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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여행

윤복순 윤약국약사

6박 7일의 페루 여행을 마치고 쿠바로 갔다. 헤밍웨이가 종종 들렀다는 플로리디타 바에 들러 다이키리 칵테일을 마시며, 헤밍웨이 동상 옆에서 인증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며 비행기에서 내렸다. 이것은 여행 일정에는 없어 오늘 저녁 내가 꼭 해보고 싶은 미션 같은 것이다.

공항에 내리니 비가 내린다. 여권, 비자, 영문으로 된 여행자 보험 등을 챙겨 입국심사를 받기 위해 줄을 섰다. 직원들은 하나같이 가만히 앉아만 있다. 아니 저희들끼리 웃고 얘기만 나누지 일은 보지 않는다. 그 시간이 꽤 길었다.

설상가상으로 정전이 되었다. 잠시 후 불이 들어왔는데도 일 볼 생각은 없이 천하태평이다. 시계를 보니 정시에서 십여 분 전이다. 정시부터 시작할까. 영문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는데 또 정전이다.

비행기에서 내려 입국심사장으로 오는데 카메라 두 대가 비치되어 있다. 무슨 유명한 사람이 나와 같은 비행기를 타고 와 인터뷰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들어오는 사람들을 찍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회주의 국가인가. 몸에 한기가 느껴지고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리마에서 맨 사막만 보다가 비행기 창문으로 본 쿠바는 큰 나무와 푸른 농장이 많아 일단 몸도 마음도 상쾌하고 첫인상이 좋았다. 그렇게 공항에 도착했는데 달라도 너무 다르다.

10여 년 전 러시아에서 육로로 핀란드로 넘어갈 때 일이 생각났다. 버스에서 내려 출국심사를 받으려는데 직원들이 일을 해 주지 않았다. 지금 쿠바 공항 사람들처럼.

가이드는 성질을 낸다든지 떠들면 항의를 하는 줄 알고 더 더디게 해 주니 될 수 있는 대로 웃는 얼굴을 보이라고 했다. 그 말이 우스워 웃었는데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니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러시아의 이런 관행을 알기 때문인지 우리 일행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20~30명은 사람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날 우리는 세 시간 넘게 기다리다 다음 교대 근무자가 오고서야 출국할 수 있었다.

정시가 돼도 일은 시작되지 않았다. 얼마를 더 기다렸을까. 입국심사는 생각보다 까다롭지 않았다. 보안검사 때도 어느 심사관 앞에 줄을 섰는데 또 무슨 이유인지 옆으로 가란다. 그들 마음대로인 것 같다.

캐리어 가방을 찾기 위해 30분도 더 기다렸는데 그때까지 벨트가 돌아가지 않는다. 전기가 부족해 몇 개 나오다 또 멈춘다. 한없이 기다리고 있다. 많은 사람들로 가방 찾는 곳은 찜통이다.

앉을 만한 자리도 없다. 지쳐있는 내게 남편이 카트를 가지고 오더니 거기에 기대란다. 못 이기는 척 가방 싣는 곳에 앉았다. 장난기가 발동한 남편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나를 태운 채 왔다 갔다 했다.

바로 그때, 난데없이 한 흑인 남자가 내 앞으로 오더니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리 아파요?” 하고 물었다. 어떻게 한국말을? 흑인 입에서 능숙한 우리말이 나와 깜짝 놀랐다. 우리팀 쿠바 가이드라고 소개했다. 이름은 엘도, 김일성대학에서 4년 유학했단다.

오늘만 전기가 나가서라는데 내 생각에는 매일 이럴 것 같다. 엘도는 불만이 쏟아지는 우리를 달래기 위해서인지 잠시 북한 이야기를 해 준다. 북한의 실정은 쿠바보다 훨씬 못하단다. 자기는 유학생 신분인데도 평양을 벗어나려면 허가를 받아야 했다고 한다. 그래서 평양밖에 모른단다. 쿠바 사람들은 신앙의 자유가 있고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고 지방에도 다 공항이 있단다.

더 황당했던 것은 가방이 1라인에서 나왔는데 분명히 리마 출발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갑자기 파나마라고 바뀌었다. 그러더니 2라인으로 가란다. 2라인은 파리라고 쓰여 있다.

불안한 마음이다. 이러다 가방이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브라질 이과수에서 리우데자네이루로 올 때 일행의 가방 하나가 오지 않았었다. 다행히 국내선이어서 밤늦게 호텔로 가방이 오기는 했다. 중남미 여행에서 큰 가방이 오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해서 두어 벌의 속옷과 양말을 배낭에 넣어가지고 다니는 중이다.

일행들의 가방을 다 찾는데 한 나절이 그냥 흘러갔다. 기계가 돌아가다 멈추기를 열 번쯤 한 것 같다. 정전은 되지 않았는데. 다행히 가방은 다 왔다. 어떤 사람들의 것인지 가방이 한 줄로 세워져 있고 마약 탐지견이 쭉 한번 지나갔다. 우리도 그렇게 하는 줄 알았는데 저희들도 염치가 없는지 가방 검사도 없이 그냥 나가란다.

쿠바에 한국인은 한 명도 없다고 한다. 한국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일곱 명 정도라고, 앞으로 우리나라와 쿠바가 수교를 맺으면 대사나 대사관에서 일을 하게 될 것 같다고, 일곱 명 중에는 그의 아들과 딸이 포함되어 있다고, 그의 애들은 국립 아바나대학을 나왔다고, 엘도는 자랑인 듯 말했다. 나는 그 이름 대신 대사님이라고 불렀다.

공항에서 진을 다 뺏기에 아바나 시내 관광은 수박 겉핥기가 되었다. 이미 밖은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려, 특히 헤밍웨이가 자주 갔다는 식당은 차로 지나가면서 “저기 분홍색” 하는 식으로 끝을 맺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쿠바를 방문한다고 한다. 곧 두 나라 사이가 좋아지고 관광객이 넘쳐날 것이다. 50년 넘게 미국과 소련의 싸움에서 살아남은 국가, 현재의 쿠바 모습을 볼 수 있는 날도 며칠 안 남은 것 같다.

공항에서의 일과 사회주의에 대한 선입견으로 택시 타고 플로리디타에 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공항과 엘도가 쿠바 여행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