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시민 유 성 무

스페인 바스크 지역의 몬드라곤 시에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코퍼레이션(Mondragon Cooperative Corporation, 이하 MCC)이라는 독특한 기업이 있다. MCC의 자료에 의하면 MCC는 2015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260개의 사업단위와 협동조합, 15개의 기술센터를 두고 있다. 총 74,117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20조원 규모의 매출을 올리는 등 지속적인 성장을 시현하고 있다.

MCC의 규모를 보면 마치 글로벌 기업처럼 보인다. 그런데 MCC는 독자적인 협동조합들이 모여서 하나의 기업집단처럼 운영된다. 협동조합의 민주적이고 자조적(自助的)인 특성을 유지하면서도, 개별 협동조합들이 일사불란하게 협력함으로써 전체적인 경쟁력을 극대화하는 기업적 특성을 갖고 있다.

MCC의 기원은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1년으로 올라간다. 빈곤과 실업으로 인한 사회문제가 만연한 몬드라곤에 호세 마리아 아리즈멘디아리에타 신부가 부임해서 공업기술전문학교를 설립했다. 교육으로 확보한 기술인력을 바탕으로 1956년에 MCC의 모태인 울고 협동조합이 창립됐다. 이후 자체적인 금융조합을 갖추고 성장하면서 1964년에는 몇 개의 협동조합이 모인 그룹 형태가 됐고, 발전을 거듭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MCC는 협동조합의 기본정신을 잇는 한편으로, 산하 협동조합 사이에 유기적인 연대를 추구한다. 공동으로 기술 개발과 조합원 직무교육을 실시하고, 공동기금을 조성하며, 조합별 이익배분 가이드를 만들어서 격차를 10% 이내로 제한하는 한편 공개적인 회계시스템을 통해서 MCC와 산하 협동조합의 경영을 투명하게 유지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협동조합들 사이에 조합원을 재배치하는 시스템이다. 조합원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고용을 유지시키는 동시에 적재적소에 인력을 활용하기 위한 방법이다.

협동조합이 활성화된 유럽에서도 규모와 운영방법에 있어 MCC 모델은 특별하다. 물론 MCC 모델이 협동조합과 같은 풀뿌리 협력경제의 전범은 아닐 것이다. 각국의 정치·경제·문화·역사와 같은 환경적 요인에 따라서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필요하지만 수익성이 낮은 분야에서 주로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기업 형태로 발전하기도 하고, 그라민 은행처럼 사회적 약자를 돕기 위한 금융시스템으로 자리 잡기도 하고, 미국의 포커스 호프(FOCUS:HOPE)처럼 한 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복합적 형태로 성장하기도 한다. 특기할 점은 지식정보시대로 진입하면서 풀뿌리 협력경제도 빠르게 고도화 되면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풀뿌리 협력경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육성해야만 하는데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술이 발전하면서 생력화(省力化)가 빠르게 진전됨에 따라서 기업 특히 대기업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효율성이란 미명하에 일자리를 줄이고 노동환경을 악화시키고 있다. 둘째, 극소수 대기업이 경제를 지배하면서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다. 신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와 고용을 통한 부(富)의 순환은 고사하고, 중소기업에 적합한 업종과 골목상권까지 약탈함으로써 서민경제 전반의 연쇄붕괴를 일으키고 있다. 셋째, 풀뿌리 경제 연대의 복원 및 강화로 사회적 관계 증대를 통한 서민경제의 부활이 요구되고 있다. 서민경제는 서로간의 연대를 통해서만 지속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해체되고 있는 연대가 서민경제 위축의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 제119조 제2항에서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함으로써 경제정의를 천명하고 있다. 하지만 극소수 자본권력이 경제를 지배하는 작금의 현실은 경제민주화와 큰 괴리가 있다. 왜곡된 경제현실을 혁신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존립근거인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경제민주화는 국가와 기업, 풀뿌리 경제에서 동시에 이뤄져야 가능하다. 국가의 정의로운 소득재분배 및 기업규제 정책이 지속적으로 시행될 때 국민경제가 체질적으로 강해질 수 있다. 동시에 협동조합과 사회적기업 등 풀뿌리 협력경제를 육성해서 국가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 잡게 해야만 경제난국을 해결할 수 있다.

풀뿌리 협력경제가 기존의 경제시스템과 상생하면서 민주적이고 효율적인 경제주체로서 국가경제를 견인할 수 있음은 몬드라곤의 기적으로 충분히 증명됐다. 문제는 풀뿌리 협력경제를 키우겠다는 정치적 의지다. 부디 이번 총선이 몬드라곤의 기적을 이 땅에서 재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