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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야권의 승리가 아니다

익산시민 유 성 무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4.13 총선이 새누리당의 참패로 끝났다. 더불어민주당은 예상을 뒤엎고 수도권과 영남에서 선전을 했고, 국민의당이 호남 석권을 발판으로 제3당의 입지를 굳혔다. 정의당을 필두로 하는 진보정당은 여-야 및 야-야 대결구도의 동시 전개라는 이례적 상황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지난 3년 동안 현 정권과 새누리당은 오만하기 짝이 없는 태도로 독선의 정치를 해왔다. 그 사이 대한민국은 더 이상 희망을 찾아보기 힘든 '헬 조선‘으로 전락했는데도, 그들은 국정 난맥의 원인을 아예 야당에게 돌리는 무책임과 무능, 몰염치의 극단을 달렸다. 정권이 곧 국가라는 오만방자한 정치를 일삼았으니, 그들을 계속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혼이 비정상적인> 상황을 자초했다.

새누리당의 참패에도 불구하고 이번 선거를 야당의 승리로 규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번 선거 결과가 이념이나 정책 대결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상식을 벗어난 정부와 여당에 대한 국민적 심판이지, 야권의 국정운영능력을 인정하는 국민적 선택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의 자멸일 뿐 결코 야당이 국민과 손잡고 치열하게 쟁취한 영광의 승리가 될 수 없다.

원내 제1당이 된 더불어민주당의 행적을 살펴보자. 지난 4년 동안 선명한 비전을 가진 수권정당으로서 뭐 하나 제대로 보여준 것이 없었다. 허구한 날 실체도 불명확한 친노와 비노로 나뉘어서 싸움질만 하다가 결국 총선을 코앞에 두고 분열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 출범 후 다소 안정되는 듯 했고 필리버스터를 통해 잔잔한 감동도 보여줬지만, 공천 과정에서 보여준 막장 드라마로 지지자들에게 크나큰 상처를 줬다. 그나마 정권과 새누리당의 폭주를 경계하는 집단지성과 선당후사 자세를 보여준 일부의 헌신, 참신한 영입 인재들의 노력으로 123석을 주웠을 뿐이다.

38석을 건진 국민의당의 약진도 기실 큰 의미는 없다고 보인다. 무기력한 야권에 실망한 호남인들에게 문재인으로 상징 조작된 친노패권주의와 호남홀대론이라는 프레임을 씌워 호남을 분리시켰다. 별 다른 인적 쇄신도 없이 더불어민주당의 심판을 부르짖은 결과 기존 국회의원들의 자리를 보전했다. 독재와 불의에 저항하는 민주세력의 구심점이었던 호남을 또 다시 정치적으로 고립시켰다. 총선 직전 급조한 정당으로서 택할 수밖에 없었던 전략이었다면 성공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모호한 정체성과 지역패권주의를 볼 때, 그들이 얻은 정당지지에도 불구하고 더불어민주당을 대체할 수 있는 대안세력으로서 태생적 한계를 갖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정말 아쉬운 점은 뚜렷한 이념적 선명성과 정책적 구체성, 민주적 정당운영, 현장 정치를 보여준 정의당을 비롯한 진보세력의 확장 무산이다. 명분도 없는 야-야 대결이란 악화(惡貨)가 건전한 진보세력이란 양화(良貨)를 몰아낸 꼴이다. 정당지지율이 10%를 넘었던 정의당이 불과 6석에 그친 것은 우리나라 정치 혁신의 한계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권과 새누리당의 오만과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시급성에 더불어 사는 세상을 추구하는 건강한 진보세력의 외연 확장이란 중요성이 매몰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회찬과 심상정이 3선 고지에 올라 건강한 진보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살아있음을 보여준 점에서 한 가닥 위안을 찾는다.

4.13 선거를 보면서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이치를 새삼스럽게 느낀다. 세상사는 한 쪽으로 크게 치우치면 필연적으로 반전이 일어난다. 우주 만물을 지배하는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어느 한 시점에서 일어난 반전이 근본적인 방향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오랫동안 계속된 한 방향으로의 관성을 깨뜨리는 강력한 힘이 응축되거나, 작은 반전을 계기로 지속적인 반동(反動)의 힘이 작용해야만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꾸는 변화가 비로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4.13 총선은 분명 반전의 신호를 보냈다. 이를 시작으로 야권이 일치단결하여 대선에서 승리하고 지속적으로 개혁을 추진할 때만이 비로소 세상이 바뀔 것이다. 다만 이 시점에서 생기는 걱정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이번 총선 결과를 자신들의 힘으로 이뤘다고 오판하고 다시 당내 또는 야당간 세력다툼이나 벌이는 구태를 거듭할지에 대한 것이다. 국민이 야당의 손을 들어준 것은 야당이 차선도 아니고 최악을 막기 위한 차악이라고 생각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새누리당이 아무리 추락했어도 사실상 130석에 육박하는 의석과 수많은 지역에서 격전을 벌였을 만큼 강력한 지지 세력을 갖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디 국민이 어렵게 만들어준 기회를 놓치지 말고 3개 야당이 힘을 모아 정권교체라는 대의를 위해 대동단결하길 바란다. 특히 국민과 정부여당의 혈전에서 전리품을 챙긴 더불어민주당과 호남에 기대 일어선 국민의당은 민심을 잘 헤아리고,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더욱 분발해서 이 나라가 나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데 앞장서기를 기대한다. 4.13은 역사의 변곡점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