들었는데 일본어로도 통역되었다. 우리말을 듣고 일본어로 들어도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였다. 어쩌다, 십리 가다 하나씩 아는 단어가 들릴 뿐이다.

입으로는 말을 하고 귀는 일본어에 많이 노출 되어야 하는데 하루 종일 들을 일이 없으니 쉬 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K는 20년 넘게 하고 있다는데 나는 겨우 1년 넘었다. 오늘 K를 알게 된 것이 큰 소득이다.

일본글은 자판에서 어떻게 쓸까를 고심하다 내 기사에게 물으니 알려준다. 그래서 앞에 몇 글자 써 봤다. 일본 친구 도미에상의 이메일을 아는데 일본글을 쓸지 몰라 한글로 썼다. 두어 번 보냈는데 그쪽도 한글을 잘 모르니 끊어지고 말았다. 오늘을 계기로 글을 쓰다보면 일본어가 더 늘지 않을까. 단 한 줄이 되더라도 써 볼 참이다. 컴퓨터 실력까지 빈약하다 보니 문자하나 보내는데 한 시간이 걸리지도 모른다.

일본인들과의 모임으로 자극을 받고 왔다. 당분간은 일본어 공부에 열을 올릴 것 같다. 언제쯤 일본어가 공부가 아니라 놀이가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