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것은 운명이며, 부귀는 하늘에 달려있다. 『논어』「안연」편에 나오는 자하의 말이다.

조선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장순손은 어려서 얼굴이 못생겨 꼭 돼지 머리처럼 생겼었다. 그가 젊은 시절 성주의 기생 하나를 사귀었는데, 얼마 뒤 그 기생이 궁궐로 뽑혀 들어가 연산군의 사랑을 독차지하였다. 하루는 종묘에 제사를 지낸 후 거기에 썼던 돼지 머리를 쟁반에 담아 연산군에게 바쳤다. 마침 연산군과 함께 있던 그 성주 기생은 돼지 머리를 본 순간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었다, 연산군이 까닭을 묻자 기생이 무심코 대답했다.

“제가 웃은 까닭은 다름이 아니오라 옛날 제가 살던 고을에 장손순이란 사람이 살았는데 얼굴이 마치 돼지처럼 생겨서 사람들이 놀려댔는데 저 돼지 머리를 보니 그 사람 생각이 나서 웃음이 나온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연산군이 갑자기 불호령을 내렸다.

“그놈이 너의 전 애인이었단 말이냐? 당장 가서 그 돼지 대가리 장순손을 잡아 대령하라.”

장순손은 영문도 모른 채 들이닥친 금부도사에게 끌려 나와 서울로 향하는데, 일행이 함창 공험지란 곳의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 고양이 한 마리가 장순손의 앞으로 가로질러 샛길로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장순손은 그 고양이가 자기에게 무엇인가를 암시하는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금부도사에게 청하였다.

“내가 과거를 보기 위해 한양을 왕래할 때마다 고양이를 보면 꼭 좋은 일이 있었습니다. 방금 고양이 한 마리가 저쪽 길로 갔는데 그 길 역시 한양으로 가는 지름길이니 그 쪽으로 갔으면 좋겠습니다.”

금부도사는 곧 죽을 죄인의 이만한 청쯤은 들어주어도 좋을 것 같아 승낙하였다. 그런데 그 갈림길이야 말로 장순손에게는 생사의 갈림길이었던 것이다. 이유인 즉 기다리다 못한 연산군이 보낸 선전관이 장순손의 목을 베어오라는 명을 받들고 큰길을 따라 내려오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길이 어긋나 이런 사실을 모른 채 서울에 당도해보니, 이미 연산군이 쫓겨나고 새 임금 중종이 즉위하여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