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복순 윤약국약사

8개월 여 만에 파키라에 새순이 나왔다. 새 생명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식물이든 꿈과 희망을 갖게 하고 뭔가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진다. 뿐만 아니라 신비함이 있고 관심을 끌고 기도를 하게하고 그 앞에서는 조심을 하게도 한다. 하물며 다 죽은 줄 알고 버릴 날짜를 받고 있는 중에 새싹을 피웠으니 그 반가움과 대단함이 배가 되었다.

이곳으로 약국을 이전할 때 그러니까 15년 전쯤 지인이 들여놔준 화분이다. 어느 시골의 가난한 남자가 길가의 파키라를 발견하고 이 나무를 행운이라 여겨 잘 키워서 팔아 부자가 되었다는 유래에서 보듯, 서양에서는 money tree라고 부른단다. 지인도 나에게 돈 많이 벌라고 이 화분을 선물했을 것이다. 그보다는 공기정화를 잘 해주고 심신을 안정시켜준다고 하니 나이 먹으면서 건강 잘 챙기라고 줬을지도 모르겠다.

처음엔 가는 줄기 4개가 꼬여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줄기가 하나씩 말라죽어갔다. 삽목이 가능할 정도로 키우기가 수월하다고 했는데, 그늘에서도 잘 자란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물을 자주 주지 않아서 일 것이다. 마지막 한 줄기만 남았다.

넷이 있다 혼자 있으니 키가 쭉쭉 커 마치 천정을 뚫을 기세였다. 그러다가 잎이 누렇게 되기 시작했다. 1년 내내 변화가 없어야 하는데 말이다. 거름을 주었다. 다시 녹색 잎으로 보답해 줬다.

작년부터 이런저런 처방을 해도 백약이 무효다. 그 큰 키의 3/4을 잘라 버렸다. 새싹 틔우기를 바라며 물도 자주 주고 그 옆에 앉아 말을 걸어도 보았다. 아무 반응이 없었다. 행여나 혹시나 기다리기 8개월여.

7월 초 정말 성냥골만 한 눈을 보여 주었다. 환호성을 질렀다. 뭔가 우리 집에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혹여 부정이라도 탈까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새싹이 안 보이도록 화분을 살짝 돌려놓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오래전에 읽은 박연구 선생의 ‘말을 알아듣는 나무’란 수필이 생각났다. 마당에 이런저런 나무들이 있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데 유독 복숭아나무만 꽃을 피우지 못해 미움을 받는다. 아버지가 복숭아나무를 미워하는 진짜 이유가 아기를 못 낳는 며느리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작가는 복숭아나무에 애정을 갖고 지켜본다.

이른 아침이면 복숭아나무 밑으로 가서 제발 돌아오는 봄엘랑 꽃을 피우라고 기도를 하기도 하고, 알맞은 거름도 하고, 나뭇가지를 어떻게 배치해야 열매가 많이 여는지를 공부하여 그에 맞게 전지도 해준다.

봄꽃 소식이 전해지면서는 가슴을 조이며 복숭아꽃의 개화를 기다리는데, 어느 날 작가보다 일찍 일어난 작자의 아내가 흔들어 깨우며 복숭아꽃이 피었음을 알려준다. 봄에 나무가 꽃을 피움은 당연한데 나는 그 봄에 며느리도 임신을 했을 거라고 믿고 싶다.

우리 며느리도 결혼한 지 3년이 지났다. 아직 임신 소식이 없어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며느리 예뻐하지 않는 시아버지는 없다. 그런데 며느리의 임신소식이 늦어지니 남편도 며느리에 대한 사랑이 조금 줄어드는 것 같다.

결혼하던 해 진급시험을 준비할 때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격려 문자를 보내고 통화도 하던 남편이 요즘은 며느리와 통화하는 횟수가 줄었다. 며느리도 눈치를 챘는지 잘 웃던 얼굴에 피로가 묻어있다.

첫 해는 시험 준비하느라 고생하니 임신을 기대하지 않았다. 그다음 해도 소식이 없어 마음을 달랬다. ‘첫 해에 합격하지 못해 올해까지 준비한다고 생각하자. 그래도 첫해에 합격해 합격과 동시에 과장 발령을 받았으니 괜찮은 장사지 않는가.’

결혼한 지 만 3년이 올해 4월로 지났다. 초조하기로 하면 당사자인 저희들이 더하지 우리 부부가 더 하겠는가. 남편의 올해 목표는 손자다. 오죽하면 벽에다 까지 부쳐 놓았겠는가.

지난번 애들이 내려왔다 올라갈 때 며느리에게 “너희 둘 다 건강하고 재미있게 살아라.”, “이제는 셋이 재미있게 살고 싶어요.”한다. 가슴이 울컥했다. 이런저런 검사와 시도에도 결과물이 없으니 마음고생 많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미현아 걱정하지 마. 예쁘지, 학벌 좋지, 실력 있지, 직장 좋지, 남편한테 사랑받지, 네 나이에 결혼 안 한 사람도 많아. 대한민국 의술이 보통 의술이냐? 마음 편안하게 먹어라.” 며느리가 안쓰러워 기분을 조금 띄워주었다.

나도 박연구님 같이 파키라에 새싹이 돋아 며느리가 임신할 것 같은 예감에 마음이 달뜨기 시작했다. 매일 파키라 옆에 앉아 “네가 우리 집에 행운을 가져다줄 거지. 고맙다 고마워.”이런 말을 나눈다. 내 말을 알아듣는지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진다.

아들이 토요일 시험관 아기 시술을 하고 왔다고 전화를 했다.

“애썼다. 마음 편안하게 가져라. 파키라가 새싹을 틔웠는데 아주 잘 크고 있다.” 수요일까지 휴가라서 집에서 쉴 거란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일주일 휴가를 받는다는데 어찌 3일만 받았냐고 물으니 “성공률이 30% 정도라고 해 이번에 안 되면 다음에 쓸려구요.” 며느리의 목소리가 떨린다. 또 가슴에서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눈이 촉촉해지며 가슴이 먹먹했다.

다시 파키라 옆에 앉았다. 새싹이라 기운이 왕성하고 맑고 산뜻하다. 어느 잎 하나 반듯하지 않은 것이 없다. 모두 정상일 거구 성공률 100% 일 것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하는 것 같다.