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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하려면 제대로 하자

익산시민 유 성 무

정치권의 개헌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모양이다. 현행 헌법이 시행된 지 30년이 됐으니, 시대정신을 반영한 새로운 헌법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타당성이 있어 보인다. 권력구조에 대한 여야 정치권의 이해관계를 놓고 봐도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은 상당히 커 보인다. 무엇보다 우리나라의 현실이 헌법정신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에, 이번 기회에 대대적인 헌법 체계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헌법은 국가의 근본이다. 평범한 국민들도 보통의 노력으로 헌법을 이해하고 수긍할 수 있어야 하며, 헌법정신을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에 나는 법에 대한 식견이 없지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개헌의 절차적 민주성과 반드시 개정이 이뤄져야 할 부분에 대해서 의견을 개진해보고자 한다.

먼저 개헌은 반드시 민주적 절차를 거쳐서 이뤄져야 한다. 현행 헌법상 개헌 절차는 다음과 같다. 개헌은 국회재적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제안된 헌법개정안은 20일 이상의 기간 동안 공고해야 하고, 국회는 이를 60일 이내에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할 경우 30일 이내에 국민투표에 붙여 국회의원선거권자 과반수의 투표와 투표자 과반수의 찬성을 얻을 경우 확정된다.

여기서 제기되는 문제는 고도로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한 명의 대통령과 300명의 국회의원들이 전체 국민의 헌법에 대한 보편적 가치를 대표할 수 있는 능력을 실질적으로 보유하고 있는가이다. 정치권이 헌법개정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청회, 토론회, 여론조사, 언론보도 등을 통해 민의 수렴절차를 거치겠지만, 유권자들에게 주어지는 권리는 개정안에 대한 찬반 투표일뿐이다. 결코 최선의 개정안을 위한 과정적 참여가 보장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정치권은 개정안 입안 과정에 많은 유권자가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방법을 강구함으로써 민의를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치권과 기득권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상태에서 개정안 확정의 절차적 민주성이 필요하다. 개정헌법이야말로 집단지성의 산물이어야 한다.

현행 헌법에 대하여 내 개인적 소견을 밝힌다면, 헌법 전문과 조항 자체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보인다. 오히려 현재 우리가 겪는 문제는 헌법정신을 왜곡하는 세력들 때문에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의 관심은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구조의 분산으로 보인다. 그것이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아니면 또 다른 형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는 권력구조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세상이 시끄러운 이유가 권력구조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운용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내가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이번 기회에 권력의 오남용을 차단할 헌법적 장치가 요구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개헌을 통한 헌법정신의 실현을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국회 개혁이라고 본다. 국회의원 중 비례대표 선출은 법률에 위임할 것이 아니라, ‘유권자의 판단을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는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의회권력이 거대정당의 정치적 거래대상이 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비례대표를 포함한 국회의원의 탄핵을 유권자가 할 수 있도록 제도화함으로써 부적격한 국회의원의 퇴출을 상시화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국회의 권한을 보다 구체적으로 강화하여서 국회의 권력 견제기능 충실화를 도모해야 한다.

다음으로 제안하는 것은 사법 및 감찰 기관의 정치적 중립성 담보다. 대법원장 및 대법관, 헌법재판소장 및 헌법재판관, 검찰총장 등을 대통령이 아니라 기관 구성원과 외부의 법률 전문가 집단의 투표에 의해 선출하도록 해야 한다. 감사원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 및 감사기능 강화를 위해 감사원장 임명을 대통령이나 국회가 아닌 제3의 방식으로 하는 것이 필요하다. 검찰을 헌법기관으로 독립시키는 대신 검찰을 강력하게 감찰함으로써 사법정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언론 특히 공영 언론기관의 독립성을 담보하는 장치다. 개헌론자들 중 일부는 권력구조에서 사회갈등원인을 찾는 것 같다. 하지만 그 어떤 권력구조에서도 갈등은 있기 마련이다. 갈등의 해결은 권력구조 개편이 아니라 깨어 있는 국민들의 판단에서만 가능하다. 이를 위해 국가 전반을 성역 없이 정화하면서 의제를 견인할 수 있는 언론 특히 공영 언론의 중립성이 필수적이다. 공영 언론의 중립성이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평가받는 현실에서 공영 언론의 중립성을 헌법으로 담보하는 것이야말로 국가개혁의 시금석일 것이다.

헌법은 그 성격상 추상적인 면이 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헌법을 잘 만든다고 국가개혁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번 개헌논의에서 권력구조보다 실질적으로 중요한 의제를 다룸으로써 경제민주화를 통한 국가경제의 내실화와 사회정의가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국가권력을 책임지는 사람, 더 궁극적으로는 국가권력의 원천인 국민 개개인의 각성과 정치참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